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3-09-05 10:04:27, Hit : 4577, Vote :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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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다가 바로 겨울 오는 거 아냐?



--이러다가 바로 겨울 오는 거 아냐?

홑이불을 치우고 담요를 덮고 잔 게 일주일은 됐나봅니다. 밤 기온이
영상 15도로 뚝 떨어지고 담요 하나로도 추위를 느껴 보일러를 한 번
돌리고 잘까 하다가 포기했습니다. 남쪽에서는 아직도 선풍기를 돌린다는데
보일러라니, 남쪽 사람들에게 미안해 보일러를 돌리는 대신 전기매트를
약하게 켜놓고 잤습니다. 잠자리가 금세 따뜻해졌습니다. 아, 벌써 따뜻한 게
좋은 계절이 온 것입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앞마당에 나갔는데 썰렁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처음으로
양말을 신었습니다. 이러다가 바로 겨울이 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식물들도
체온을 잃지 않으려고 하나같이 잎을 접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오전 11시 아침기도 전까지는 황금시간입니다. 도회지에서는
출근을 하는 시간이고 농부들은 들에 나가 가을걷이를 시작하는 시간이지만
나한테는 독서하기 좋은 시간입니다. 독서하다가 지루한 대목이 나오면
기웃기웃 식물들을 들여다봅니다.
햇살이 퍼지면서 달개비풀들이 일제히 꽃방 문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해가
중천에 떴어도 꽃방 문을 열지 않는 게으른 녀석도 있습니다. 지난밤이 너무
추웠던 모양입니다.

아침 기도를 마치고 목이 말랐는데 마침 잘 알고 지내는 내외가 방문해
차를 마셨습니다. 교회와 달리 절은 이렇게 수시로 손님들이 오갑니다. 그래서
늘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지만 덕분에 함께 향기로운 차를 마실 수 있어서
좋습니다.  
어제는 우체국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우체국장을 꼬드겨 신탄리역 앞으로 청국장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실은 점심을 핑계로 황금색 들판을 보고 싶었던 거였습니다.
시뻘겋게 변한 들판에서는 이제 막 벼베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노동당사 건너편에 있는 소이산에도 올라가봤습니다. 시원하게 펼쳐진 황금색
철원평야 끝으로 북한땅이 훤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철책선 너머로는
온통 회색빛입니다. 농사가 안 되는 화산암반지대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북한쪽
사람들이 산에 올라 남쪽 황금들판을 내려다보면 얼마나 부러울까 생각하다가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2시 즘 돌아왔더니 또 손님들이 와 있었습니다. 서양 그림에서나 나옴직한
피크닉 바구니에 차 마시기 도구와 맛난 떡을 담아 가을 소풍을 온 것입니다.
멋과 낭만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다담茶談을 즐겼습니다.
손님들이 돌아간 후 두 시간 남짓 돼지풀 제거 작업을 마쳤습니다. 이제부터는
해거름을 즐기는 시간입니다. 땀을 닦아 내고 햇살에 보송보송 마른 옷을 거둬 갈아입고
경내 앞뒤를 천천히 포행하는 것입니다. 벌써 10년이 훨씬 넘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거지만 한 번도 지루한 적이 없습니다.

어둠을 맞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닙니다.
시나브로 녹색에서 갈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사마귀와 커다란 암컷 방아깨비도
잠잘 곳을 탐색하는 중입니다. 그래야 밤의 지배자이며 곤충의 포식자인 박쥐와
소쩍새를 피할 수 있습니다. 잠자리 한 마리도 안전하고 아침에 햇살을 잘
받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닙니다.
풀벌레들의 노래 연습도 시작됩니다.
울음소리가 다른 두 세 종의 귀뚜라미는 늘 주인공을 자처합니다. 뒤이어
‘긴꼬리’와 ‘방울벌레’와 ‘풀종다리’가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를 자랑하며 등장합니다.
불빛을 좋아하는 여치는 창문 방충망에 붙어 질세라 날개를 비비며 연주를 시작합니다.
보온재를 들어냈더니 깜짝 놀란 수십 마리의 크고 작은 귀뚜라미가 마치 벼룩이
튀듯 사방으로 달아납니다. 겨울 잠자리를 준비한 모양입니다. 얼른 보온재를
제자리에 놓아두었습니다.

귀뚜라미가 월동준비를 하는 것처럼 나도 월동준비를 해야 합니다.
연탄광도 새로 지어야하고 연탄도 들여놔야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연탄 때는 게
귀찮아졌습니다. 연탄광 짓고 연탄 들여놓으려면 100만 원이라는 큰 비용이
발생될 뿐더러 또 겨우내 연탄불 갈 때마다 가스 마시는 것도 지겹고
연탄불을 관리하거나 꺼진 연탄을 새로 지피는 것도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리 끝에 부엌방 하나만 쓰기로 했습니다. 부엌방을 주생활공간으로 쓰면
최소한의 비용으로도 겨울을 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 온 후 10년 넘게 전기장판 하나로 산 것에 비하면 부엌방 하나라도
따뜻하게 지피고 살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 분명합니다.
가끔은 옛날 가난했을 때를 떠올리며 사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오늘 날씨는 꾸물꾸물합니다. 수확기에 가을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데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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