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령 / 나의 삶, 나의 여행 1



  송혜령(2003-10-20 09:59:18, Hit : 4231, Vote : 1369
 인도 여행기 - 바라나시 (2)



Written by 송혜령 [pinecone55@hanmail.net]  [2001/11/27 16:14]  Hits: 134 , Lines: 54  
인도 여행기 - 바라나시 (2)  
바라나시역에 도착하여
2000년 11월 29일


바라나시 기차역에 도착하니 오전 11시다. 아그라에서 12시간반 걸린 기차여행이었다. 기차에서 내려 개찰구를 빠져 나오려는데 길잡이가 내게로 다가와 "우리일행들이 들은 여행보험 조항에 도난이 카버가 되어 있다. 잘 하면 받아 낼 수 있다"며 나더러 파출서에 가서 수정이의 도난신고를 도와 주란다. 자기도 다른 단체배낭여행팀을 이끌고 길잡이 노릇을 하다보니 몇번 도난신고를 파출소에 가 한 적이 있는데 장장 4시간이나 걸리더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어쩌면 여자가 가서 신고하면 빨리 도난신고서를 작성해 줄지도 모르겠다 하며 '예쁜 누님이 실력껏 잘 해 보라'며 알랑방구를 뀐다. 괜한 소린줄 알면서도 속는 체 하지만 예쁘다는데야 어쩌겠는가? '하하! 그래? 그럼 내 실력을 한번 발휘해 볼까나...'

나의 승락이 떨어지자마자 길잡이는 수정이와 나,그리고 수정이 짝꿍 지희를 기차역에 딸린 파출소로 데려다 주고는 나중에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겠다며 자기는 다른 일행들의 숙소를 잡아주기 위해 이만 가야 한다며 뒤도 안 돌아보고 휘익 그곳을 떠나버린다. 수정이와 마찬가지로 여대생인 지희는 3개월 계획으로 장기여행을 왔기 때문에 혹시 나중에 도둑 맞을 경우 어떻게 도난신고를 하는지 예습삼아 함께 따라 나섰다.

코딱지만한 파출소 내부에는 허름한 철제책상이 덩그라니 두개 놓여 있고 그 책상 넘어엔 베이지색 바지에 카키색 윗도리를 받혀입은 의젓한 정복차림의 인도경찰 두명이 위풍도 당당하게 의자에 앉아 우리들을 맞는다. 나는 이곳에서 도난신고를 하는데 4시간이나 걸렸다는 길잡이의 말을 머리에 떠올리며 나름대로 수를 부린다. 우선 요염하게 은근살짝 미소를 방긋 띄운 후, 내가 누구라고 당당하게 소개하고 수정과 지희도 그들에게 인사시킨 다음 기차간에서 날치기 당한 사건을 자초지종 상세히 설명을 하고 있는데 새벽에 내 잠을 깨웠던 기차경비원들 중 한명이 파출소 안으로 들어와 증인 자격으로 수정이가 도난당한 사실을 대충 더 설명해 주고는 곧 자리를 떠난다.

우리는 무거운 배낭들을 시멘트바닥에 내려놓으며 장기전에 대비하려는데 왼쪽 책상에 앉아 있는 경찰이 자기앞에 있는 의자에 와 앉으란다. 다가가 마주보고 있는 의자에 앉자마자 오른쪽 책상에 앉은 콧수염 얼굴에 배가 좀 나오고 점잖게 생긴 관리자타입의 경찰이 대뜸 나보고 몇살이냐고 물어본다. 어라? 이양반 메너가 빵점이네.숙녀한테 감히 나이를 물어보다니..참, 여긴 인도지.. 뭐 이제 그 잘난 나이 숨길것 까지야 없지..'나는 45살 먹었수다.' 퉁명스럽게 답해주었더니 그는 화달짝 놀라면서 '아니,이럴 수가...'

그는 나의 나이를 25세로 봤다는 것이다. 나참, 기가 차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35세라면 몰라도... 눈도 삐었지 저래가지고 무슨 경찰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어? 하지만 기분은 붕붕 뜨며 째지게 좋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기에 배시시 웃으며 '나의 나이를 알려 주었으니 당신의 나이도 밝혀야 하는거 아니오?'하고 부드럽게 물으니 그자는 나보다 한살 아래란다. 맙소사, 아니 나는 그를 50대 중반으로 봤는데...

