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령 / 나의 삶, 나의 여행 1



  송혜령(2003-10-20 07:17:04, Hit : 4253, Vote : 1449
 인도 여행기 - 아그라 (1)



인도 여행기 - 아그라 (1)  
아그라로 가는길
자이살메르->조드뿌르 경유->자이뿌르 경유->아그라
2000년 11월 24일


지난밤엔 개들의 전쟁이 있었다. 이 조그만 마을 자이살메르에 있는 개란 개는 전부 다 나와 야밤에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요란스레 싸움을 벌린다. 어제 오후 개 두마리가 으르렁 거리면서 땅싸움을 하더니만 이젠 아예 패싸움으로 까지 번지는 모양이다.

사람이나 개나 자기의 영토를 지키기는 매일반이다. 어제밤 나의 생일파티 때 마신 맥주 덕분에 단잠이 들었다가 새벽 두시쯤 녀석들의 등살에 깨어나 더이상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야! 개들아, 이제 고만 좀 짖거라. 나 좀 자자!

인도를 여행한지 2주동안 제대로 잠을 푹 자본 적이 거의 없다. 델리에서는 축젠지 시위인지 뭔지는 몰라도 새벽녘에 땅땅! 폭죽을 터뜨리며 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힌두교 신도들의 종교행렬에 깜짝 놀라 깨어서는 잠을 못 이뤘고, '암리차르' 황금사원 근처 허름한 여인숙에서는 왱왱대는 모기소리에 잠이 깨어 물린 자리를 벅벅 긁어대느라 잠을 설쳤고, 돈과 시간을 아끼느라 도시간의 이동은 주로 밤에 했기 때문에 흔들리는 기차간에서, 비좁은 좌석의 버스간에서 시달리느라 못 잤고, 이곳 자이살메르에서는 매일 새벽녘 확성기를 타고 울려나오는 경 읊는 소리에 잠을 빼앗기더니 이번엔 개들마저 저리 북새통을 떠는구나...

수마와 싸워 이겨내야만 하는 수도승들의 수행과정이라고나 할까? 암튼 잠 못이루는 밤, 고행의 연속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왕언니는 어쩌면 저렇게 태평스럽게 잘도 주무실까? 이미 득도의 경지에 오르신 겐가? 세상 나 몰라라 코까지 신나게 골며 잘도 주무신다.

나이 지그시 드신분이 젊은사람도 힘들다는 배낭여행을 뒤쳐지지 않고 잘도 따라 다닐 수 있는 비결이 잠을 잘 주무시고 때마춰 식사를 챙겨 드시기 때문인가 보다. 자그마한 키에 체구도 아담한 왕언니에 비해 나는 키도 크고 풍채도 넉넉한 편이지만 여행지 물갈이 할 때마다 감기와 설사를 달고 다니는 골골 약골이다.

밖에는 개들이 으르릉 왕왕! 안에는 왕언니께서 드르릉 쿨쿨! 우와, 박자도 쿵짝 잘도 맞구나...아침에 길떠나는 다음 여행목적지인 '아그라'는 하루 왼종일 차편에 시달리며 가야하는 장거리 원행길이다.

억지로라도 잠을 좀 더 자 두어야겠기에 겨우 눈을 부치려는데 새벽 4시반 예의 그놈의 확성기 소리에 또 잠을 설치고만다. 흐휴, 자이살메르를 떠나 아그라로 가는 이번 여행길도 머나먼 고행길의 연장이 되겠구나...

우리가 선택한 아그라로 가는길은 이곳 자이살메르에서 '조드뿌르'까지는 버스로 6시간(295km), 조드뿌르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7시간의 휴식을 취한 뒤, 조드뿌르에서 '자이뿌르'까지 기차로 7시간(318km), 자이뿌르에서 하차하여 최종목적지인 아그라까지는 버스로 또 6시간(232km)을 더 가야 한다. 도합 장장 26시간이 소요된다.

시간이 있으면 조드뿌르와 자이뿌르에서 각각 며칠씩 구경도 하며 쉬어도 가고 싶지만 인도의 서쪽 끝에서 대륙을 가로질러 네팔의 '포카라'까지 갈 여정이 이미 잡혀있기에 아쉽지만 그냥 지나쳐가기로 했다.

