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령 / 나의 삶, 나의 여행 1



  H.J.(2003-11-03 14:31:48, Hit : 6409, Vote : 1553
  내 가슴 깊은 곳에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은 그들, Tibetan (5)

내 가슴 깊은 곳에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은 그들, Tibetan (5)


오늘은 A와 천장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다.  이 장례의식은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제한 하기도 하지만 특히 유가족들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천장을 보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A는 근사한 오토바이를 타고 호텔에 나타났다.  웬만한 승용차 보다 비쌀 것 같은 번쩍번쩍하는 멋있는 오토바이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해 하는 나에게 친구에게 잠시 빌렸다고 했다.  라싸에서 오토바이 타다니 이건 또 웬 행운인가.  얼른 뒷자리에 올라 타고 라싸의 거리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두려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이러다가 라싸에 내 뼈를 묻게 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한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무서우니 좀 천천히 가자고 했지만 그는 무서워 하지 말라며 더욱 속도를 내며 달렸다.  속도가 더욱 빨라지면서 나는 이상한 쾌감이 내 온몸을 사로잡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좀 더 빨리 달리면 하늘로 날라가 버릴 것 같은 묘한 기분에 휩싸이며 오염되지 않은 히말라야의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 마셨다.  어느덧 오토바이는 외곽으로 빠져 어느 척박한 산자락에 닿았다.  산 중턱에는 건물이 한 채 있었고 벌써 냄새를 맡은 독수리들이 무리 지어 날고 있었다.  천장의식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는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했다.  허락을 받지 못 한 것 같았다.  여기까지 와서 들어 갈 수 없다니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의 성스러운 장례의식을 한낮 구경거리로 생각했던 나의 경박함을 반성했다.
  
그는 오토바이를 돌려서 온 길을 다시 빠져 나갔다.  그리고는 그의 집으로 나를 안내 했다.  일반적인 티벳의 가옥은 가운데 마당이 있는 미음자 모양의 2층 또는 3층으로 되어 있고 여러 가구가 같이 살고 있다.  그의 집은 규모가 작았고 그의 가족만이 살고 있었다.  1층은 부엌과 창고 등이 있었고 2층은 침실과 거실 겸 응접실로 쓰고 있는 방이 있었다.  그는 나를 응접실로 안내 하였는데 방안은 온통 작은 불상과 탕카(탱화)들로 가득 차 있었고 14분의 달라이라마를 상징하는 14개의 놋 그릇에는 깨끗한 정한 수가 담겨져 있었다.  응접실 이라기 보다는 작은 법당을 연상시켰다. 그들의 티벳 불교는 생활 속 깊이 살아 숨쉬는 삶의 원천 인 것이다.  그는 달라이라마는 자신의 모든 것 이라고 했다.  티벳인들은 달라이라마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 분을 만나기 위해서 살아 가고 있고, 또한 그 분을 만나는 것은 생애 최고의 기쁨 인 것이다.  내가 티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달라이라마를 만나러 언젠가는 인도의 다람살라에 갈 것이라고 말했고, 이미 만난 사람들은 그 기쁨을 간직하며 남은 생을 살고 있었다.  달라이라마, 그분은 티벳인들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계시는 지혜의 바다인 것이다.  영화 “쿤둔”에서 인도 국경에 도착한 달라이라마에게 인도 국경 수비대원이 물었다.  “감히 묻자오니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 분은 대답하셨다.  “나는 비천한 비구일 뿐이오.”  국경 수비대원은 다시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부처이시옵니까?”  그 분은 다시 대답하셨다.  “나는 그림자 일 뿐이오. 물위에 비친 달처럼 나를 통해 자신의 선한 모습을 보게 할 뿐이오.” 라고.

그의 누이는 수유차를 권하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동생 같은 누이인 예쁜 그녀는 장롱에서 블라우스 한 벌을 꺼내어 내게 선물했다.  내가 입은 그네들의 옷은 원래 속에 블라우스를 입고 그 위에 입어야 하는데 나는 속에 블라우스 대신 머플러를 하고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내 옷 모양새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진 보라색에 잘 어울리는 아주 예쁜 블라우스였다.
  
