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령 / 나의 삶, 나의 여행 1



  송혜령(2003-10-20 07:21:43, Hit : 4114, Vote : 1470
 인도 여행기 - 아그라 (6)

        
Written by 송혜령 [pinecone55@hanmail.net]  [2001/11/27 16:06]  Hits: 107 , Lines: 67  
인도 여행기 - 아그라 (6)  
아그라에서 보낸 시간들
2000년 11월 26일


타즈마할을 나서니 여러명의 삐끼(호객꾼)들이 왕언니와 나한테 벌떼처럼 달라붙는다. 자기네 상점에 들어와 보라는 둥, 달러를 환전하라는 둥 어지럽게 우리 주위를 에워싸며 길을 내주지 않는다. 배는 고프지, 뙤약볕은 뜨겁지, 목도 마르지... 빨리 어디 마땅한 식당을 찾아 시원한 음료수에 목을 축인 후 허기진 배를 달래고 싶은데 삐끼들이 이렇게 찰거머리같이 둘러붙어 늘어지며 극성을 부리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참을성도 한계가 있다. 'Leave us alone!' 소리를 꽥 지르자 삐끼들도 주춤하며 물러선다, 길을 비켜주는 틈을 타 잽싸게 왕언니의 손을 잡아끌고는 그 자리를 피해 종종걸음으로 뛰쳐나왔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그런지 이곳 타즈마할의 삐끼들은 관광객들을 한층 더 성가시게 굴며 호객행위들을 해대나 대개는 선한 사람들이라 싫다거나 거절의 의사를 분명히 하면 잘 물러나준다.

타즈마할과 호텔사이를 오가는 골목길에는 기념품가게, 환전소, 구멍가게, 음식점, 정육점 등등 여러 상점들이 즐비하게 널려있는데 인터넷카페도 보인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을 지나 사거리로 나서니 손님끌기를 기다리고 있는 릭샤꾼들이 '손님,어디로 모실깝쑈?'하며 한꺼번에 우루루 또 달라 붙는다.

릭샤꾼들의 얼굴들을 보니 이미 낯이 익다. 어젯밤 왕언니와 저녁식사하러 갈 때 분잡을 떨어대든 그 릭샤꾼들이다. 우리를 태워준 싸이클 릭샤꾼도 보이고... 이곳도 지정된 자기들만의 특정 영업구역이 있나보다. 우리는 웃으며 릭샤꾼들에게 가까운데 밥을 먹으러 간다고 말하니 아쉬운 표정들을 지으며 물러난다.

사거리에서 왼쪽 골목길을 끼고 들어서니 허름한 호텔들이 모여있고 그 대부분의 호텔들은 옥상에 식당들이 있다. 우리는 계단 폭이 좁고 가파른 4층 건물로 된 어느 한 옥상식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K사장이 혼자 털래털래 들어온다.

단체배낭여행이라도 일단 정해진 도시에 숙소를 잡아 짐을 푼 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때까지는 따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 일행들은 각자 자기가 구경하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 K사장은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홀로하는 여행의 자유로움을 즐기는지 혼자 곧잘 돌아 다닌다. 어제 저녁에 식사대접을 하고 싶었는데 부재중이라 함께 못갔다며 오늘 저녁식사만은 꼭 같이 하자고 손도장 쾅 찍고 약속을 받아냈다.

점심식사 후 왕언니,K사장은 타즈마할에서 2km 떨어진 아그라 城(Agra Fort)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여 함께 가고 나는 감기기나 추스리며 쉬고싶어 혼자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천천히 걸으며 정육점을 지나치는데 고기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한두평 될까말까한 조그만 정육점 안에는 양고기로 보이는 육류 몇마리가 고리에 걸려 천장에 매달려 있다. 몸 통째로 걸려있는 양고기 표면에는 파리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내장을 들어낸 뱃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며칠전 자이살메르 사막에서 캠프할 때 주방장과 낙타몰이꾼들이 살아있는 양을 즉석에서 잡아 요리해줘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땐 양을 죽이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지도 않았고 배도 하도 고파 아무 생각없이 먹는 일에만 열중했는데 저렇게 팔 다리가 축 늘어져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온 몸을 파리에게 뜯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는 양고기 먹고 싶은 생각이 싸악 없어진다.

정육점을 지나 호텔에 거의 다 오니 인터넷카페란 간판이 보여 그동안 밀린 메일을 체크하려고 그곳에 들어갔다. 델리에서는 인터넷접속속도가 느려터져 한시간반이나 인내심을 발휘하며 접속을 기다렸는데 이곳 아그라는 델리보다 더 후진 곳이니 접속은 아마 엄청 더 느릴것 같아 그냥 지나치려다 에라이, 일단 한번 들어나 가보자. 큰마음먹고 들어가보니 하하하! 코딱지만한 방에 피씨(Personal Computer)라고는 딱 두대만 덜렁 놓여있다.

