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령 / 나의 삶, 나의 여행 1



  송혜령(2003-10-20 07:19:06, Hit : 4189, Vote : 1285
 인도 여행기 - 아그라 (3)


인도 여행기 - 아그라 (3)  
아그라로 가는길
2000년 11월 25일


바라보던 해가 어느 순간 사막 지평선 저 넘어로 사라져버리자 주위는 차츰 어둑어둑 어둠에 젖어든다. 그때까지 다른 데로 돈벌러 가지않고 고맙게도 우리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던 오토릭샤를 되잡아타고 메헤랑가르 포트(Meherangarh Fort)城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약속장소인 기차역앞 어느 호텔에 딸린 식당으로 함께 왔다.

우리들이 이것저것 각자의 취향대로 음식들을 주문하여 먹고 있는데 K사장이 화색이 되살아난 얼굴로 우리들 앞에 나타난다. 일행들이 '와아! K사장님 이젠 좀 어떠세요?'하며 반갑게 맞이하며 그를 위해 자리 하나를 내어준다.

K사장은 '약방에서 구해다준 그 알약을 먹고 한숨 푹 잤더니만 배탈이 다 나은듯 하다'며 계면쩍은 듯 자리를 차지하더니 왕성한 식욕을 보인다. K사장은 자이살메르 타르사막에서 낙타사파리여행을 하는 사흘동안 부실했던 음식으로 배를 곯았고 더군다나 이번엔 감기와 배앓이가 겹쳐 입맛을 잃어 식사를 통 못하더니만 그동안 주린 배를 채우느라 그런지 이것저것 갖가지 음식들을 시켜 허겁지겁 먹어댄다.

K사장의 요청으로 알아본 고아(Goa)로 가는 교통편 구하기가 수월치 않다는 길잡이의 말도 있고하여 왕언니는 맛있게 먹어대는 K사장에게 고아로 가지말고 일행들과 같이 여행할 것을 은근슬쩍 부추키신다.'몸도 성치 않은데 혼자 외지에서 뭔 일 당하면 어찌하려고 그러냐? 그냥 우리들 하고 같이 다니자'는 말에 K사장은 마음이 약해진 듯 못 이기는 척하며 왕언니의 권고를 받아들인다.

저녁식사를 든든하게 먹은 후 일행들은 '조드뿌르'기차역내에 있는 짐보관소(cloakroom)로 가서 맡겨두었던 각자의 배낭들을 찾아 밤 11시에 '자이뿌르'로 출발하는 기차를 탔다. K사장이 비실비실 몸이 불편한 상태고 나도 아직은 콜록콜록 감기기운이 여전히 남아있는 지라 몸도 추스릴 겸 조금은 편한 밤 기차여행을 하고 싶어 연장자들인 왕언니와 나, 그리고 K사장은 일등석 침대칸을 택했고 나머지 일행들은 이등석 침대칸에 각각 나눠 타고 7시간의 밤기차 여행길에 올랐다.

왕언니와 나는 삼층 침대칸중 맨아래층을 마주보고 편안한 자리를 잡고 K사장은 내 바로 위층 2층칸이다. 기차의 일등석 침대칸의 내부구조는 이등석 침대칸과 특별히 다른점은 없다. 다만 밤에는 히터장치가 가동되어 춥지가 않고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은 침대 시트와 베게가 주어져 있을 뿐이다.

아참, 그리고 또 하나 다른 게 있다. 이등석 침대칸에는 무임승차하는 인도인들이 많아 기차 내부안이 번잡스럽기도 하려니와 시끄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배낭짐을 도둑맞을까봐 조마조마 가슴을 졸이는데 비해 일등석 침대칸은 아예 출입문을 밖에서 잠궈버려 무임승차하는 인도인들의 출입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려 다소 안심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 아래층 침대칸 밑에 달린 체인에 배낭을 자물쇠로 여물게 채운 뒤 나는 내 침낭속으로 기어들며 '보약이 뭐 별거냐? 잠 잘 자는 게 보약이지! 아,오늘밤만이라도 잘 자둬야쥐...'

기차는 아직 출발하지 않은 상태라 아직도 승객들이 오르고있고 그들을 배웅하느라 함께온 환송객들로 붐비고 있다. 우루루루 갑자기 인도인 대여섯명이 우리가 있는 침대칸으로 오더니 시끌벅쩍 떠들어 댄다. 갓 결혼한듯 한 젊은 인도인 부부가 승객이고 그들을 배웅하러 나온 친지들인가 보다. 키가 크고 늘씬하게 생긴 젊은 부부는 가죽잠바에 청바지 차림이고 그들의 아버지로 보이는듯 한 중년의 남자는 셀루러폰을 들고 있다.