우리는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착포리 언덕으로 갔다.  착포리는 원래 의과대학이 있던 자리인데 인민해방군이 티벳을 점령한 후인 1959년 라싸에서 큰 폭동이 있었고 그때 완전히 파괴되어 지금은 그 흔적조차 없어져 버렸다.  티벳에서는 고대부터 수술이 행하여 졌으며 특히 티벳의 약초는 그 효험이 매우 뛰어나 거의 모두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티벳 전통의학에서는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9세기경에 왕의 어머니가 수술을 받던 도중에 사망하여 왕명으로 금해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착포리 언덕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단순한 순례 길로 변해 버렸다.  5가지의 색으로 만들어진 탈쵸가 나부끼고 형용 할 수 조차 없는 수백개의 크고 작은 화려한 암벽화가 끝없이 그려져 있는 이 언덕은 단숨에 나를 사로 잡아 버렸다.  나는 그 화려함에 빠져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A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나의 팔을 잡아 끌며 여기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언덕 바로 옆에는 중국 군 부대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들키면 큰 일 난다고 하며 나를 재촉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후에 알았지만 이곳은 외국인의 출입이 제한된 곳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옆에 중국 군 부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 티벳여인 전통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A의 도움으로 그곳을 들어 갈수 있었던 것이었다.  

헬렌 일행이 예정을 앞 당기어 사흘 후에 네팔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같이 가자고 했지만 몇 년째 노환으로 누워 계시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그들과 동행하지 못 하고 한국으로 돌아 가기로 했다.  그들보다 하루 일찍 떠나기로 결정하고 성도까지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원래는 버스를 타고 꺼얼무로 갈 예정이었지만 라싸로 들어 올 때의 악몽을 떨쳐 버릴 수가 없어서 거금 1,270위엔을 쓰며 성도행 비행기를 타기로 한 것이다.

라싸를 떠나는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티벳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나는 그 험한 곤륜산을 넘어 다시 돈황을 거쳐 꺼얼무로 거기에서 다시 허가증을 받기 위해 이틀을 기다렸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마침내 라싸에 도착했는데, 떠나야 하다니 아쉬움이 너무 컸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빗방울은 점점 굵어졌다. 라싸도 나와의 기약 없는 이별을 슬퍼하는 것 같았다. 헬렌과 나는 뜨거운 포옹(?)을 하며 아쉬운 이별의 정을 나누었고 질퍽거리는 라싸를 그렇게 떠났다.

나는 이번의 중국 오지여행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를 했다.  우선 많은 관련서적을 통해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배웠고, 그들 민족이 갖고 있는 아픔을 이해했다.  그리고 그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언어를 배웠다.  여행은 준비한 만큼 보인다고 했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그들은 더 넓은 가슴으로 화답한다.  여행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그 만남을 통해서 나를 발견하고 좀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해준다.  꼭 10년 전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나는 3달 동안의 유럽여행을 한 적이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 역사의 현장에서 나의 눈은 너무 황홀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고 있어도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하였고, 마치 내가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의 늪에 빠지기도 했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천명의 나이의 문턱에서 2달 동안 실크로드를 따라 타클라마칸 사막을 넘나들며 그 옛날 화려했던 서역의 오아시스 도시들을 만났다.  과거의 화려함을 뒤로 한 채 절대빈곤의 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은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서로를 위로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티벳을 만났다.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있는 은둔의 땅 Tibet, 그곳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해 준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리고Tibetan, 그들은 찌든 내 영혼을 소생케 해 준 싱그러운 바람이었다.

10년 전의 유럽여행이 눈으로 하는 여행이었다면 이번의 오지여행은 가슴으로 하는 여행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계속되었던 가슴앓이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되었고 그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내 가슴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내 가슴 깊은 곳에 영원한 그리움으로 남은 그들 Tibetan, 그들을 만날 수 있어서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그들은 분명 전생에 나의 혈육이었으며, 나의 가까운 이웃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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