인도인들은 실제 나이보다 겉보기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인다. 아마 뜨거운 태양을 받고 피부관리를 잘 않는데다 공해와 매연도 심하고 영양상태도 좋지않을 뿐만 아니라 위생관념이 철저하지 않는 이유등에서 그런가보다. 인도인 평균수명이 50세라는데 벌써 내 나이 45세이니 그럼 만약 내가 인도에서 태어나 살고있다면 앞으로 살 날이 몇년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아이고, 내가 이렇게 세월아 네월아 하며 늦장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는 30대 정도로 보이는 젊은 경찰에게 빨리 도난보고서를 쓰자고 재촉한다. 그는 세월이 좀먹나는듯 펜과 종이를 꺼내더니 편지형식으로 도난당한 시각, 장소, 잃어버린 것 등을 느릿느릿 기록해 나간다.

나이든 경찰관은 기록하는 중간중간에 우리에게 짜이를 시켜주고 밖에서 파는 Guava라는 과일을 사다가 권하기도 한다. 나는 우리가 짜이와 과일값을 지불하겠다고 강력하게 말해도 'You are our guest' 라며 한사코 자기가 내겠단다. 우리가 자기들의 손님이라나. 아마 외국인들이 자기네 나라에 와서 그것도 자기네 관할인 기찻간에서 도둑을 맞아 미안한 가 보다.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중간중간에 여러 경찰들이 들쑥날쑥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경찰한테 보고를 하고 또 지시를 받아간다. 앞에 앉아 있는 경찰에게 저이가 이곳 파출소장이냐 물어보니 그렇단다.

앞에 앉은 경찰은 이것저것 제할일 다하며 딴청을 부리더니 30분이 넘어서야 겨우 리포트를 작성한다. 우리는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 편지형식으로 쓴 리포트를 뒷방 높은 의자에 앉은 서기관에게 또다시 건네주는게 아닌가. 글 잘 쓰는 서기관이 손으로 먹지 몇장을 붙여 서류작성을 해야 된다며 조금 더 기다리란다. 그러면 그렇지, 이런곳에 복사기가 있을리 없지...

에고, 여자라고 별 수 있나... 우리도 꼼짝없이 바라나시의 첫날을 이곳 파출소에서 몇시간이고 이렇게 보내야만 하는구나...실망을 하며 나의 실력을 의심한다. 괜히 예쁘게 웃어주며 싹싹하게 굴었잖아. 죽치고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바닥에 쥐새끼 두마리가 책상밑으로 왔다리 갔다리 한다. 우리는 질겁을 하며 차라리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파출소를 나왔다.

파출소 바로 앞에는 벤치가 놓여 있어 밖을 나와 그곳에 우선 앉았다. 벤치 바로 앞에 보인는 것은 철로길이다. 바라나시에 도착, 기차에서 내릴 때부터 퀴퀴한 냄새가 풍겨오길래 어디서 이런 똥내가 날까 생각을 했었는데 맙소사! 철로길에는 사람들의 똥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옆에는 소들이 무엇을 먹을 게 있는지 코를 땅에 들이박고는 입을 오물오물거리고 있고...

기차가 정지해 있는 역에서는 화장실을 사용하지 말라는 문구가 버젓이 화장실벽에 붙어 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경고인데 사람들이 그냥 그 문구를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밑바닥이 뻥 뚫린 화장실 사용은 기차가 달릴 때만 사용하여야만 하는 게 공중도덕인데......

잡생각도 잠시뿐 향내(?)에 익숙해지니 배가 출출해 온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가 넘어가고 있다. 벤치 근처에서 행상인이 귤을 팔길레 한 봉지를 사서 까서 먹고 있는데 헝클어진 긴 머리에 비쩍 마른 거지노인이 나에게 다가와 '박시시(적선을)'하며 손을 내민다. 나는 귤 2개를 그에게 건네줬는데 싫은지 아니면 생각은 다른 데 있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지니고 있던 다 떨어진 담요를 맨바닥에다 깔고는 그위에 벌렁 들어눕는다. 정갱이가 다 들어난 땟자국 투성이의 허름한 옷을 입은 노인의 모습에 나의 가슴이 아려 온다.

