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1-10-24 07:56:30, Hit : 3521, Vote :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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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은 봄을 준비하는 시간.



겨울은 봄을 준비하는 시간.

정수리로 따갑게 넘어가던 해가 남쪽으로 기울었다.
해가 기우는 건 나무들이 가장 먼저 눈치를 챈다. 울긋불긋 단풍이 드는가 싶더니
성급한 녀석들은 그새 단풍잎을 버리고 나목이 되었다. 얇은 지붕 위로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같다.  
9월 말에 기러기 첫울음소리를 들었다.
새들은 먹을거리가 넉넉한 철원들판에서 잠시 고단한 날개를 쉬며 영양을 보충한 후
강화도와 천수만, 금강하구, 우포늪, 순천만, 주남저수지까지
다시 먼 길을 날아가야 할 것이다.
10월 7일 10마리의 재두루미가 관찰되었고 10월 23일에는 100여 마리가
관찰되었다. 초겨울에 무리를 지어 다니는 녀석들은 멀리 일본 이즈미까지
날아가 월동하는 녀석들로 알려져있다.  

10월 19일에는 암자에서 가까운 저수지에서 노랑부리저어새가
관찰되었다. 수심이 깊지 않고 수초지대와 모래섬이 있으며 물고기까지 많아
남쪽행을 하던 새들이 잠시 날아든 것이다. 그러나 주로 해안선을 따라
남행을 하던 녀석들이 내륙 깊숙이 들어온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몇 마리의 저어새를 포함하여 모두 30여 마리나 되었고 10월 23일 현재
노랑부리저어새 3마리가 남아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백로 무리와 섞여 다녔는데 내륙까지 진출한 것은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것으로 짐작된다.    

새들도 겨울먹이를 저장하느라 들판에서 가을걷이를 하는 농부만큼이나 바쁘다.
밤나무밭에 알밤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어쩌다 들르던 어치들이
밤을 주워가느라 눈에 띄게 출몰했다. 밤에는 밤나무 밑에서 멧돼지와
고라니의 만찬이 시작된다. 보물찾기라도 한 것처럼 파헤친 흔적이
여기저기 푹탄을 맞은 듯 어지럽다.  
잣을 물고 가는 동고비는 하나씩만 가져가라고 구박을 해도
소용없다. 오색딱따구리는 바닥에 놓아둔 잣송이와 매일 아침 씨름 중이다.
눈치를 주지 않는데도 녀석은 연신 두리번거리느라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나무가 앙상해지면 사냥감을 노리는 참매의 활동이 빈번하기 때문이리라.    

벌들도 일제히 겨우살이 준비를 마치고 칩거에 들어갔다.
벌들 세계에서도 힘은 민중(일벌)에게서 나온다.
식량을 모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왕을 옹립하거나
퇴출시키는 것도 일벌의 몫이고 새끼들을 키우고 청소를 하고
침입자를 응징하는 것도 일벌의 몫이다.
그래서 먹이가 부족한 겨울이 다가오면 벌통 안에서는 잔혹한 식구 줄이기
숙청이 시작된다.
그 첫 번째 대상이 숫벌이다.
겨울에는 번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놀고 먹는 수벌의 입을
줄임으로서 식량을 아끼려는 것이다.
두 번째 퇴출대상은 나이 먹어 늙고 힘없는 일벌이다.
숫벌은 쫓겨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나이 먹은 일벌은
스스로 무리를 떠난다. 그래서 기온이 내려가면 벌통 입구에 퇴출된
벌들의 사체가 즐비하다.

입을 줄이는 역할은 장수말벌도 한몫 거든다.
흔히 세상의 모든 벌들은 하나같이 꿀을 모으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토종벌과 양벌을 제외한 모든 벌들은 꿀을 빨기는 해도
모으지는 않는다. 곤충과 애벌레가 주식인 이들은 무리지어 꿀벌을 공격해
꿀을 빼앗아 가고 애벌레를 납치해 간다.  
장수말벌은 철사를 끊는 커터처럼 강력한 턱을 가졌다.
녀석은 벌통 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마치 영화 트로이의 ‘아킬레스’처럼
능숙한 솜씨로 벌들을 무차별 살해한다. 장수말벌 몇 마리가 수만 마리의 벌이
들어있는 벌통 하나를 초토화 시키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장수말벌은 기온이 내려가는 늦가을에 더 이상은 곤충이나
애벌레를 사냥할 수 없을 때 더욱 극성을 부린다.

