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1-08-11 12:50:13, Hit : 4025, Vote : 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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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사랑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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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랑 원고 2011-9,10 월호

산에 홀로 살다보면 집중력이 높아집니다. 집중력은 듣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학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새들은 눈이 밝다고 말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대개의 새들은 눈보다 귀가 우선입니다.
높은 하늘을 활공滑空 하며 먹잇감을 찾는 독수리는 귀보다 눈이 우선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거진 숲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자신의 영토임을 공표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보다는 소리를 내어 알리는 게 유리합니다.
맹금류나 맹수의 눈은 사람처럼 앞으로 향해 배치되었습니다. 최상위 포식자로서
곁눈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여기에 비해 늘 포식자의 위험으로부터 노출되어 있는 작은 명금류의 눈은
양쪽으로 설계되었습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앞뒤 좌우를 살필 수가 있는
구조입니다. 천적이 거의 없는 최상위 포식자들은 고개를 돌리는 속도도
느립니다. 볼일?이 있으면 느긋하게 고개를 돌립니다. 약한 새들은 어떻던가요,
수시로 고개를 까딱거리며 앞뒤 좌우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낮에 눈을 감고 쉬는 수리부엉이도 소리에 민감합니다. 수리부엉이 얼굴은
온통 부드러운 깃털로 덮여있어 집음기 역할을 합니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을
할 때 사용하는 털보숭이 마이크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소리 채집용 디지털 녹음기(소니 PCM-D50) 마이크에도 털보숭이
덮개를 사용합니다. 털보숭이 덮개는 집음기 역할을 하는 동시에 바람소리를
걸러줍니다.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공기는 쉬지 않고 흐르며 미세한 소리까지
동반합니다. 녹음기는 좀 멍청한 데가 있어서 소리라는 소리는 모두 녹음합니다.  

귀와 뇌는 상호 협력으로 소리를 분석하고 검출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눈은 원하는 것만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귀는 원하는 것만 들을 수 있습니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매미, 여치, 귀뚜라미, 멧비둘기, 참새,
박새, 곤줄박이, 호랑지빠귀, 되지빠귀, 딱따구리, 꿩, 뱁새, 다람쥐, 까치, 꾀꼬리,
직박구리 우는 소리 등등 지난 몇 분 동안 내가 들은 소리입니다.
그러나 집중하면(눈을 감으면 더 좋습니다.) 원하는 소리만을 골라 들을 수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음악을 들으면서도 공부가 된다고 하니 멀티Multi 기능이
뛰어난 모양입니다. 나는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음악을 틀어놓으면
집중이 안 되고 정신이 혼란스러워 쓰거나 읽을 수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밖에서 들리는
온갖 ‘잡음’은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악은 거의 운전할 때 듣는 편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원하는 것만 보고 골라듣는 기능이 발달하나봅니다.
나이를 먹으면 ‘아집我執’ 이 생기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아집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남은 안중에 없고 나만 옳다’는 것과 또 하나는 불교적으로
‘내 안에 사물을 주관하는 실체가 있다고 주장’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한 가지가 해당합니까, 아니면 두 가지 모두
해당합니까.

나이를 먹을수록 골라 듣는다, 는 것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는 뜻과
일치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남의 말을 안 듣는다’ 는 것입니다.  
멀티 기능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흉잡을 일은 아닙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건망증과 비슷한 물건이니까요.
늙으면 귀가 어두워진다는 건 행복한 일이기도 하고 행운이기도 합니다.
늘그막에 귀가 밝아 시시콜콜 세상 일에 귀를 기울이고 간섭하려 한다면
그 늙음은 고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귀담아 들을 말도 있지만 물 흐르듯 흘려 들어야할 말도 있습니다.
이따금 강연을 나가면 반드시 시험을 보게 합니다.
좋아하는 단어를 먼저 적고 그 반대의 단어를 적게하고
그런 다음 나는 평소 어떤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지 골라보라고 이릅니다.
그런데 의외로 좋아하는 단어보다는 그 반대의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랍니다.  
  
