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령 / 나의 삶, 나의 여행 1



  송혜령(2003-10-20 11:15:52, Hit : 4106, Vote : 1350
 인도 여행기 - 바라나시 (7)

        
Written by 송혜령 [pinecone55@hanmail.net]  [2001/12/05 17:28]  Hits: 206 , Lines: 55  
인도 여행기 - 바라나시 (7)  
삶과 죽음이 함께 흘러드는 갠지즈강
2000년 12월 1일


모두가 잠든 새벽 일찍 강가의 해돋이를 구경하려고 왕언니랑 함께 숙소를 빠져 나왔다. 어제 새벽 갠지즈강가의 해 떠오르는 모습에 가슴 뭉클대던 감동을 받았는데 오늘도 그런 느낌을 또 받고 싶었다.

좁은 골목길 미로를 따라 내려가 강가에 이르니 화장터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뱃사공이 우리를 반긴다. 일인당 20루삐에 배삯을 흥정하여 어제와 똑같은 행로를 택해 노를 저어 나아가니 동쪽 넓디 넓은 모래사장 저편 넘어로 동그란 해가 물안개속을 뚫고 주황빛을 뿜어내며 강 위로 모습을 드러내더니 한 줄기 일렁이는 불빛으로 물살을 가른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 위로 한무리의 새떼가 유유히 날고 아침해를 더욱 가까이 보기 위해 먼저 가 있었던 어느 배의 잔영까지 한데 어우러지니 갠지즈강가의 해돋이 모습은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탓일까 아니면 벌써 갠지즈강가의 일출 모습에 어느새 익숙해진 걸까? 해는 같은 해고 해돋는 모습 또한 같으련만 기대와는 달리 가슴 뭉클거림이 어찌 어제만큼만은 못한 듯하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새로운 물이 계속 우리에게 흘러오기 때문이다.' 강에 대해서 철리적으로 설파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긴 유명한 경구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해돋이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화장터를 지나치다 호기심이 발동해 시신들을 화장하는 모습을 어제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았다. 여러군데서 화장의식이 행해지고 있는데, 이미 장작불이 활활 붙어 잘 타고 있는 시신, 방금 도착하여 강가강에 적셔진지 얼마 안되었는지 불이 잘 붙지않아 허어연 연기만 뿜어내고 있는 시신, 불에 타들어가다 다리통이 툭 떨어지는 시신, 머리통이 으깨어지고 있는 시신, 시신 시신들...

화장일을 하는 어떤 한 인부는 시신이 골고루 잘 타라고 막대기로 몸뚱아리를 쑤셔대고 있다. 아직 덜 타서 그런지 그럴 때마다 내장같은 것들이 보인다. 화장을 집행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마치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들처럼 보인다. 유족들은 아무 표정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다. '죽음이란 단지 강가강 저너머 동쪽으로 거처를 옮기는 행위에 지나지 않으니 생에 집착을 하지 말라'는 힌두 철학을 믿는 이들이기에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는 걸까?

적나라하게 화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보니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 참 별거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가가 젖어온다. 아, 영혼을 떠난 헛껍대기 사람 육신이란 죽으면 이렇게 불탄 나무쪼가리같이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없어지는 것이거늘....

화장일을 하는 인부들은 하리잔(불가촉 천민)이라고 부르는 천민계급 사람들이다. 깊은 상념에 빠져있는데 무섭게 생긴 인부 한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여자들은 화장터 근처에 있으면 안된다'며 쫓아낸다. 뭐, 부정 탄다나...

숙소에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는데 자꾸만 아까 시신이 잘 타라고 막대기로 몸뚱아리를 쑤셔대던 장면이 눈에 아른거려 밥맛을 잃는다. 기분이 참 묘하다. 한여름 야외에 나가 바베큐 할 때 고기를 잘 익으라고 요리조리 뒤집는 모습이 연상되어 눈 앞에 떠 오르는 것은 웬 까닭일까?

왕언니와 스물세살의 지선이는 싯달타부처가 득도하여 제자들에게 첫 설법을 했다는 바라나시 근교의 사르나트에 있는 성지'녹야원(鹿野苑)'을 구경가고 나는 방에서 쉬면서 그동안 인도를 여행하면서 배웠던 지식과 느낌들을 조그만 수첩에 적어나간다.

갠지즈강을 현지어로 강가(Ganga)라 부르는데 '성스러운 어머니' 라는 의미다.이를테면 강 자체가 신격화된 여신 어머니인 것이다. 바라나시란 지명이름은 북쪽의 바루나강과 남쪽의 아시강이 합쳐진 말이다. 바라나시의 다른 이름은 순례성지의 이름으로 카시(KashI)라 하는데 그 뜻은 '영적인 빛으로 충만한 도시'라는 뜻이다. 싯달타부처가 득도한 후 한 첫 말이 '진리의 법륜(法輪)을 굴리기 위하여 카시로 가련다. 눈먼 어둠의 세계에서 불사의 북을 치련다.'이다.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자기 자신에게 귀의하고, 법法에 귀의하며, 남에게 귀의하지 말라. 스스로를 광명(光明)으로 하고, 진리의 법(法)을 광명으로 삼되 남을 광명으로 삼지 말라.' 생자필멸(生者必滅)'모든 생(生)한 것은 반드시 멸(滅)한다.인생의 무상(無常)함을 설파한 싯달타 부처의 마지막 말이다.

