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2-05-26 11:46:13, Hit : 3774, Vote :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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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수좌가 다녀갔습니다.



오랜만에 수좌가 왔습니다. 그 흔한 휴대전화 하나 없어 인기척을
듣고서야 그가 왔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출가한 까닭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내가 생각한
절이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며 기어이 출가한 절에서 나왔다가
나한테 딱 걸렸고 며칠 묵는 동안 내게 잔소리 좀 들었습니다.
그 후 몇 번을 더 오가다가 한동안 소식이 뜸하더니
모처에서 열심히 수행에 정진하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고 합니다.

--뭐가 뭔지 알면 다 안 거다. 뭘 깨달으려 하지 말라. 그냥 물 흐르는 대로
놓아두라. 그러다보면 시나브로 어렴풋 보이는 게 있을 것이다.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의미인지, 왜 출가했는지,
그래서 어쩌란 말인지를 화두 삼으라.
고 일렀습니다.

차방에서 자도록 하고 오늘 아침엔 푹 자도록 일부러 깨우지 않았습니다.
일곱 시 쯤 기침起寢할 때가 된 거 같아 ‘일어 나셨는가’ 가만히 불렀는데
조용합니다. 살짝 문을 열었더니 이불이 얌전히 개어져있고
그의 허름한 걸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수좌가 깰까싶어 조심스럽게 오갔지만 그는 오히려 내가 깰까봐
슬그머니 바람처럼 떠난 것입니다.

나도 바람처럼 기별없이 떠난 적이 여러 번입니다.
그는 한때의 나를 꼭 닮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를 통해 멀고도 험난한
출가의 길을 나섰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몸짓이 다른 사람의 일생의
나침반이 되기도 하고 삶을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나는 허락한 적 없지만 그는 나를 스승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로 산다는 게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수좌가 읽던 책이 차방에 얌전히 놓여있었습니다.
가져가라고 말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되었습니다.
마침 초파일을 앞두고 연등값 받은 게 있어 여비를 미리 챙겨주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향기로운 수좌와 오랜만에 마주앉아 향기로운 차를 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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