인도여행中 인도인들이 가죽잠바에 청바지 차림으로 입은 모습은 처음으로 본다. 그리고 셀루러폰을 들고 있는 모습도 처음이다. 몇십년 전 우리나라에서 여인들이 한복만 입고 다녔던 것처럼 이곳 인도여인들의 고유의상인 사리만 입고 다니는 것만 보아오다가 가죽잠바에 청바지 모습을 보니 무척 생소해 보인다. 그동안 2, 3등열차, 털털거리는 고물버스만 타다가 이런 일등석 기차를 타보니 이질적인 인도인들의 현대적인 면을 맛볼 기회도 있나보다.

기차가 출발을 하려하자 젊은 카플은 그들을 배웅나온 친지들과 작별인사를 하더니 서로 뜨거운 포옹을 하며 내 대각선 맞은 편 3층침대칸으로 함께 올라가더니만 혼자 누워 있기에도 비좁은 침대에서 둘이 꼭 껴안고 간다. 나는 그들부부의 그러한 다정한 모습에 잠시 시선을 주다가 그들의 사랑을 방해할까바 기차를 타면 우선 먼저 옆사람과 인사를 트는 나의 의례적인 행동을 포기하고 돌아누워 깊은 꿈나라로 골아 떨어졌다.

'자이뿌르'역에 도착하니 새벽 6시경이다. 부시시한 얼굴로 배낭을 질머지고 하차하여 몸을 가볍게 풀면서 하늘을 바라보니 방금 떠오른듯한 빠알간 해의 모습이 마치 자이뿌르에 무사히 도착한 우리 일행들을 반겨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기차역 앞에는 예의 오토릭샤들과 싸이클릭샤들이 우리 일행들에게로 달라붙는다. 다가오는 싸이클릭샤들에게 길잡이는 능숙한 솜씨로 값을 흥정한 후 일행은 싸이클릭샤 4대에 나눠타고 기차역에서 2km 거리에 있는 '아그라'행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한다.

라쟈스탄州의 수도인 이곳 '자이뿌르'는 핑크씨티(Pink City)로 그 이름이 유명하다. 영국 식민통치하에 있던 1876년에 영국의 Wales 왕자(후에 왕위에 즉위하여 Edward 7세가 됨)가 이곳을 방문 하였는데 당시의 마하라자가 왕자의 방문을 기념하는 뜻으로 온 시가지를 분홍빛 색깔을 도배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일행들은 인도 전통적으로 환영의 뜻을 표하는 색으로 사용 되어졌던 핑크색의 건물들을 하나도 구경을 못한 채 두시간동안 버스정류장에서 짜이나 마시며 출발시간만 기다린다. 여행길이 바쁘지만 않다면 밤까지 기다려 분홍색 일색으로 수놓은 Pink City 시가지로 가서 휘황찬란한 가로수 전등불빛에 반사되어 야릇한 밤의 정취를 한껏 불러일으킨다는 시내구경도 하련만... 쩝! 아쉬워라!

타즈마할로 유명한 아그라로 가는 버스를 타고 Pink City를 떠난 시각은 아침 8시다. 자이뿌르에서 버스를 타고 아그라로 가는 이번 버스여행에도 일행들의 고마운 배려로 왕언니와 나는 운전수석 뒷자리를 차지했다. 연장자들을 예우하여 차를 타면 제일 좋은 좌석, 숙소를 잡아도 제일 전망 좋은곳으로 양보해주는 일행들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맙다.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은 나라라 차들은 좌측통행을 하며 운전수석은 차 오른편에 붙어있다.

한가로히 바깥풍경을 구경하면서 가고 있는데 맞은편 앞자리에 우리와 대각선으로 앉아있는 라쟈스탄 특유의 밝은 원색의 의상을 걸치고 코걸이 귀걸이 발찌 팔찌를 주렁주렁 단 젊은 두 여인들이 우리들을 빤히 쳐다본다. 그 여인들은 여릿하게 비치는 얇은 천의 베일로 얼굴을 두르고 있었는데 얼굴 윤곽이 또렸하고 아름다와 보였다. 그 베일속에서 뿜어나오는 커다랗고 새까만 눈동자의 눈길이 마치 나의 속마음을 꽤뚫어 보는것 같아 나는 어디에다 내 눈길을 줘야 할지 당황해하다가 딴청을 부리며 귤을 까먹는다.

