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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순이 스토리 카렌다 텍스트

황새 봉순이.

2014년 3월 18일 김해 봉하마을과 화포천 일대에 황새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화포천습지생태학습관 직원 신미영 님이 처음 발견했는데 다리에는 알록달록한 가락지가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가락지에는 일본 효고(兵庫)현 도요오카(豊丘村)시 들판에서 태어났으며 고유번호 J0051, 2살짜리 암컷이라는 정보가 담겨있었습니다. 일본의 야생황새는 한국과 거의 같은 시기인 1970년대 초에 모두 절멸되었습니다. 그 후 일본은 러시아에서 황새를 도입해 증식을 시작했으며 2005년부터 자연에 방사하기 시작했습니다. J0051은 방사된 황새들의 2세입니다.  

과거 한반도 곳곳에는 많은 황새가 번식하며 살았습니다. 황새는 어류, 파충류, 양서류, 곤충을 비롯한 다양한 수서생물들을 먹고 삽니다. 그러나 전쟁 등의 혼란스러운 시기와 대단위 식량생산을 위한 농약살포, 화학비료의 사용으로 먹이가 점차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황새들도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1971년, 사라진 줄 알았던 황새가 충북 음성에서 번식하고 있다는 게 공식적으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때까지 황새들은 해마다 새끼를 키웠지만 개체는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서식지가 자꾸 황폐해졌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보도가 나가고 사흘 만에 지각없는 포수에 의해 수컷이 사살되고 말았습니다.
암컷은 홀로 무정란을 낳으며 1983년 7월까지 12년을 더 살다가 결국 농약중독으로 쓰러졌습니다. 구조된 황새는 보호소에서 1994년 10월 수명을 다했습니다. 이로서 한국에서 번식하던 황새는 러시아에서 월동을 위해 내려오는 겨울철새로만 존재했습니다. 황새는 국제멸종위기종이며 한국에서는 천연기념물 199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습니다.  

2004년 철원에서 우연히 황새를 사진으로 기록한 적이 있는 나는 황새가 도래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김해로 날아온 황새 J0051의 근황도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이어서 나는 수시로 학습관 박태진 선생에게 황새의 소식을 물었습니다. 과거 한국에서 번식을 마친 황새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 나타났다고 합니다. 남쪽으로 갔는지 북쪽으로 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겨울에는 새들이 월동을 위해 북쪽에서 내려오고 여름에는 번식을 위해 남쪽에서 올라옵니다. 그렇다면 번식을 마친 황새는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간 게 아닐까? 그렇다면 J0051이 3월에 일본에서 날아왔다는 건 무슨 뜻일까. 김해를 새로운 터전으로, 번식지로 삼으려는 건 아닐까?

나는 궁금한 것도 많고 J0051이 찾아온 게 예사롭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하고 보따리를 싸서 김해 화포천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고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 앞뜰에서 드디어 황새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J0051입니다. 녀석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써레질을 한 논을 걸어 다니며 무언가 열심히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나는 ‘봉하마을에 온 여자아이’라는 뜻으로 <봉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관찰을 시작했습니다. 화포천습지생태학습관에서도 모니터링을 하고 봉하마을에서는 승구봉 이장님을 비롯하여 임점향, 김영호 님이 관찰과 보호, 모니터링을 했습니다.  