이른 아침 왕언니와 나는 일찌감치 건너편 호텔 옥상식당에 올라가 사막의 일출을 바라보며 우리가 매일 아침 즐겨먹는 조죽과 토스트, 랏씨, 짜이로 간단히 떼우고 배낭을 꾸려 긴 여정길에 오를 준비를 끝낸 후 오전 열시 일행들과 함께 조드뿌르행 고물버스를 타러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그런데 일행중 30세의 젊은 비구스님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일행들한테 스님의 행방에 대해 물어보니 고개를 갸우뚱 다들 모르겠단다. 길잡이 한테 '스님 어디계시냐'고 물으니 '자이살메르에서 하루 더 머물고 다른 행선지로 떠난다'며 우리가 아침 길떠나기 전에야 슬그머니 귀뜸을 해주더란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지난 2주일간 갖은 고생 함께하며 즐겁게 여행을 했는데 스님 핫바지 방구 새듯 우리들한테는 일언반구도 없이 혼자 사라지다니...섭섭하다. 같은 구도의 길을 가다가 때되면 제갈길 찾아 각자가 홀로 가야만 되는 도반들의 피치못할 이별인 양 다른 일행들의 얼굴에도 우수어린 기색이 아련히 감돈다.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들끼리 모여 장도의 여행길 동고동락 하다보면 마치 피와 살을 함께 나눈 형제자매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우리 한국사람들과 같이 여행을 하면서 '언니야, 동생아'부르며 생일도 챙겨주고, 먹을것 생기면 사이좋게 나눠먹고, 아프면 약도 나눠주고... 그놈의 情이 무언지 가슴에 쏙쏙 파고 드는게 아닌가?

어제밤 내 생일파티가 끝나고 일행들의 고마운 마음 씀씀이에 하도 기분이 좋아 일행 전부에게 일일이 뜨거운 포옹을 해주었는데 몸이 경직되어 어색해 하는 스님을 꼭 껴안아 주었더니만 혹시 道닦는데 지장을 주었나? 하하! 내가 무슨 황진이라고... 우리스님도 지족선사는 아니련마는 흐흐흐...

30년 가까이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보니 껴안는 관습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헤어질때 자연스럽게 포옹을 하는데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은 이런 나의 행동에 꽤나 어색해 한다.

내가 함께한 이번 단체배낭여행은 여행중 다른곳으로 여행하고 싶으면 각자가 따로 독립하여 자기 가고싶은 데로 갈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다. 일행중 인도여행을 2-3개월 또는 6개월 이상 장도의 플렌을 짜갖고 온 이들도 있다.

길잡이만 빼고는 일행 전부가 인도는 초행길인데 이런 단체배낭여행을 함께 따라다니다가 차츰 인도의 풍습과 물정에 익숙해져 혼자여행을 할 자신이 생기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간다. 새로이 맺어진 인연에 연연하지 않고 외로이 홀로 자기길 찾아 훌훌 떠나는 우리스님! 잘가세요. 연이 닿으면 언젠가 또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일행좌석표 14장을 끊어 버스에 올랐는데 왕언니와 나는 운전석 뒤 앞자리를 차지한다. 며칠전 왕언니가 '다람살라'(인도의 북부에 위치해 있는 도시로 현존하는 4대 생불 중 한 분인 달라이라마가 티벳에서 망명하여 티벳임시정부를 수립하여 거주하는곳)에서 델리로 되돌아오는 12시간의 긴 버스여행 때 뒷자석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버스의 진동을 너무 심하게 받아 그만 달리는 버스창문을 열고 토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뒤에 타면 또 토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폐를 끼친다며 앞자리를 원하시는데 그 누가 감히 왕언니의 원을 외면하리오. 왕언니 다음으로 연장자인 나는 왕언니 덕택에 앞자리에 앉아 시름없이 펼쳐지는 황량한 사막, 띠엄띠엄 나타나는 마을들, 사람들, 소와 낙타들 여러가지 볼거릴 구경하며 간다.

