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령 / 나의 삶, 나의 여행 1



  H.J.(2003-11-03 14:16:26, Hit : 6215, Vote : 1594
 티벳의 힘을 느끼게 하는 라싸의 사원들 (3)

       티벳의 힘을 느끼게 하는 라싸의 사원들 (3)


오늘은 노브링카궁을 관람했다.  노브링카는 달라이라마가 여름에 거주하던 궁으로 일명 여름궁전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달라이라마는 겨울에는 포탈라궁에 거주하고 여름에는 노브링카궁에 거주했다고 한다.  인도에 망명 중인 14대 달라이라마는 어린 시절에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포탈라보다 밝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그리고 동물들과 같이 뛰어 놀 수 있는 노브링카를 무척 좋아 했다고 한다.  14대 달라이라마는 중국이 티벳을 침공 한 후 이 궁에 거주하다 티벳 군인 복장으로 변복을 하고 군중들 틈을 빠져나가 인도로 망명하였다.  티벳인 가이드를 따라 들어간 노브링카궁은 잘 꾸며진 정원, 연못과 나무들이 있는 아름다운 궁이었다.  티벳은 고산 지대이기 때문에 일반 사원이나 궁전에는 나무가 거의 없다.  그러나 이곳은 아름드리 나무가 있고 연못 가운데에는 정자가 있는 잘 다듬어진 휴식 공간 이었다.  이 여름궁전은 달라이라마가 떠날 때의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그분이 거주하던 방이며 침실, 특히 현대식 타일로 꾸며진 욕실은 그때 이미 서양문물이 티벳에 들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이드는 이곳 저곳을 자세히 보여 주며 설명을 하였는데, 그는 건물에 들어 갈 때는 우리에게 모자와 색안경을 벗으라고 하였고 서양인들이 쓴 두건마저도 벗으라고 하였다. 특히 법당 안에 들어가서는 먼저 가벼운 기도를 올린 후에 설명을 하여 주었다.  다른 가이드들 보다 훨씬 성실해 보였고 신앙심이 매우 깊은 것 같았다.  나는 이 청년에게 이것저것 중국어로 질문을 하였는데 그는 중국어를 할 줄 모른다면서 계속 영어로 얘기했다.  원래 티벳의 가이드들은 관광객에게 영어로 설명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기본적으로 중국어 공부를 하였고 학교 교육도 중국어로 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중국에 대한 거부감으로 중국말 하는 것 조차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중국인 상점에서 물건도 사지 않고 중국 식당에서 음식 조차도 먹지 않았다.

노브링카궁 관람을 마치고 걸어 나오면서 그는 나에게 중국에서 태어났느냐고 물었다.  한국인 인 내가 중국말을 하는 것이 궁금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원래 중국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관심이 많아서 중국어를 배운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한국에서 작년에 “쿤둔” 이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매우 감동적이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으며 눈물도 흘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후에 티벳의 아픔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티벳에 오고 싶었다.  지금 이렇게 너와 이야기하게 되어서 매우 기쁘다.  우리나라도 과거에 일본의 침략을 받아서 36년 동안 식민지로 산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그는 경계심을 풀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티벳청년 A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쿤둔” 은 티벳어로 달라이라마를 말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달라이라마는 원래 몽골어이다.  이 영화는 13대 달라이라마의 환생한 아이를 찾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1959년 14대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하기까지의 격동의 티벳사를 사실에 근거하여 만든 아주 감동적 인 영화이다.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된 비극적인 티벳의 근대사는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A의 아버지는 원래 승려였는데 문화혁명 때에 환속을 강요 받고 결혼하여 지금의 자신이 태어났다고 했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약10년 동안의 문화혁명 기간동안 티벳의 모든 사원들은 철저히 파괴되었고 많은 문화 유산들이 소실되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종교의 자유마저 허락되지 않는 그야말로 암흑 시대였던 것이다.  이때 많은 승려들이 환속을 강요 받고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어떤 승려들은 환속을 거부하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A의 출생은 슬픈 티벳의 역사를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은 슬퍼 보였다.  그들은 과거 일제시대의 우리들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 분노하고 절망하면서도 미래를 준비하며 조국 티벳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있는 그는 매우 훌륭한 청년이었다.  