‘나의 비밀의 정원’에서 함께 사는 새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묶는 작업을
하느라 지난 여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가을은 어떻게 왔다가 가는지 모를 만큼
바쁘게 지냈다.
산마루에 단풍이 드는가 싶었는데 엊그제는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떨어져 물이 꽁꽁 얼었다. 가을이 산마루에서부터 붉은 단풍으로 슬금슬금
다가온다면 겨울은 한 걸음에 성큼 다가온다.
골짜기에도 물이 말랐다. 가을 가뭄이 아니더라도 해마다 이맘때면 물이 말라
물긷기 행사가 시작되는데 올해는 특별한 변화가 일어났다.  
상수도가 들어온 것이다. 구제역에 파동으로 가축을 매몰하는
바람에 매몰지역 근처 지하수를 먹는 집집마다 상수도 공사를 해준 것이다.
지하수와 샘물을 포기하고 산골짜기에서까지 상수도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게
혼란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샘물이 줄어들면 구정물이 올라오고 퀴퀴한 냄새까지 나 더 이상 먹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허드렛물로도 쓰지 못한다. 마침 맞게 상수도가 개통되었다.
원래는 9월에 개통예정이라고 했는데 다소 늦었지만 계곡에 물이 마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수돗물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수압이 약해 순간온수기에서 감질나게 나오던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는 옳다 싶어
훌훌 옷을 벗어젖히고 시원시원 샤워도 하고 지난 여름 장마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옷가지를 모두 내와 세탁기에 넣고 씽씽 돌렸다.
손님들이 자고 간 베겟잇도 빨아 널고 홋이불이나 얇은 담요도 말끔히 빨아 널었다.  
겨우내 물을 길어다 먹거나 빨래는 밖에 갖고 나가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단번에
해소된 것이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더니 이런 복을 누리게 될 줄이야,
이 모두가 구제역 덕분인 셈인데 삼라만상 변하지 않는 게 없다는 말처럼
정말 그렇다.
올해는 연탄보일러와 겸용으로 쓸 수 있도록 보조용 기름보일러도 설치했다.
연탄불이 꺼져 다시 연탄불을 지피고 방을 덥히려면 거의 반나절이나 걸렸는데
기름보일러가 순식간에 방을 따뜻하게 덥힐 것이다.  
연탄은 미리 배달을 시켜 올려다놓았기 때문에 올 겨울에는 연탄을 일일이
져올리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한편으로는 연탄을 나르고 물을 길어오거나 멀리 담터계곡까지 가서 빨래를 하는
낭만이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서운하기도 하다.
그러나 차 달이는 물만큼은 약 냄새 나는 수돗물에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茶道다도란 차를 마시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찻물을 길어오기 위해
오가는 것도 수행이고 샘물을 천천히 길어올리는 것도 수행이다.
이렇게 찻물이 입에 들어갈 때까지의 모든 행동이나 생각생각이 道도 닦는 일이어야 한다.
하기야 산에 살면 말 한 마디 몸짓 하나하나 道도 아닌 게 없으니
차 마시는 일에만 유독 道라는 꼬리표를 달 필요는 없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으로도 도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부엉이는 어미를 따라 울음소리를 익히는 중인데
부엉부엉 우는 어미와 달리 그윽그윽 하고 목에 뭔가 걸린 것처럼
우스꽝스럽게 운다. 겨울 한 복판에 이르면 녀석도 어미처럼 부엉부엉
씩씩하게 울 것이다.
겨울은 휴식과 동시에 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어린 부엉이는 씩씩하게 우는 연습을 해야 내년 봄에 아름다운 여자친구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목이 된 나무들은 지난날을 정리하고 열매를 맺느라
고단했던 몸을 추스리며 내년 봄을 기약한다.
靜中動정중동, 고요하되 고요하지 않다.
삼라만상은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내부는 강렬하게 움직이는 중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겨울을 준비하고 봄을 기약할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사진 / 좌측 끝과 우측에서 두번 째 세번 째 녀석이 노랑부리저어새.
우측 끝은 민물가마우지. 다른 녀석들은 모두 왜가리와 백로.
먹이활동은 따로 하지만 잠은 함께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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