인도인들은 죽음을 `목샤'(자유)라 부른다. 영원한 자유로 가는 관문이 바로 죽음이며, 이생에서 사용한 육신은 단지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육신은 물, 불, 공기, 에테르, 흙 등 5개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장을 통해 원소가 해체된 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게 이들의 믿음이다

낮잠을 가볍게 잔 후 침대에서 뒹굴며 지선이가 보라고 주고간 류시화의 '가을 호수로 가는 여행'을 읽고 있는데 왕언니가 녹야원 구경을 마치고 오후 세시쯤 돌아 오셨다. 나는 또 강가강에 가서 나룻배를 타고 싶었다. 내일 저녁이면 이곳 바라나시를 떠나 네팔로 가는데 강가강에서 어찌 일몰의 모습을 한번 더 보지 않을 수 있겠냐며 피곤해 하시는 왕언니를 막무가내로 졸라댔더니 왕언니는 피식 웃으며 마지못해 같이 나서준다.

강가로 가는 길에 혼자 화장터에서 서성이고 있는 여대생인 지희를 만나 셋이 함께 나룻터로 갔다. 두시간에 70루삐를 주기로 하고 대기하고 있는 노란색의 나룻배에 올라탔다. 눈이 사팔뜨기인 사공은 열댓살쯤 되어보이는 소년이다. 소년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지만 간단한 의사소통엔 지장이 없었다. 소년은 강물 위를 미끄러지듯이 노를 저어 나가더니만 중간에 갑자기 노젓기를 중단하며 호주머니에서 반짝거리는 네모난 봉지를 꺼내든다. 그것은 씹는 담배였다. 담배를 입안에 털어 놓고 우물우물 씹더니만 강물위에 퉤퉤! 뱉어 내는데 입술과 이빨, 혓바닥등 입안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어 방금 피를 빨아 먹은 드라큐라같은 모습이다.

마약성분이 들어 있다는 담배를 씹어 뱉어버리는 소년은 안 그래도 사팔눈이라 누구를 향해 쳐다 보는지 헷갈리는데 그는 마치 꿈을 꾸듯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며 앉아 있었다. 그의 눈을 바라보니 약빨이 도는지 눈맥이 반쯤 풀려 있다. 소년이 노를 젖지 않아도 배는 저절로 강물을 따라 어디론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 힌두인들은 말한다지 '갠지즈강가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흘러만 갈 뿐이다.' 옳은 말이야...

문득 물 위에 떠있는 희끄무레한 어떤 물체에 시선이 주어졌다. 그 물체위엔 개 두마리가 서로 으르렁대며 무엇을 뜯어먹고 있었다. 눈여겨 자세히 보니 화장을 하지 못하고 그냥 강으로 흘려 버려진 사람의 시신이었다. 개들은 지금 한창 육포를 뜯어가며 맛있게 포식을 하는 중이였다. 지희는 차마 그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고 머리를 다른곳으로 돌려 외면하고야 만다. 왕언니와 나는 그 시신과 개들을 번갈아가며 한동안 넋나간듯 바라보다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아, 어쩜 이럴 수가... 갑자기 속이 매스꺼워져온다.

무심한 강물을 타고 조금 더 그렇게 흘러가니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뼈대가 큰걸 보니 사람의 뼈는 아닌 것 같고 죽은 소의 뼈 같다.한 마리의 개는 뼈위에 올라서서 머리를 쳐박고 무엇인가 정신없이 뜯어먹고 있고 또 다른 서너마리의 까마귀들이 개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듯 뼈위에서 얌전히 앉아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서너마리의 까마귀떼들도 이 먹이를 놓치기 아쉽다는 듯 주변을 빙빙 맴돌고 있다. 나는 사진기를 얼른 꺼내 이 순간을 포착한다.

동쪽에 위치한 모래사장에는 아이들이 떼지어 놀고 있다가 우리들을 보더니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짓을 하고 있다. 아이들 주변에는 나룻배가 하나가 정착이 되어 있고 그 뒤로 조그마한 간이찻집이 보인다. 어떤 이는 강물을 떠서 그 물로 짜이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고...

강물위에 떠다니며 썩어가는 사람의 시신과 동물의 시체 위에 달라붙어 그나마 남은 육신의 잔해를 먹고 있는 개와 까마귀들, 그 혼탁해졌을 강물을 떠서 짜이를 만들어 마시는 사람들, 성스러운 강물이라고 몸을 담고 목욕을 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혼이 정화된다는 갠지즈 강가....

아! 죽음과 생이 공존하는 강가강, 가슴이 벅차오르며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나의 마음은 혼동스러워졌다. 인도에서 여러곳을 다녔어도 이렇게 나의 마음을 강렬하게 흔드는 곳은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렇게 강가강 위에 떠 있었다. 아니, 그냥 정처없이 흘러 다녔다. 어느새 해는 갓트 뒤 건물로 넘어가고 노을이 하늘 전체를 시뻘겋게 물들이며 내 가슴에도 상념의 불꽃을 지핀다.

마약빨이 약해지는지 소년은 슬그머니 다시 주머니로 손이 가더니만 담배봉지를 꺼내 안의 내용을 입에 털어 넣는다. 기분이 좋아진 소년은 노래를 부르며 노를 젓기 시작했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바라나시 강가강에서의 마지막 일몰을 바라 보노라니 나도 모르게 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이곳 바라나시 갠지즈강가! 삶이 권태롭고 문명이 황폐하다고 느껴질 때 언젠가는 다시 한번 더 이곳을 찾아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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