봉순이는 논두렁에서 ‘드렁허리’ 라는 논뱀장어를 잘 잡았습니다. 미꾸라지도 잡고 논고동(논우렁이), 개구리도 먹었습니다. 논에 농부가 드나들면 화포천으로 이동해 메기를 잡아먹었습니다. 또 물고기가 많은 농수로에 들어가 몇 시간씩 먹이활동을 했는데 먹이가 많으면 한 지역에 며칠 씩 머물기도 했습니다. 봉순이가 잠을 자는 곳도 찾아냈습니다. 봉순이는 놀랍게도 전봇대 꼭대기나 고압선 철탑, KTX 고압선 지지대 등에서 쉬거나 잠을 잤습니다. 하나같이 위태롭기 짝이 없는 곳입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감전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옛날 황새들은 마을에 있는 정자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나무가 거의 사라져 마을과 농경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철탑을 잠자리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소식을 듣고 기자들이 달려왔습니다. 2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복원증식한 황새 한 마리가 국외로 날아간 첫 번째 사례로서 일본은 물론이고 학계에서도 큰 관심거리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와 농경지를 유기농으로 전환하는데 앞장섰습니다. 물고기 한 마리 살 수 없을 만큼 오염되었던 화포천을 정화해 물고기가 돌아오도록 했습니다. 봉순이가 찾아온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받아 청와대에서 칩거하고 있을 때 정원에 장끼 한 마리가 날아들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꿩이 어디서 왔을까, 먹이를 주면 자주 올까’ 등등 아이처럼 좋아하며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가 생존해 있어서 봉순이를 보았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지금처럼 무관심하게 놓아두지는 않았을 테고 하루에도 몇 번씩 자전거를 타고 봉순이를 보러 다녔을 것입니다. 나는 생전의 그가 자전거를 타고 오갔던 길을 똑같이 자전거를 타고 다녀봤습니다. 그리고 봉순이를 잘 지켜주겠노라고 그와 무언의 약속을 했습니다.  

2014년 7월 17일, 일본 효고현 도요오카시에서 ‘국제황새회의’가 열렸습니다. 한국에서는 교원대 황새복원팀장 박시룡 교수, 경남람사르습지재단 이찬우 박사, 화포천습지생태학습관 곽승국 운영자가 발표자로 초대받았고 환경운동가 이인식 선생, 최선호 영상미디어 대표가 참관했으며 나도 자비를 들여 따라갔습니다. 요미우리 신문의 황새 전담 마즈다 기자가 마중을 나왔고 재일동포 동화작가 김황 선생이 통역으로 합류했습니다. 간사이 공항에서 도요오카는 350km나 됩니다. 이 먼 거리를 자동차를 몰고 온 마즈다 기자가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황새의 고장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우리를 반겼습니다. 얼핏 보기에도 도요오카 들판은 황새들의 낙원이었습니다. 잘 정돈되고 깨끗한 들판 곳곳에 황새 인공둥지가 봉화대처럼 서있었습니다. 우리는 황새복원센터와 황새고향공원을 방문해 일본의 황새복원증식 과정과 생태, 환경, 경제, 학문 등에 대해 브리핑을 들었고 봉순이가 태어난 인공둥지에도 가보고 부모가 누구인지도 알아냈습니다. 황새심포지움에는 1,500여명이 참석할 만큼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도요오카는 황새를 복원하면서 농경지가 복원되었으며 줄었던 인구도 다시 늘었습니다. 인구 9만의 도시에 황새를 보기 위해 연간 40만 명이 방문합니다. 모든 농산물과 공산품에는 무농약 무공해를 보증하는 황새 인증마크가 붙었고 가격도 다른 지역보다 비쌌습니다. 시청 황새공생과장으로 재직하다가 명퇴를 하고 황새마을 촌장이 된 사다케 씨는 황새를 복원하면서 100년 후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염두에 두었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사다께 씨에게 ‘돌아가서 봉순이 잘 돌보겠습니다’라고 말했더니 ‘봉순이를 돌보는 일에 끝나서는 안 됩니다. 환경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거였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나는 ‘얼떨결에’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약속인 것입니다. (그 후 나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2014년 12월 현재 6개월 넘게 봉순이의 껌딱지가 되어 그야말로 ‘개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

다시 김해 화포천으로 돌아온 어느 날, 봉순이가 높이 5M 밖에 안 되는 낮은 전봇대에 앉았습니다. 나는 전봇대 밑으로 다가가 봉순이의 고향 도요오카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봉순이 고향이 참 아름답다거나 봉순이 엄마 아빠가 누구인지도 알아봤고 봉순이가 태어난 인공둥지에도 가봤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봉순이는 애써 이야기를 들으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려다보았습니다. ‘대화’는 30분 넘게 계속되었습니다.

