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령 / 나의 삶, 나의 여행 1



  송혜령(2003-10-20 11:13:15, Hit : 4285, Vote : 1393
 인도 여행기 - 바라나시 (5)

        
Written by 송혜령 [pinecone55@hanmail.net]  [2001/11/29 15:56]  Hits: 185 , Lines: 47  
인도 여행기 - 바라나시 (5)  
마르카르니카 갓트 화장터
2000년 11월30일


시장통 저잣거리 구경을 하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는데 하도 골목길이 요리조리 나 있어 아무래도 길을 못 찾겠다. 하하! 또 길을 잃어버렸네. 당황해하다가 참, 어제 길잡이가 가르쳐준대로 메인 갓트를 먼저 찾아가면 될꺼야. 침착하게 혼잡스런 시장통을 빠져 나와 큰길로 나서니 어제 기차역에서 숙소를 갈 때 눈여겨 보아두었던 그 혼잡한 거리가 다시 나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왕언니와 나는 내리쬐는 뙈약볕 아래 그 수많은 차량들과 짐승들 틈을 헤집고 나와 강가쪽으로 걸어갔다. 여기저기서 빵빵대는 클락션소리에 정신이 반쯤 나간다. 길을 찾아 걸어가면서도 소똥을 피하느라 땅도 봐야 되고 그러다보니 그만 미처 다가오는 싸이클릭샤를 보지 못해 그놈의 싸이클릭샤가 나의 팔을 사정없이 팍! 치고 뭐라고 말할 틈도 안 주고 그냥 휙!지난간다. 아이고 아파라. 이런 길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교통사고 나기 딱 좋다.

나는 왕언니에게 제안을 했다. '언니, 우리 이렇게 고생만 할 게 아니라 그냥 싸이클릭샤를 잡아타고 메인 갓트까지 가서 그곳에서 보트를 타고 숙소로 가면 어때요?' 왕언니는 '그대여, 그거 좋은 생각이다' 하시며 그러자고 하신다. 우리는 5루삐를 주고 싸이클릭샤로 메인갓트까지 가서 내린 뒤 좁은 시장통을 빠져나와 강가로 나섰다. 그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근처인 화장터가 있는 마르카르니카 갓트(일명 Burning Ghat)로 가자고 했다.

화장터 근처에 다가가니 마침 들것에 실린 화려한 황금빛 천으로 감싼 시신을 막 강물에 적시고 있는 중이었다. 이 세상에 왔다가 마지막 가는길 성스러운 갠지즈강물에 한번 담구어 정화된 시신을 태우는 화장순서의 첫번째 의식이다. 물에 흠뻑 적셔낸 뒤 장작더미에 올려진 시신위에 불을 붙이고 또 그 위로 장작을 쌓는다. 시신에서 나오는 연기가 하늘위로 뭉개뭉개 피어 오르며 날라 다닌다. 아침에 옥상식당에서 아침식사할 때 바람에 날려 우리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해 주던 바로 그 연기와 같은 거다.

나뭇단 위에서 활활 타는 시신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인생사 참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멍하니 넋을 잃고 서있는 자리에서 발자국을 떼놓지 못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화장일을 관장하는 관리인인듯 한 자가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이곳 화장터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고 우선 미리 으름짱을 놓은 뒤에 '사진을 찍는 것은 영혼이 떠나는 것을 막는 것이므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준다. 이곳 화장터는 하루 24시간 쉬지않고 가동하고 있으며 12개의 시신을 한꺼번에 화장할 수 있고 한 시신을 화장시키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너댓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힌두교인들은 죽으면 화장을 하는데 시신을 화장하지 않고 그냥 강물에 띄워 수장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7살 미만에 죽은 어린이들, 사두들, 임신한 채 죽은 여인들, 나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 등 이들 네 부류의 시신들은 화장하지 않아도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이라고 하며 또한 뱀에 물려 죽은 사람들(힌두교에서 뱀은 神과 같고 뱀에 물려 죽은 사람의 몸 속엔 이미 신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있는 신을 화장시킬 수 없다는 이유라고 함)도 이 그 경우에 해당된다고 설명을 덛붙인다.

시신을 태우려면 약200킬로그램의 장작나무가 땔감으로 필요한데 나무를 구입하려면 약 5천루삐에서 만루삐(미화$100~$200상당)의 돈이 든다고 한다. 장작 살 돈이 모자라 시신이 완전히 연소하여 깨끗이 재로 사그라질 정도로 태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화장터 바닥에서 대기하다가 차례가 되면 시신을 잠시 갠지즈강물에 담궜다가 꺼낸 후 나뭇단 위에 올린 뒤 상주가 시신 주위를 7바퀴 돌며 쌀, 꽃, 향료등을 뿌리고 난 후 머리부분에 먼저 불을 붙인다고 하며 이후는 화장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 인부들에게 맡겨진다고 한다.

관리인은 간단하게 장례에 대해 설명을 해준 뒤 마지막으로 죽을병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인도사람들이 모여 사는 화장터 옆 건물을 가르킨다. 죽어 갠지즈강가에서 화장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적선을 좀 해 달란다.

