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령 / 나의 삶, 나의 여행 1



  H.J.(2003-11-03 14:27:53, Hit : 6463, Vote : 1535
 절망과 분노를 사랑으로 승화시킨 노스님 (4)

         절망과 분노를 사랑으로 승화시킨 노스님 (4)


어제 관람한 세라사원 뒷편에는 순례 길이 있다.  이 순례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천장(일명 조장)을 행하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외부인에게는 출입이 허용 되지 않는다.  천장은 티벳의 전통적인 장례풍습으로써 사람이 죽은 후 육신은 토막 내고 뼈는 빻아서 볶은 보리가루와 버무려 새들이 먹게 하는 장례의식이다.  이 천장은 티벳인들은 인간의 육신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다른 물질로 변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모든 만물을 귀히 여기는 불교철학에 바탕을 둔 종교적 믿음에서 비롯된 장례 의식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장례의식이 매우 야만적인 행위라고 말하기도 하나 그것은 티벳의 정신세계를 잘 알지 못하고 말하는 것이다.  살아 있을 때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의 육신은 독수리 조차도 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죽은 후 자신의 몸 일부라도 이땅에 남기지 않기 위해서 선한 삶을 산다고 한다.  나는 천장이 몹시 보고 싶었다.  호기심도 있었고 그들이 이생에서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의 순간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고 싶었다.  그래서 A에게 천장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좀 망설이다가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틀 후에 같이 가기로 약속했다.

A는 나를 한 사원의 거처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은둔생활을 하고 계시는 노스님이 한분 계셨다.  그분은 지금 인도에 망명중인 달라이라마의 시종이었던 분으로 달라이라마와 같이 망명 길에 동행 못하고 라싸에 남아 계시다 인민해방군에 의해 체포되어 21년 동안 옥살이를 하셨던 분이셨다.  그분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수유차(티벳인들이 즐겨 먹는 야크버터차)와 사탕을 권하시며 조용히 말씀하셨다.  지금의 티벳에는 자유가 없다고, 그리고 그분이 그렇게 그리워하는 달라이라마의 사진 조차 가질 수 없다고 했다.  불시에 공안원이 들이닥쳐 달라이라마의 사진이 있으면 압수하고 잡혀 간다고 했다.  그래서 티벳의 사원이나 가정에는 달라이라마의 사진 대신 중국이 인정하는 판첸라마의 사진을 걸어 놓는다고 했다.  그 동안 티벳에서는 승려들을 중심으로 한 여러 차례의 독립투쟁이 있었고 그때마다 많은 사상자가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분은 조국 티벳에 대한 사랑과 달라이라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한 동안 목이 메이셨다. 언젠가는 달라이라마를 꼭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분의 얼굴에서 분노의 빛은 결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인고의 세월을 보낸 그분은 이 엄청난 분노와 절망을 사랑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분이셨기 때문이다.  잔잔한 미소와 평화로운 모습으로 말씀 하시는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눈시울은 붉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나의 얼굴은 눈물 범벅이 되고 말았다.  그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어 가슴 깊이 요동쳤다.  그분은 사원을 떠나는 나의 목에 카닥(기쁜 일이 있을 때 또는 행운을 빌어줄 때 상대방의 목에 걸어주는 것으로 행운을 상징하는 8가지 문양이 새겨져 있는 흰색 천)을 걸어 주시고 당신의 이마를 나의 이마에 대시고 평안한 여행이 되기를 축원 해 주셨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흥분하고 혈기를 부리는 나에게 그 분은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용서를 가르쳐 주셨다.  그 분과의 소중한 만남을 나는 결코 잊지 못 할 것이다.