새들이 지저귀는 것도 우리처럼 의사소통을 위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어휘구사능력이 있는 것처럼 새들에게도 어휘구사능력이 있습니다.
다만 새들은 사람처럼 쓸 데 없는 말은 하지 않고 생존에 필요한 말만
합니다. 전문가들은 이걸 두고 새들이 소통하는 단어가 몇 개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너무 많은 단어를 쓰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병든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그냥 만져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 고 하셨습니다.
부처님이 꽃을 들자 가섭 존자가 빙그레 웃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와 같습니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새들과 염화미소를 나눕니다.
말은 없어도 서로의 의중을 꿰뚫고 있습니다. 나는 새가 무슨 생각을
하고 말하려는지, 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말하려는지 알고 있습니다.

여름 번식을 마치면 어미새들은 가장 힘든 가을을 맞습니다.
새끼를 키우느라 기운을 소진消盡하여 죽는 어미가 눈에 띄는 시기도
가을입니다. 새끼를 출가시킨 후에 어미새들은 털갈이를 시작합니다.
기운도 소진한데다가 털갈이가 시작되면 새들은 포식자에게 노출될 위험이
높습니다. 깃털도 남루하게 변합니다. 그래서 번식을 마친 어미새를
위해 계란 노른자나 땅콩, 잣 같은 영양식을 공급합니다.
텃새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낫습니다. 여름 철새는 남쪽 먼 길을 비행하기
위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야만 합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에 의한 환경변화, 서식지의 파괴, 먹이부족으로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다음 세기에는 현존하는 조류의 1/3이
멸종할 거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 다른 생명을 위협한다면 이보다 큰 교만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 여름에는 비도 참 많이 내렸습니다.
새들이 비를 쫄딱 맞고 있길래 시멘트 블록을 놓아주었더니 금방 알아듣고
비를 피합니다.
여기저기 산사태와 물난리로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도 속출했습니다.
미래의 기상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과거의 자료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발생한 인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무를 식재할 때에도 경제적인 나무, 보기 좋은 나무, 속성수 등등 그저
사람 위주입니다. 내가 사는 마을에도 동산을 민둥산으로 만들고 두룹을
심었습니다. 눈이 앞을 향해 설계된 상위 포식자로서 먼 곳을 보지 못하고
당장의 이익에만 눈이 먼 것입니다. 이런 예가 이곳뿐만이 아닙니다.
전국 곳곳에서 축제라는 미명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과연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한 것인지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강수량이 많은 지난 여름에는 새들의 먹이가 되는 애벌레도 줄었습니다.
어미들이 새끼들 먹이려고 벌레를 잡아오는 걸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번식률도 떨어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흰눈섭황금새 둥지 밑 오솔길에
누군가 제초제를 살포하는 바람에 흰눈섭황금새는 번식에 실패했습니다.
딱새과인 흰눈섭황금새와 딱새는 Flycatcher 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나뭇가지나 전깃줄에 앉았다가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채 사냥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제초제는 식물에 의지해 사는 곤충까지 죽였고 농약에
노출된 곤충을 새끼새에게 먹인 게 번식 실패의 원인으로 보입니다.
흰눈섭황금새가 번식에 실패한 건 올해가 처음입니다. 올해는 텃새인 딱새까지
번식하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보는 것보다 많이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앞마당 자작나무에서 꾀꼬리 어미와 새끼가 번갈아 웁니다.
--꾀꼬리가 새끼들을 데리고 왔군...
올해도 어김없이 번식에 성공한 꾀꼬리가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인사를
온 것입니다.
새들은 참 희안합니다. 어디에 둥지를 틀었는지 직박구리도 새끼를 데리고 왔고
호랑지빠귀, 어치까지 새끼들을 데리고 나타나 웁니다.
보지 않고 듣는 것만으로도 얻는 소득입니다.

사진 / 새끼 키우느라 윤기가 사라지고 꺼칠해진 노랑턱멧새와 박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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