조금 후에 또 다른 거지가 와서는 '박시시'하며 손을 내민다. 이 거지의 행색은 그런대로 봐줄만은 하다. 중년의 사내인데 내가 귤을 주니 넙죽 받아 그자리에서 까 먹는다. 그러자 옆에 누워있던 거지노인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도 귤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하하! 귤이라도 받아 먹어두는게 상책이라 생각을 고쳐먹은 모양이다. 우리들은 사이좋게 그들과 함께 귤을 까먹으며 무언의 시간을 가졌다. 귤을 다 먹고난 후 두명의 거지들은 담요 위에 벌렁 들어누워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오수(午垂)를 즐기고 있다.

아, 얼마나 다른 삶의 방식인가? 비록 빌어먹는 거지일 망정 그들만이 느끼는 행복은 따로 있는 것이리라.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므로 잃어버릴 것 또한 없다는 철저한 무소유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듯한 느긋한 모습들이다.

한동안 땅바닥에 잠들어있는 거지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앉아 있다가 파출소안으로 들어갔더니 파출소장이 자기 와이프하고 점심약속이 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온다. 나는 우리 길잡이가 조금있으면 데리러 올 것이라며 사양했다. 소장이 아쉬워하며 우리가 어느 호텔에서 지낼거냐며 묻기에 샨티게스트하우스(Shanti Guest House)에서 머물거라 하였더니 아, 자기가 샨티 호텔주인을 잘 안다며 무슨 문제가 생기면 자기한테 연락을 취하라고 한다. 참 친절한 인도경찰이다.

조금 후 도난신고서를 다 작성했다면서 젊은 경찰이 수정이에게 카피 한 부를 건네준다. 한국에 돌아가서 보험신청을 할때 필요한 서류란다. 우리는 서류를 챙겨넣으며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파출소를 나왔다. 배낭을 벤치위에 얹어놓고 길잡이를 기다리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를 않는다. 4시간이 걸릴거라며 일행들의 숙소로 안내하기 위해 떠난 길잡이는 정말로 4시간 후에나 나타나려나?

시계를 보니 1시다. 엊저녁 아그라에서 6시경 수제비로 배를 채운뒤 먹은 거라고는 오늘 새벽녘 짜이 서너잔과 과일나부랑이 몇 조각이 고작이니 배가 고프다 못해 이젠 쓰라려온다. 아, 배가 좀 고프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이놈의 밥도둑은 어찌 이다지도 시를 잘 알까.

한 30분쯤이 더 지났을까 길잡이가 저편에서 어슬렁 어슬렁 걸어오는게 보였다. 길잡이한테 경찰관들이 짜이랑 과일등을 사주었고 우리들에게 무척 친절했다는 말을하니 약이 올라 씩씩댄다. 그게 다 우리들이 여자라서 그랬다나! 인도여행 경험이 풍부한 길잡이는 그 전에 한번 그 파출소에서 도난신고를 한 적이 있는데 자기는 그런 대접을 받기는 커녕 딱딱하게만 굴어서 그들과 막대놓고 싸운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경찰들이 자기의 얌새이 콧수염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암튼 2시간이 넘어서야 나타난 길잡이는 먼저간 일행들은 숙소에 짐을 풀고 식사를 하고 있는걸 보고 나왔다며 자기는 배가 무척 고프다고 한다. 파출소앞 벤치옆에 늘어선 리어카에서 계란후라이 쌘드위치를 만들어 주는데가 있었는데 기어코 그 쌘드위치를 먹고 가겠단다.

쌘드위치장사 아저씨는 뜨겁게 달구운 후라이팬에다 기름을 휙 둘르더니 계란을 풀어 오물렛처럼 요리를 하더니만 쌘드위치를 만들어 커다란 나무 이파리에다 담아 내어준다. 길잡이는 그 쌘드위치에다 마살라라는 인도 향료를 듬뿍넣어 뜨거운지 후후 불어가며 맛있게 먹는다.

햐아, 맛있게 먹는 모습을 침을 꿀꺽 흘리며 바라보니까 길잡이가 '누님, 한번 드셔 볼래요?' 하며 나한테도 한쪽을 떼어준다. 배도 고픈김에 옳다쿠나하고 넙죽 받아 먹어보니 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수정이와 지희에게도 권해보니 싫단다. 하긴, 똥냄새로 진동하는 기차역내에서 새까만 손으로 돈도 만져가며 빵도 만져가며 만든 음식에 불결한 감이 왜 아니 들겠냐만 나는 아랑곳않고 그런대로 요기를 잘 떼웠다. 짜이로 입가심을 하며 우리는 무거운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바라나시 기차역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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