나는 우선 호주머니에 있는 50루삐를 주었더니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한다. 돈이 배에 차고다니는 복대에 있어 거리에서 배를 까고 돈을 꺼내주기가 좀 뭣해 나중에 다시 주겠다고 말한 뒤 숙소쪽으로 걸어가는데 난데없이 비쩍 마른 한 인도인이 나에게 다가와 손을 불쑥 내밀며 '박시시!(적선을!)' 한다.

깜짝 놀라 그를 홀낏 쳐다보니 두손이 죄다 몽땅 뭉그러져 손이라곤 하나도 없이 팔만 달랑거리는 나병에 걸려 있는 환자라 질겁을 하며 그 자리를 피해 급히 도망을 쳤는데 한참을 가도 왕언니가 뒤따라오지 않아 멀찌감치서 뒤돌아보니 왕언니는 태연스레 몇푼의 적선을 그에게 하는 모습이 보인다.

놀란 가슴을 팔딱이며 진정시키고 있는데 왕언니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쯧쯧, 그대여 그래가지고 어떻게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 밋션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겠냐'며 웃으신다. 나는 나병에 걸린 그사람에게 한푼의 적선도 하지 못하고 그만 그 모습에 놀라 무서워 도망친 나의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맨 처음 인도 배낭여행을 시작할 때 나는 인도의 어느어느 도시를 여행하고 싶다고 하며 나중에 일행들과 떨어져 마더 테레사 밋션에 가서 며칠동안 자원봉사를 해 보고 싶다고 왕언니에게 말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 왕언니는 '나도 마음만 있었지 실천으로 옮길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잘 되었네. 우리 같이 가볼까?' 하시며 사뭇 흥분해 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더욱 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화장터를 빠져나와 숙소로 가는 골목길로 들어서니 오른편 쪽으로 한국음식을 판다는 간판이 걸려 있다. 화장터에서 장작불에 활활 타오르는 시신들과 갑자기 나타나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나병환자의 손목없는 팔이 자꾸 눈에 아른거려 시장기를 잃었지만 왕언니는 끼니를 거르고 여행을 다니면 몸이 상한다며 점심 때가 훨씬 지난 시각이니 이곳에서 점심식사나 하고 가자 하신다.

아래층은 피씨 두어대의 인터넷 카페가 있고 식당은 이층이라 좁은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살림집을 겸하여 쓰고 있는지 방 서너 개가 우측으로 나 있고 그 곁에 자그마한 주방이 달려있다. 열 너댓살 됨직한 소년이 나와서 우리를 맞는다. 식당은 길가쪽으로 마주보고 있는 한 네평 정도의 아담한 방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식당 안에는 식사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손님들이라곤 우리들외엔 단 한 명도 없다.

방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주위를 돌아보니 고작 너댓개의 다리가 낮은 식탁 몇개만이 덩그랗게 놓여 있고 식당 코너에는 두 사람이 앉으면 꽉 찰듯한 나무 식탁에다 보자기를 씌워 만든 비좁은 간이무대에 몇개의 북(drum)들이 놓여져 있는 것이 보이고 벽 선반에는 이름도 모를 악기들이 걸려 있다.

뒤따라 들어온 소년에게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식당 주인이 악기를 다루는 사람이고 밤마다 악사들을 초청해 음악회를 가진다고 한다. 자기 형도 이곳에 자주 초빙되는 악사들 중의 한 명인데 이곳에서 타블라(tabla: 2개의 작은 북을 묶어놓은 타악기)를 연주한다고 한다. 벽에 걸려 있는 악기는 사랑기(Sarangi: 한국의 아쟁과 비슷한 현악기)라 하는 악기라고 설명을 해 준다.

식사 메뉴를 보니 김치 볶음밥이 있어 그것으로 주문을 하였다. 한참 후에 나온 김치 볶음밥 내용물을 보니 배추로 만든 김치가 아니라 여린 무우로 담근 총각김치 비슷한 데다 밥을 함께 넣어 볶은 모양이다. 맛을 보니 약간 씁쓰름하니 희한한 맛이지만 그런대로 먹을만은 하다.

몇 스푼을 뜨는데 갑자기 길가에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창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니 시신을 '타트리'라고 하는 대나무 들것에 담아 여러 사람들이 화장터로 바쁘게 향하고 있다. 외치는 소리가 무슨 말이냐고 소년에게 물으니 '람 람 사테헤!(신의 뜻을 따른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화장터가 가까운 골목이라 그런지 이런 장례행렬을 밥을 먹고 있는 동안만 해도 두번이나 더 목격했다.

식사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 얼굴이 핼쓱해진 우리길잡이가 식당안으로 들어왔다. 길잡이도 감기로 시달려 아침내내 잠만 자고 지금에야 아침겸 점심을 먹으려고 왔단다. 그런데 길잡이 뒤를 따라 머리가 칠흑같이 까만 긴머리의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국여인이 같이 들어오는데 우리 일행은 아니지만 어딘지 낯익은 얼굴이다. 아! 이 여인은 델리의 어느 식당에서 길잡이와 함께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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