다음날 헬렌과 나는 티벳 여인들이 입는 전통의상을 입고 사원 관람에 나섰다.  헬렌은 티벳 여행허가증을 받기 위해 묵었던 꺼얼무호텔에서 만난 재미동포 친구이다. 우리는 라싸에 도착하자 마자 여인들이 입는 전통의상이 너무 예뻐서 반해 버렸다.  롱드레스에 허리를 질끈 조여 매는 이 옷은 여인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아름다운 의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상실에 가서 똑같이 진 보라색으로 맞추었는데 어제 저녁에 찾았다.  둘이서 마치 자매와 같은 모습으로 같은 색 옷을 입고 호텔 마당에 나왔을 때 종업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우리를 반겨 주었다.  이방인인 우리가 그들의 옷을 입고 나온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앞 뒤로 돌아서 보며 옷 매무새를 고쳐주었고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였다.  우리는 갑자기 야크 호텔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버렸고 이때부터 모든 종업원들이 아는 척 하고 훨씬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헬렌과 나는 그 후부터 줄곧 이 옷을 입고 라싸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멀리 산언덕에 마치 한 마을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A는 저 곳이 바로 드레풍사원이라고 일러주었다.  이 사원은 한때는 10,000여명의 승려가 머물고 있었던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원이다.  그러나 현재는 약 500여명의 승려만이 머물고 있다.  법당 이외에도 4개의 대학과 2,3,4대 달라이라마의 무덤이 이 사원 안에 있으며 포탈라가 세워지기 전까지 달라이라마가 거주하며 티벳정부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티벳사원들의 규모는 우리가 상상하기 조차 힘들 정도로 규모가 매우 크다.  수십 개의 건물들로 이루어진 사원은 불공을 드리는 법당과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과 승려들이 거주하는 숙소 등으로 되어 있는데, 특히 대법당 안의 거대한 탕카와 불상은 경외심을 느끼게 하였다.  한 법당에 들어서자 마자 문 입구 벽에 쓰여져 있는 문구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붉은 글씨로 쓰여진  “위대한 원수, 위대한 영도자, 모주석 만세” 였다.  그리고 모택동의 초상화도 함께 그려져 있었다.  문화혁명의 잔재인 것이다.  매일같이 법당에 드나들며 이 글씨를 보아야 만 하는 그들은 어떤 심정일까.  나라를 잃은 것도 부족해 침략자의 얼굴을 매일 보아야 만 하는 그들의 울분을 나는 십분 이해 할 수 있었다.  

호텔에서 만난 한 한국인 여행자가 라싸호텔 근처에 한국 음식점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오늘 점심은 한국인 여행자들과 함께 한국음식을 먹기로 하고 그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라싸호텔 근처를 헤메이다 겨우 한국 음식점을 찾았는데 종업원들이 한복을 입고 있는 모양이 너무 허술해서 창피할 정도였다.  우리 한복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랑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 의상이다.  특히 한복의 곡선미는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움 중의 하나로 알고 있는데, 여기의 여자 종업원들이 노랑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바지 위에 그냥 걸쳐 입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마치 한복을 학대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천박한 한복은 처음 보았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 같았는데 왜곡된 한복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매우 안타까웠다.  우리는 물 냉면을 시켰다.  그러나 식탁에 놓여진 물 냉면에는 고추 가루가 잔뜩 넣어져 있었고 게다가 시양차이가 넣어져 있었다.  물론 메밀로 만든 면은 더 더욱 아니다.  시양차이는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야채로 냄새가 매우 독특하여 한국인이 먹기에는 힘든 야채이다.  나는 중국을 여행하며 이것저것 현지 음식을 먹어서인지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난리가 났다.  나는 종업원을 불러서 여기는 한국 음식점이고 우리는 한국 사람인데 왜 냉면 속에 시양차이를 넣었느냐고 물었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냉면 속의 시양차이를 건져내고 다시 가져 왔다.  우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가 즐겨 먹던 냉면과는 거리가 먼 국적 불명의 국수를 냉면이라 생각하고 억지로 쑤셔 넣었다.

오후에는 세라사원을 관람했다.  이 사원은 현재3개의 대학이 있다.  오전에 보았던 드레풍사원은 정치와 학교 두 가지 역할을 했으나 세라사원은 오직 학교의 역할만 하는 학문의 전당이다.  따라서 세라 학승들의 지적수준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원에서는 오후가 되면 토론의 정원에서 승려들의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데 관광객도 관람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사원은 주로 오후에 관람을 한다.  우리가 이 사원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토론이 시작되어 시끌벅적 했다.  붉은 승려복을 입은 승려들이 무리 지어 앉아서 큰소리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승려들은 말소리도 조용하고 걸음걸이 또한 조신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경외심을 갖게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곳의 승려들이 토론하는 모습은 무척 시끄러웠다.  때로는 싸우는 것 같은 큰 목소리와 몸짓으로 손뼉도 치면서 상대방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질문하고 대답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토론 방식은 티벳불교의 가장 중요한 학습 방법 중 하나이며 이렇게 토론을 할 수 있는 학승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엘리트 승려들이다.  그들이 토론하는 언어는 산스크리트어로써 티벳인들 조차도 알아 들을 수 없다고 했다.  
          
                                                                                  



송혜령
(2003-11-03 14:24:43)
H.J. 언니에게서 온 편지를 받고 올렸던 글을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읽다가 문득 언니가 보고 싶어 전화를 걸었었죠.
티벳여행 때 만난 언니, 그 언니의 여행기가 중도에서 끊겨져 있어 여행기를 메일로 다시 보내달라고 했어요.
자유롭게 여행다니던 시절이 그립네요.
언니, 고마와요. 이곳에 언니의 여행기를 마저 올립니다.
중간 중간에 올렸던 티벳사진들은 다시 스캔을 해야 되서
나중에 시간이 나면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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