다음날 헬렌과 포탈라궁을 관람하러 갔다.  포탈라는 티벳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며 또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라싸 시내 어느 곳에서나 잘 보인다.  나는 라싸 시내를 돌아 다니다 방향을 잃어버리면 포탈라를 중심으로 하여 방향을 찾곤 하였다.  이 곳은 1600 여년에 5대 달라이라마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5대부터 13대 달라이라마의 무덤이 있다.  이 궁이 완성된 후 달라이라마가 거주하게 되면서 정치의 중심은 자연히 드레풍사원에서 포탈라궁으로 옮겨졌다.  문화혁명 때에 다른 사원이나 궁들은 홍위병들에 의해 많은 피해를 보았으나 이 궁은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곳이다.  당시 총리였던 주은래가 포탈라는 보호해야 한다며 자신의 군대를 보내 지켰기 때문이다.  지금 이 궁 앞에는 인민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라싸의 민초들이 살던 정다운 거리였고 홍등가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6대 달라이라마는 술과 여자를 좋아하여 이 홍등가를 자주 찾았다고 전해진다.  이 달라이라마는 후에 몽골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로 사망하였기 때문에 달라이라마 중 유일하게 무덤이 없고 티벳인들 조차 좋아하지도 존경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포탈라는 동양의 베르사이유답게 웅장한 규모를 뽐내며 우리를 맞이했다.  13층 높이의 이 궁은 우선 규모가 너무 커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언덕을 올라 궁으로 가는 길은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찼다.  고산지대 이기 때문이다.  원색으로 화려하게 칠해진 궁전의 벽과 질서 정연하고 아름다운 문양의 천들이 나풀거리는 포탈라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 내고 있었다.  수천 kg의 금으로 장식된 달라이라마들의 무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 했으며, 특히 5대 달라이라마의 무덤은 높이가 14m 이고 3,700kg 의 금으로 장식 되어 있었고 그 규모가 너무 커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포탈라의 한낮은 매우 조용했다.  일반 관광객들은 주로 오전에 관람을 한다.  관람객들이 모두 빠져 나간 포탈라는 친절한 몸 짓으로 우리에게 다가 왔다.  마침 점심 시간인 것 같았다.  두 명의 사람들이 밥과 반찬이 담긴 통을 들고 다니며 법당에 계신 승려들에게 점심 공양을 하고 있었다.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 한 우리는 그것을 보니 배가 더 고팠다.  헬렌은 그들 앞으로 다가 가더니 배가 고파 죽겠다며 밥 좀 달라고 어리광을 떨었다.  나도 덩달아 맛 있겠다고 하며 침을 흘리며 쳐다 보았다.  그들은 당신들은 밥을 주어도 담아 먹을 그릇이 없어서 줄 수가 없다고 하며 난감해 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한 스님이 자신의 도시락 통을 들고 나와 물로 깨끗이 씻어서 내밀며 여기에 담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은 따로 그릇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점심을 대접하였다.  그 스님과 우리는 마주보고 앉아서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스님은 영어, 일본어 그리고 중국어에 능통한 엘리트 스님이었고 숙부 또한 승려로써 스웨덴의 한 대학에서 티벳학을 강의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자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10살에 승려가 되었고 지금까지 줄곧 14년 동안 포탈라에서 승려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가문은 전통적인 승려 가문이었다.  현재 24살이라고 말하는 그 스님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깊은 경륜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그 스님 역시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모습으로 티벳의 암울한 현실에 대해 얘기했다.  이전에는 포탈라에서 바라본 앞 마을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인민공원이 들어서고 넓은 포장도로가 닦여지면서 이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어서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바깥을 잘 내다 보지 않는다고 했다.  개발이라는 불청객이 어김없이 금단의 도시 라싸에도 찾아 오면서 그들은 신음하고 있었다.  아마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라싸도 중국의 다른 도시와 같은 특징 없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다시 포탈라를 구석구석 살피기 시작했다.  이 궁은 규모가 너무 커서 다 볼 수도 없었고 관광객에게는 일정한 곳 만 관람이 허용되었다.  어느 한 법당에 들어가 불상들을 보며 설명서를 읽고 있는데 한 스님이 다가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덧붙여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던 티벳의 역사도 알려 주었다.  그런데 법당 안을 둘러 보다가 불상을 둘러 싸고 있는 유리에 온통 각 나라에서 온 관람객들이 시주한 지폐로 도배를 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 중에 한국 지폐는 아무리 찾아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니 이럴 수 가.  우리는 배낭을 뒤져서 만원, 오천원, 천원짜리 지폐를 꺼내서 시주를 하였다.  그 스님은 시주한 한국지폐를 유리에 붙이려고 빈 공간을 찾았지만 좀처럼 찾을 수 가 없었다.  그러자 일본지폐를 떼어내고 그 자리에 한국지폐를 붙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의미 있는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는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 스님은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렇다 그들과 우리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간직한 민족인 것이다.  스님은 다시 작은 상자 하나를 가지고 와서 그 안에서 지금은 사용 할 수 없는 50년 동안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티벳은화를 꺼내어 우리들 손에 쥐어 주시며 티벳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은화를 받아 쥐는 내 손은 떨리었고 이 은화가 사용되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도하였다.  그 법당을 떠나면서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티벳의 현실을 알리겠다고, 그리고 우리는 티벳을 사랑하며 결코 티벳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스님은 우리의 손을 꼭 잡으며 탱큐라고 수없이 되풀이 하였다.  법당의 계단을 내려오며 나의 두 눈에서는 또 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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