시간당 사용료가 얼마냐고 물으니 40루삐(천원정도)라고 한다.델리에서는 10루삐였는데 이곳 아그라는 4배나 비싸다. 한 피씨 앞에 앉아 접속을 시도하는데 30분을 기다려도 껌뻑껌뻑거리기만 할 뿐 감감 무소식이다. 주인으로 보이는 20대 사내에게 접속하기 힘들어 그냥 가겠다고 하니 자기가 한번 시도해 볼테니 호텔에 가서 기다리란다. 접속이 되면 부르겠다고 하여 나는 호텔방으로 향했다.

쿵짝 찹쌀궁합인 나의 짝궁 왕언니 없이 혼자 어두컴컴한 방에 들어와 콜록거리며 들어누워 있으려니 까닭모를 외로움이 스물스물 덮쳐온다. 문밖에는 저리도 밝은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데 몸이 좀 아프다고 내가 이렇게 맥을 놓고 청승만 떨고 있을 수야 없지. 으싸, 빨래나 하자!

그동안 여행 다니면서 먼지로 더러워진 바지나 긴 남방셔츠같이 부피가 큰 빨래들은 머물고 있던 숙소에 세탁을 해달라고 맡기고 속옷과 양말같은 잔거지 빨래들은 매일 내손으로 직접 빨아 화장실에 널어 말리고 다녔었다. 통풍이 잘되는 화장실은 빨래가 비교적 빨리 마르는데 이렇게 밀폐되어 통풍이 안 되는 화장실은 빨래가 눅눅한 채로 습기를 지니고 있어 길 떠날 시간이 급박해지면 그냥 비닐백에다 쑤셔넣고 다음 여행지로 떠나는 수가 많았다.

나는 배낭속에 있는 밀린 빨래들과 비닐백에서 축축한 채로 숨을 못 쉬고 있는 속옷과 양말들을 모두 꺼내 빨래비누로 쓱싹쓱싹 힘주어 문지른 다음 통풍이 잘 되는 문밖의 공동화장실과 올라오는 계단사이에 걸려있는 빨래줄에다 쫘악하니 펴서 햇볕을 쨍쨍 보게해 주었다. 기차간, 사막, 더러운 침대보위에서 나를 보호해줬던 침낭도 탈탈 먼지를 털어 뙤약볕 아래 살균좀 되라고 널어놓으니 마음도 가뿐 몸도 가뿐하다. 역시, 사람은 움직여야 돼!

흐뭇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와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잠이 들었나보다. 똑똑!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떠 부시시 일어나 문을 따주니 K사장이 문앞에 서 있다. 나보러 '혹시 왕언니 와 계시냐'고 묻는다. 잠에서 갓 깨어나 몽롱한 정신으로 그를 쳐다보니 매우 당혹스런 표정이다.

아그라城에서 왕언니와 같이 구경을 하다가 왕언니를 잃어버려 아무리 찾아봐도 못 찾겠어 혹시 먼저 가셨나하고 자기 혼자만 오토릭샤를 타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내가 어리둥절해 하며 고개를 가로로 흔들자 '나중에 다시 와서 첵크'해 보겠다며 다시 K사장은 총총히 사라졌다.

'나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기가 어디라고 노친네(?) 왕언니 혼자 놔 두고 그냥 올 수 있담' 그의 무책임한 행동에 어이가 없어 혼자 궁시렁궁시렁 댄다. 과연, 왕언니께서 혼자 이 호텔을 찾아 올 수 있을까? '오랜 해외여행 경험이 있고 영어를 좀 하시니까 어떻게든 찾아오실 수는 있을꺼야'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며칠전 자이살메르 시내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려 혼이 난 적이 있기 때문에 혹시 왕언니 혼자 길을 잃고 헤매지나 않으실까?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겠다.

시간은 흐르고 왕언니는 안 오시고 잠은 이미 강건너 간지 오래고... 이거, 참말로 무슨 큰 변이나 당하신 게 아냐?' 나의 부질없는 생각을 비웃듯 똑또옥! 후다닥! 문을 여니 왕언니가 빙그레 웃으시며 나를 보고 있지 않은가? 하도 반가와서 손을 잡고 방방뛰며 '언니! 어떻게 된거예요?'하고 숨가삐 물으니 '아그라城에서 희미하게 바라 보이는 타즈마할을 한참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문득 옆을 보니 K사장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급한 성격의 K사장은 한정된 시간안에 많은 곳을 보고싶어 하고 왕언니나 나는 많은것을 보기보다는 한군데라도 오랫동안 미적거리면서 완상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행은 같은 부류의 사람들끼리 마음 편케 다녀야 더 좋다는 걸 다시한번 마음에 새긴다.

왕언니는 아그라城에서 K사장이 소리없이 증발해버려 오히려 그를 찾아 한참을 헤매이다가 그만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관광을 온 50대 후반의 한국인부부와 그들을 가이드하는 한국인을 만났다고 한다. 이 한국인카플은 인도여행을 하는동안 인도에서 유학중인 한국인학생 한명을 고용하여 여러도시를 그 가이드와 함께 다닌다고 하면서 왕언니의 배낭여행에 '나이도 드신 분이 무척이나 용감하시다'며 놀라워 하더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왕언니는 용감한 여성이다. 집떠나 여행하는 것 자체가 고생이지만 모든 게 열악한 이와같은 환경에서 그것도 무거운 배낭을 지고 이도시 저도시 장거리 여행길을 불편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이동해야만 한다는 것은 보통 깡 가지고는 되는게 아닌데...

