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2-09-09 23:00:33, Hit : 2837, Vote : 936
 http://hellonetizen.com
 초등학교 친구 은종이


안양 사는 초등학교 친구 K가 온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가 다녀간 지 10년 만입니다.  

--올 때 은종이 델구와!
--은종이?
--그래!
--스님, 은종이 못 온다.
--못 오긴? 그 놈은 맨날 놀면서 왜 못 와?
--그렇게 됐어.
--어디 아프대?

가끔 전화를 하면,
공부는 어떠냐, 힘든 일은 없느냐며  
조용조용 묻던 은종이가 요 며칠 부쩍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걸었더니 없는 전화번호라고 나옵니다.

--아파도 내가 보고 싶다고 하고 델구와!
--있잖아, 실은 은종이가 죽었어.
--죽어?
--그래. 갑자기 죽었어.
--왜 죽어?
--그러게 말이야.
--장례는!
--걔 근처에 아무도 없잖아. 그래서 친구들 몇이
화장해서 뿌려줬어. 자세한 건 가서 얘기할께.
--근데 왜 연락도 안 했어?
--스님 맘 아파한다고 얘기하지 말자고 했어.

안양 사는 친구는 그래서 온다는 거였습니다.
마음 속에 늘 안쓰럽게 간직된 어릴 적 친구 하나가
또 세상을 버렸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나와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
세상을 버렸을 때,
나는 그들의 영혼을 '나의 비밀의 정원'에 초대하여
위로의 기도를 올립니다. 더러는 유가족이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더러는 유가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내맘대로
그럽니다.
이렇게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가끔은 생전에 또는 임종 직전에 기도를 부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귓속말로 말합니다.
--나는 늘 그대 곁에 있을 거니까 걱정 말고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납시다.

초등학교 친구 은종이의 부음을 듣고
<초등친구 유은종 영가> 라고 쓴 위패를 세운 후
물 한 그릇 떠놓고 기도했습니다.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고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도 없으며
더럽고 깨끗한 것도 없고
나고 죽는 것 또한 없느니라…

자꾸 눈물이 나고 목이 잠기는 바람에 목탁만 쳐댔습니다.

이름도 이쁜 은종이는 나와 생년월일이 똑같은 초등 동창생입니다.
친구에 의하면 술을 잔뜩 마시고 어디선가 추락했다고 했는데
나는 자꾸만 그가 삶을 스스로 마감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도 나처럼 마음고생을 징그럽게
하고 살았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10년 만에 만난 친구는 은종이와 내가 생년월일이 같기 때문에
각별했을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점심을 함께 하면서 나는
친구에게 나의 어려웠던 청소년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일제치하에서 아버지는 나를 제외하고 슬하에 9남매나 두었습니다.
일제에 협력한 아버지 덕분에 자식들은 그런대로 징용을 피할 수
있었고 해방 후 아버지는 북쪽과 관련되고 6.25 전쟁 중에
자식 다섯을 총살 당하거나 병으로 잃었습니다.
휴전 후 아버지는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반신불수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 때 나는 불가의 인연으로 세상에 태어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몇 년을 더 애면글면 살다가 삶을 마감했고 나는 결코
만만치 않은 청소년기를 버텨내야 했습니다.

--스님한테 그런 과거가 있었구나…

밥을 먹던 친구가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친하게 지냈지만 늙으막에서야 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나의 어려웠던 청소년기의 비밀을 알아버린 친구가
되었습니다.

앞서 가버린 은종이도 나 만큼이나 어렵게 살았습니다.
포대화상처럼 생긴 녀석이 성질머리까지 없어서
늘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녀석이 중이 되었다면 아마도
정말 훌륭한 스님이 되었을 것입니다.
누구랑 함께 살고 싶은 적은 없었는데 말년이 되면
은종이를 데려다가 함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놈은 한 마디 기별도 없이 떠나버렸군요.

오랜 만에 만난 소싯적 친구와 오손도손 저녁을 지어먹었습니다.
친구는 돌아가면서 말했습니다.
--스님, 아프지 말고 치매에도 걸리지 말고 잘 지내시게.
평생 떠돌아 살던 은종이가 여기서 안식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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