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3-06-24 08:57:52, Hit : 3576, Vote :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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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들과 타협하며 살기.


풀들과 타협하며 살기.

내가 식물에 물을 주는 걸 보고 노보살께서 이릅니다.
--물 자주 주면 버릇돼요!
깜짝 놀랐습니다. 가뭄에도 스스로 인내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물 주는 버릇이 들어 물을 주지 않으면  금방 시든다는 뜻입니다.
식물이 생각을 한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식물도 버릇이 든다는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거저 늙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새들의 번식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맑고 깨끗한 소리로 우는 호반새는 번식을 했는지
못했는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나무구멍 둥지 근처에서 열심히 울기는
하는데 아직 새끼들을 데리고 나오지 않은 걸 보면 정작 녀석의 둥지는
다른 곳에 있지 싶습니다. 딱따구리가 구멍을 여러 곳에 만들어놓고
위장술을 쓰는 것처럼 호반새도 딱따구리를 닮은 거 같습니다.

아침에는 앞마당이 마치 겨울에 먹이를 먹으러 몰려든 것처럼 새들로
분주합니다. 어미를 따라 앞마당을 통통거리며 뛰어다니는 새끼들,
어미가 가는 곳마다 졸졸 따라다니며 먹이를 보채는 새끼들, 어미
먹으라고 놓아준 잣을 굳이 어미를 졸라 먹여달라고 보채는 녀석들,
다람쥐가 등장하면 박새, 곤줄박이, 딱새, 흰눈섭황금새, 직박구리 어미들의
추격전이 벌어집니다. 당황한 다람쥐가 새둥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도 다람쥐가 새끼를 키우는가 싶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보았습니다.
놀란 다람쥐가 펄쩍 뛰어 달아나고 새들은 다시 추격전을 시작하고,
다람쥐는 단순히 위기를 모면하려고 빈둥지에 숨은 거였습니다.
  
텃새들은 여름새들이 오기 전에 번식을 서두릅니다. 둥지도 확보해야 하고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계산입니다. 그 중에서 참새가 가장 활발히
움직이며 집을 차지합니다. 박새나 곤줄박이 같은 텃새들은 환경과 여건이
맞으면 한 해 두 번이나 번식을 하는 녀석도 있습니다.

새들도 사람처럼 새로 지은 집을 좋아합니다. 묵은 집은 벌레도 드나들고
남이 쓰던 거여서 그런지 새로 만든 집을 걸어주면 기다렸다는 듯 탐색전을
벌입니다. 그러나 실랑이도 잠시 뿐, '신상'은 붙박이로 사는 참새몫이 되고 맙니다.
다른 새들은 새끼가 다 자라면 숲으로 들어가지만 참새는 늘 사람 근처에서
맴돕니다.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참새구이' 신세가 됐으면서도 사람 사는
근처에서 떠나지 않고 사는 게 신통합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참새구이만을
생각한 건 아닙니다. 참새는 민화에 자주 등장할 만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만하면 참새들이 우리는 참새구이용이 아니라고 항의할 법도 합니다.

박새 한 쌍은 창문 밖 말목에 걸어놓은 인공둥지에서 새끼를 키우고 있습니다.
둥지는 순전히 먹이그릇을 올려놓을 목적으로 걸어둔 것입니다. 지면에서
높이가 불과 50cm밖에 안 되는 곳입니다. 엊그제 밤에는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둥지 속 새끼들이 잘 있나 손전등을 비췄더니 어미가 잘
품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새끼가 얼마나 자랐을까 궁금해 구멍을 들여다보는데 안에서
타닥! 하는 소리와 쉭! 소리가 동시에 들립니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박새 어미가 얼씬거리지 말라고 뱀 흉내를 낸 거 같습니다. 사람도 깜짝 놀랄
지경이니 다른 새나 동물은 기겁을 하고 달아났을 것입니다.    

조반 전에 한 30분은 풀뽑기를 합니다. 도연암 화단은 사람들이 말하는
'잡초'로 가득합니다. 다 같은 식물인데 어떤 건 예쁘다고 놔두고 어떤 건
잡초라는 오명을 씌워 뽑아버리는 게 실어 너무 웃자라거나 세력이 강한
녀석들만 속아냅니다. 일종의 풀과의 타협입니다.
오래 전에 스승께서 한 말씀 하셨습니다.
--쇠가 너무 강하면 부러지느니라.
누구나, 부러질 것이냐 휘어질 것이냐를 두고 갈등하게 마련입니다.
비겁하게도(?) 나는 휘어지는 쪽인 거 같습니다. 좀 변명을 한다면
휘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거지요.
그래서 내가 붓으로 치는 대나무는 휘어지는 대나무 일색입니다.
휘어짐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이기도 하지만 수행의 한 요령이기도
합니다.  

모조리 뿌리까지 뽑지는 않을 테니 너희들도 적당히 나거라, 하고
오늘 아침에도 나는 풀들과 타협을 했습니다.
즐거운 한 주 시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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