왕언니는 나이도 지긋이 드신분이 어떻게 인도에, 그것도 힘들다는 장기 배낭여행으로 오실 생각을 하셨을까? 물어보니 인도에 관한 여행기를 많이 읽었는데 한번 인도를 여행했던 사람들은 웬지모르게 다시 인도에 가고 싶어 안달을 하는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왕언니 자신이 몸소 체험해보고 싶었다는 게 그 주된 이유라신다.

다음으로는 여행사들이 제공하는 일률적인 패케지여행을 해보았지만 하도 정신없이 끌고 돌아다니는 통에 여행에서 돌아오면 추억으로 남는게 없어 이번에는 색다른 여행을 하고 싶었다고 하신다. 그리고 젊은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단체배낭여행이 좀더 신선한 감이 들고 정 따라다니기 힘들면 따로 독립하여 여행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기에 용기를 내셨단다.

왕언니랑 이런얘기 저런얘길 나누고 있는데 K사장이 다시 방문을 뚜드렸다. 왕언니의 행방이 걱정이 되어 다시 찾아왔다고 한다. 자초지종 얘기를 나누며 우리셋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문을 나섰다.

식사 도중 K사장은 우리 길잡이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길잡이의 시간계산착오로 델리에서 기차를 놓쳐 하루를 손해봤던 사실, 자주 여행스케줄을 바꾸어 여행지 도시에서 하루이틀 더 머무르게 하는 등, 요는 시간개념에 철저하지 못한 길잡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K사장은 열댓명의 안내를 맡은 길잡이가 빈틈없이 행동하지 않는 게 자기의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이곳 아그라에서 우리 일행들과 헤어져 다른 곳으로 혼자 여행하고 싶다고 한다. 페케지관광같이 조직적으로 미리미리 차편, 호텔을 예약해 놓고 여행객들의 불편을 덜어주는 식의 여행에 익숙해 있는 그는 이번 단체배낭여행에 대해 불만이 많은가보다.

사실인즉슨 나도 20여년간 조직적인 직장생활을 했기 때문에 무슨일이 터지기 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사전예방을 하는데 익숙해온지라, 차질이 생길 때마다 '히히! 배낭여행이란 이렇게 기차도 놓쳐보고 고생도 해보는 게 제맛' 이라며 미안해하는 우리길잡이의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만은 않아 처음에는 불만을 표했었다. 그러나 개인행동의 자유가 결여된 꽉 짜여진 일정으로 숨통 막히는 지극히 상업적인 페케지여행보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자유스럽게 개인행동을 할 수 있고 또 떠돌이 방랑자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배낭여행의 묘미에 점점 재미를 느낀다.

오랜 조직적인 직장생활 동안 관리자로서 경리,재무팀을 이끌며 매사에 빈틈없이 정확하고 확실해야만 하는 업무성격상 은연중에 몸에 배어온 나의 경직된 사고방식이 이런 배낭여행을 통해 차츰 느슨해지며 보다 여유로워지는 느낌이다.

인도여행 경험이 풍부한 길잡이의 느긋한 행동과 우리에게 여기가 다름아닌 기다림과 체념의 나라 인도라는 사실을 무언으로 일깨워주며 안전하게 여행길을 인도하는 우리 젊은 길잡이에게 이젠 고마움마저 느끼는데 K사장이 자꾸 불평만 해대니 더이상 듣기가 거북해 화제를 딴 데로 돌렸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내일 우리와 헤어져 별도의 여행길에 오를 복녀氏를 위한 석별파티에 참석키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다. 복녀씨는 6개월이상 장기여행을 목적으로 우리와 함께한 30세의 여인인데 170cm가 넘는 훤출한 키에 후리후리한 신체와 건강미 넘치는 미모를 지닌 美女다. 마음씨 또한 후덕하여 동행한 여대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복녀씨의 독립선언에 다들 언젠가는 헤어지리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그날이 오니 섭섭하기 짝이없다.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 조만간에 이별을 고하며 제각기 자기의 길로 떠날터인데 같이 여행한 18일동안 함께한 정이 어느새 이리도 깊이 들었는지 복녀씨와 헤어진다는 생각에 가슴이 시려온다.

옥상시멘트 바닥에 철썩 주저앉아 맥주와 안주거리를 앞에 놓고 이별주를 마시는 일행들과 어울리다가 문득 영롱한 밤하늘을 쳐다보니 별들이 총총하게 떠 있다. 그중 제일 밝게 빛나는 별을 우리 일행들은 '복녀성'이라 칭하고 앞으로 저 별을 볼 때마다 복녀씨 생각을 하자고 다짐하며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눈 후 내일을 위해 각자 잠자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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