봉순이가 둥지재료를 모으는 게 수시로 관찰되었습니다. 아직 어린새여서 소꿉장난에 해당하겠지만 둥지재료를 모은다는 것은 번식을 준비한다는 의미도 포함될 것입니다. 우리는 김해시 김맹곤 시장에게 인공둥지를 세워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7월 25일에는 도요오카 황새마을 초등학교 아이들이 봉순이를 만나기 위해 화포천을 방문했습니다. 아이들은 농수로생태복원을 위해 미리 준비한 미꾸라지를 농로에 풀어주고 나는 아이들에게 봉순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드디어 지난 8월 22일 화포천 제방 위에 봉순이 인공둥지가 우뚝 세워졌습니다. 정말 감개무량했습니다. 9월 28일에는 SBS에서 ‘안녕 봉순아’라는 제목으로 봉순이의 사생활이 다큐멘터리로 방송되었습니다. 신문과 방송도 다투어 봉순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봉순이가 둥지를 트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합니다. 5년 후, 10년 아니면 20면 후를 생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저녁 산책을 하거나 들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봉순이가 어떤 새인지, 왜 황새가 살아야 하는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일일이 설명했습니다. 명동마을 김두열 노인회장님과 퇴은마을 류성택 노인회장님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도 봉순이 보호에 적극 나섰습니다. 특히 류성택 노인회장님은 시집간 따님 이름이 봉순이와 동명이라면서 더 애정을 가지고 보호활동을 했습니다.    
봉하뜰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지역입니다. 봉순이는 봉하뜰 주변 유기농지역이 아닌 곳에서도 활동했습니다. 그곳에 농부가 농약을 살포하는 날이었습니다. 봉순이는 전봇대 꼭대기에 앉아 자기가 먹이활동을 하던 곳에 농약이 살포되는 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침 몇몇 사람들과 염려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봉순이가 코 앞으로 날아와 앉았습니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봉순이는 훌쩍 날아올라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10월 6일에는 자연의 벗(대표 오창길) 주관으로 한일청소년생물다양성포럼이 열렸고 도요오카 초등학생들이 황새 복원과 환경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10월 11일에는 도요오카 부시장이 김해 화포천을 방문했습니다. 주민들에게 황새복원에 관한 설명회도 하고 황새의 미래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봉하마을을 방문해 김정호, 김경수 전 비서관을 비롯한 관계자들과 서식지 생태환경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10월 20일, 봉순이는 놀랍게도 김해로부터 무려 100km 넘게 떨어진 경남 하동군의 한 농경지에서 사천환경운동연합 김향진 사무국장에 의해 관찰되었습니다. 이찬우 박사와 이인식 선생이 하동으로 달려가 확인했습니다. 나는 다음 날 부리나케 하동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렵사리 봉순이를 찾아낸 곳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으로 물고기를 비롯한 수서생물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녀석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친구를 만난 것입니다. 나는 멀고도 험한 바다를 단신으로 건너온 봉순이가 일을 저지를 줄 알았습니다. 나는 하동군민이 애정을 가지고 돌봐줄 것을 소망하여 녀석의 이름을 ‘하동이’로 지었습니다.  