도로는 비교적 포장이 잘 되어 있는데 도로폭이 좁고 중앙분리선이 없다. 인도(人道)와 차도도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다. 간혹 걸어다니는 행인들은 주로 도로 가장자리 갓길로 걸어가고 소, 낙타들은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도로를 넘나든다.

차들은 달리다 앞에 운전장애물들이 나타나면 클락션을 빵빵 눌러댄다. 행인들은 눈치껏 길을 비켜주어 그다지 염려되지는 않지만 소와 낙타들은 도로중앙을 누비고 다니다 커다랗게 울리는 클락션 소리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느릿느릿 꾸물대기만 하니 저러다 달리는 차들에 치일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차들이 한가운데로 질주하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보면 빵빵 클락션을 눌러주지만 서로가 미리미리 길을 비켜주는게 아니라 반대편에서 오는 차와 충돌하기 바로 일보 직전에 가서야만 마지못해 핸들을 꺾어 맞부딛힐듯 하다가도 용케 잘도 비껴 지나간다.

'으악' '컥' 우리일행들은 놀라 연신 소리들을 질러대지만 동승한 인도인들은 겁에 질려있는 이방인들의 아우성이 오히려 이상하게만 여겨지는지 우리들을 신기해 하며 빠꼼빠꼼 쳐다본다. 처음엔 생명에 위협을 느껴 간이 콩알만 해지며 가슴은 조마조마 손엔 식은땀이 줄줄 나더니만 차츰 익숙해 지다보니 묘한 스릴감마저 느낀다.

느닷없이 하나뿐인 나의 아들 제이슨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린다. 엄마가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니까 어디 죽으러나 가는줄 알고 무척이나 걱정을 한 아이다. 인도여행중 아들한테 전화를 할 때면 "엄마, 괜찮아? 지금 어디 있어?" 하며 사뭇 걱정스러운 말투에 "엄마는 잘 있고 여행도 재미있게 하고 다니니 아무 걱정도 하지마라"며 안심을 시키는데 이런 운전수들의 진땀나는 곡예(?)에 만일 무슨 일이라도 당한다면? 하고 방정스런 생각이 들자 제이슨이 더 보고파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코가 시큰거린다.

두어시간쯤 이렇게 긴장감과 스릴을 느끼며 가노라니 이젠 감각도 무디어져 슬슬 졸음이 온다. 내려쬐는 따가운 사막의 햇볕을 차단하기 위해 수건을 넓게 펴서 버스창문에 걸어놓고는 흔들거리는 고물 버스안에서나마 잠깐 눈을 붙인다.

왁자지껄 어수선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사람들로 복작대는 어느마을 시장통이다. 오는길 곳곳에서 승객들을 태워 만원이었던 버스는 이곳에서 잠시 정차하여 버스위에 잔뜩 매달고온 짐들과 팔 물건들을 그 주인들인 승객들과 함께 떨구어 놓자마자 또 길을 떠나려 한다.

나는 배도 고파오고 또 이 느림보 고물버스를 타고 오면서 더위와 갈증을 달래느라 줄곧 마셔댄 물로 인하여 오줌통이 잔뜩 늘어난 상태였기 때문에 '왜 시장에서 쉬지 않고 그냥 가냐?'하고 차장한테 물었더니 조금만 더 가서 쉴 거라며 그때까지만 참으란다.

그런데 삼십분이 지났는데도 이놈의 버스는 도무지 설 생각을 않는다. 하도 오줌이 마려워 혹시 실수 할까봐 양다리를 오므려 허벅지에 힘을 꼭 주고 억지로 참고 또 참았는데 이제 더이상은 정말로 못참겠다.

차장에게 제발 아무데나 차좀 세워달라고 애원을 하니 또 말하길 조금만 더 가면 된단다. 커억! 미치고 환장하겠다. 억지로 참느라 입술은 바짝바짝 타고 온몸엔 식은땀이 줄줄 나더니만 급기야는 짜르르르 통증이 아랫배에까지 막 밀려온다. 아! 저들은 나의 이 처절한 오줌과의 사투를 알고나 있을까? 고통을 잊으려고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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