몇분 후에 그들을 다시 쳐다 보았는데 아직도 왕언니와 나를 시선을 떼지도 않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왕언니도 그녀들의 강렬한 눈길을 느끼셨는지 '얼굴이 베일에 싸여 그런지 저 여인들의 눈빛이 무서워 보이고 마치 바라보는 눈길이 귀신같아 보인다'며 나에게 소근대신다. 베일을 벗기면 그리 무서워 보일것 같지는 않기에 나는 먼저 그녀들에게 미소를 띄워보내 눈인사를 한 뒤 그녀들에게 베일좀 벗어보라고 손짓을 한다.

그녀들은 수줍은듯 웃으면서도 끝내 얼굴을 베일속에 가린채 보여주지 않는다. 눈밑에 화장을 짙게 해서 더 그렇게 보이는지 가뜩이나 윤곽이 또렸한 그녀들의 눈이 더욱 까맣게 빛을 발하고 있다. 얼굴을 베일 속에 가린채 몇시간이고 꼼짝도 않고 우리들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간다.

우와, 고만 좀 쳐다보소 얼굴 빵구나겠다. 나참, 지겹지도 않다냐? 그리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면...이러한 우리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여전히 우리들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는다. 눈도 작고 코도 납작한 동양사람 얼굴을 쳐다보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하고 재미있나보다. 왕언니와 나는 썬글래스를 끼며 그들의 시선을 피한다.

참, 이 인도라는 나라는 어디를 가나 그들과 생김새가 다른 우리 이방인들을 바라보는 호기심에 가득찬 눈길 때문에 당혹해지며 머쓱해질 때가 많다. 생김새가 천양각색인 다민적이 한데 섞여 살고 있는 미국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그네들과 피부색깔과 모양새가 다르다고하여 얼굴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을 당해본 적은 거의 없는데 이곳 인도를 여행하면서는 곳곳에서 수시로 당하는 일이다.

버스는 지나가는 마을마다 서서는 승객들을 태우고 내려준다. 시장통이 가까와오는지 점점 승객들의 수가 불어나 가뜩이나 비좁은 버스통로에 인도남자 둘이서 우유를 담은 듯한 실린더 모양의 커다란 도라무통들을 낑낑거리며 버스에 실어나른다. 꾸역꾸역 통로로 들여오는 통을 세어보니 12통이나 되었다. 참, 황당해서리.더 가관인 것은 차장도 그들을 거들어주며 군말 한번 않는 것이다.

우리일행들은 좌석표를 미리 끊어 탔기 때문에 다들 앉아서 그런대로 편하게 왔지만 중간중간에 버스에 입석으로 탄 인도인 승객들은 비좁은 통로에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쳐들어 오는 그놈의 도라무통들에게 자리를 빼았기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어쩜! 저럴 수가? 인도인들의 인내심과 느긋함에 새삼 감탄해 하며 느끼는 게 많다. 오래 기다리게 하거나 조금만 더럽고 불편해도 불평하며 짜증부리는 나의 조급한 성격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나도 좀 인내심을 키우며 느긋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장통에 도착하였다. 버스지붕위에 실려있던 시장에 내다팔 물건들과 그동안 승객들에게 불편함을 주었던 도라무통들이 다 내려지고 새로운 승객들을 태우고 버스는 또 길을 떠난다. 아그라로 가는 길은 멀기도 멀구나. 엉덩이에 굳은 살이 배겨오는 듯 아파 죽겠다. 참, 불평을 안 하기로 했지 흐흐흐 그단새도 못 참다니...

아그라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두시. 인도 서북부 자이살메르에서 이곳 아그라까지의 거리는 총845km. 버스를 타고 기차로 갈아타고, 또 버스로...꼬박 하루가 걸렸다. 이렇게 하루 왼종일 줄기차게 계속해서 여행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무리없이 잘 버텨내는 내가 내 자신을 생각해봐도 참으로 대견스럽다.

겹친 과로로 연신 달고 다니는 기침감기 때문에 고생은 되었지만, 노상방뇨의 즐거움도 터득하고, 달리는 버스창문을 통해 쓰레기도 통쾌하게 버리며 노상폐기의 짜릿함도 맛보고, 배고프면 먹고 잠오면 자고...아무 거칠 것없는 자유스러움을 느끼는 나. 하하! 이런 걸 소위 고승들의 무애자재의 경지라고 하나? 아니면 범인(凡人)들의 원초적인 욕구해소라고 하나? 소박한 인도의 보통 서민들, 거리의 이색적인 풍경들을 신기해하며 재미있게 보고 왔으니 아그라로 오는 이 멀고도 먼길이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아, 이제 아그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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