봉순이와 하동이는 오래된 친구처럼 붙어다니며 먹이활동을 했습니다. 커다란 뱀장어도 잡고 숭어도 잡고 문저리라고 부르는 물고기도 잡았습니다. 하동이의 사진을 박시룡 교수에게 보냈더니 수컷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습니다. 나는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궁금증도 일어났습니다. 하동이는 월동을 위해 러시아에서 온 녀석일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 땅에서 살고 있던 녀석일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월동을 위해 남하하는 황새들은 백령도와 강화도 천수만 시화호에 이르는 경로로 이동하는데 하동이는 그들이 관찰되기도 전에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봉순이와 하동이가 활동하는 농경지는 벼베기가 시작됐는데도 물이 질척했습니다. 간척지였기 때문인데 밀물 때 하천을 따라 올라온 바닷물의 수위가 논과 같거나 높기 때문이었습니다. 황새들이 좋아하는 먹이가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시멘트 구조물이 아닌 돌담식 농수로였습니다. 돌담식 농수로는 물고기나 수서생물이 서식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고 있어서 황새가 살아가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봉순이가 그랬던 것처럼 하동이도 전봇대를 잠자리로 이용했습니다. 그러다가 바람이 불거나 기온이 영상 10도 이하로 떨어질 때는 하천습지에서 잠을 잤습니다. 봉순이는 어렵게 만난 짝이 어찌될까봐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야영도 하고 마을회관 등에 몰래 숨어들어가 잠을 자면서 봉순이와 하동이를 관찰했습니다.

이때 어떻게 냄새를 맡고 왔는지 뉴시스 진주 차용현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특종을 하겠다는 거였습니다. 나는 ‘지금은 보도보다는 보호가 중요하다, 엠바고를 해서 훗날 존경받는 사람으로 기록될 될 것이냐 아니면 보도해서 새들 다 쫓아버리고 두고두고 욕을 먹을 것이냐’ 양자택일을 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결국 차용현 기자는 엠바고를 택했습니다. 고마운 사람입니다. 내친김에 우리는 윤상기 하동군수를 찾아갔습니다. 환경보호과장 등 몇몇 과장들이 배석한 자리에서 윤상기 하동군수께서는 봉순이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내가 보호활동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지원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었습니다.

11월 4일 아침, 안개 자욱한 습지에서 봉순이와 하동이와 마구 다투고 있었습니다. 웬일일까 싶었는데 하동이가 아니고 다른 녀석이었습니다. 다리에 흰색 가락지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밤 사이에 황새 한 마리가 더 늘어난 것입니다. 나는 서둘러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가락지에는 B49라고 적힌 글씨가 선명했습니다. 즉시 교원대 박시룡 교수에게 사진을 전송했고 녀석은 지난 4월 28일 교원대에서 치료 중에 달아난 녀석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치료 중이어서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살아있다면서 정말 좋아했습니다. 황새복원센터 윤종민 박사가 출근하다 말고 내려와 확인하고 올라갔습니다. (윤종민 박사는 윤무부 새박사의 아들입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나는 녀석에게 ‘수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박시룡 교수와 함께 황새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하다가 졸지에 세상을 떠난 김수일 교수를 기리자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시룡 교수는 청주 미호천을 황새가 사는 곳으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미호’라고 불렀습니다. 어쨌거나 셋은 하늘 높이 범상하며 세를 과시하거나 서열을 정했습니다. 들판에 활기가 넘쳤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놀라운 일은 또 벌어졌습니다. 습지에서 야영을 하고 일어나보니 황새가 네 마리가 된 것입니다. 눈을 비비고 보았지만 네 마리가 확실했습니다. 11월 6일의 일이었습니다. 일본, 한국, 러시아에서 온 황새들이 하동에 모이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쨌거나 이들이 친구가 된다면 유전학적으로도 매우 바람직한 일이 분명합니다. 나는 하동군을 비롯하여 관련단체, 학자들에게 이 사실을 타전하고 즉각 철저한 보호조치에 들어갔습니다. 넷째 막내는 ‘희망’ 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녀석들은 개구쟁이처럼 몰려다니면 먹이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는 위험이 늘 상존하고 있습니다. 버려진 낚싯줄, 엽총탄피 등으로 보아 이곳이 안전한 곳은 아니라고 판단되었습니다. 나는 군청의 지원으로 곳곳에 조류보호, 낚시금지 현수막과 안내판을 세웠습니다. 배미화 하동군 환경보호과장, 이수복 진교면장을 비롯한 공무원들도 수시로 오가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의 숙소 겸 감시초소로 쓸 컨테이너도 하나 설치했습니다. 나의 개인 연구소가 생긴 것입니다. ^.^
11월 20일에는 도요오카에서 공무원, 학자, 기자들이 하동에 왔습니다. 황새들이 활동하는 습지와 농경지를 돌아보고 맑고 아름다운 생태환경에 감탄했습니다. 황새마을이 있는 예산군청과 국립생태원 한동욱 박사께서도 다녀갔습니다. 11월 21일에는 경남 창원에서 람사르습지재단 주관으로 한일황새보존 포럼이 열려 학자들이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내가 자리를 비울 때는 진주 대아중학교 최진태 선생님과 사천환경운동연합 김향진 사무국장이 틈틈이 모니터링을 하고 하동지역 산불감시원들이 보호활동을 함께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황새들은 끼리끼리 모여 다니며 먹이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과연 정착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땅에 다시 황새들이 번식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나는 관계자들과 협의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황새들을 관찰하면서 깨달은 것은 생태환경이 회복되면 새들은 자연스럽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황새는 우산종이라고 합니다. 한 종이 살아갈 수 있으면 다른 종도 덩달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봉순이를 통해 생태와 농경지를 건강하게 회복시키면 사람과 야생동물이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된 셈입니다.

일본에서 황새를 복원증식 시킨 후 서식지 복원 문제로 방사를 미루고 있을 때 야생 황새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었습니다. 용기를 얻은 복원센터 사람들은 2005년에 드디어 황새를 방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야생으로 돌아간 황새들은 일본 전역으로 흩어져 정착하고 번식했습니다. 야생황새에게는 8월 5일 발견되었다는 뜻으로 ‘하찌고로’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명예 시민증을 주기도 했습니다. <봉순이>도 우리에게 <하찌고로>와 같은 귀중한 존재가 분명합니다.

--황새는 이런저런 곳에서 이런저런 먹이를 먹으며 살아간다.
다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궁금한 것은 ‘그곳이 과연 어디냐’ 하는 것입니다. 나의 숙제는 황새는 어디서 어떤 먹이를 얼마나 먹는지. 황새들이 살아가기에 먹이는 충분한지. 위험 요소는 없는지. 어디로 언제 이동하며 활동범위는 얼마나 되는지. 그들의 정착 가능성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서식지를 보호하고 회복시킬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등등을 연구하고 보호, 조사, 관찰하는 일입니다. 물론 이렇게 수집한 자료는 각각의 지자체와 해당 연구기관에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 도요오카를 다녀온 후 나는 나의 남은 삶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일본의 어떤 사람은 무려 40년 동안이나 자비를 들여 황새를 연구하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오늘 날 일본의 황새복원의 밑거름이 된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오기가 발동했습니다. 긴 고민 끝에 야생황새의 생태를 기록하고 그들이 예전처럼 번식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변화시키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에 나의 나머지 삶을 ‘투자’하는 것도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이제 2015년부터는 예산황새마을에서 단계적 방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황새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의 복원은 아직 요원합니다. 한국의 황새복원은 1996년부터 시작되었지만 황새가 살 수 있는 환경생태복원은 이제부터입니다. 이걸 나는 <봉순이 프로젝트>라 부릅니다. 봉순이 프로젝트는 여러분과 함께 갑니다. 여러분의 후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4년을 마무리하며 아름다운 하동 바닷가에서 도연 합장배.  
  
봉순이 2015년 1월 11일 충남 서산 천수만에서 관찰됨. 이하 추가 기록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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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순이의 번식. 일본 시마네현 운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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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 할머니와 황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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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어야 두루미가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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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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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27 충북 진천
h:2235 v:546
2014-11-26 하동군 금남면 논습지
h:2179 v:557
2014-11-29 경남 하동군 진교면 대치리 염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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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0092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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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제주도 J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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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2-3 천수만 J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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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6 김해 J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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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28 김해 J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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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7-14 김해. J0051 봉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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