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1-12-23 18:37:07, Hit : 3663, Vote :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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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들이 봄을 준비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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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이 봄을 준비하듯,

눈 없는 겨울은 너무 팍팍하다.
올 겨울 아직까지 ‘나의 비밀의 정원’에는 눈이 인색하다. 엊그제 제법
함박눈이 폴폴 내리더니 바닥을 겨우 덮을 정도만 내렸다.
회색과 갈색이 뒤섞여 혼탁한 색깔 위에 내린 눈은 마술사처럼 모든 사물의
명암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눈 내린 풍경은 어디나 아름다운가보다.
밤기온이 연일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다. 날씨가 추우면 새들도 먹이터를
자주 찾는다. 가득 채워놓은 먹이통이 사나흘 씩 가더니 요즘은 하루만 지나도
빈통이 된다.
부산스럽던 먹이터가 갑자기 조용해지면 매나 들고양이가 나타났다는 뜻이다.
포식자가 등장하면 새들은 대개 숲으로 피하기도 하지만 더러는 그 자리에서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포식자의 눈을 순간적으로 기만欺瞞하려는
행위이다.

그렇다고 포식자가 늘 속기만 하는 건 아니다.  
속이려드는 녀석이 있다는 걸 아는 매는 덤불사이를 곡예사처럼 드나든다.
작은새 사냥에 실패한 매는 멧비둘기 한 마리를 사냥하는데 성공했다.
겨울이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참매 한 쌍 중에 한 마리다.
녀석은 사냥감을 낚아채면 재빠르게 심장을 물어뜯어 절명시킨다.  
먹이를 저항불능상태로 만들기 위함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먹히는 자의
공포와 고통을 줄여주려는 포식자로서의 배려일 것이다.  
수십 마리의 까치와 까마귀가 주변을 맴돌며 농성을 벌여도 참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황조롱이나 말똥가리, 독수리에게는 겁도 없이
덤벼드는 녀석들이 참매한테는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 같다.  
창문 여는 소리에 매는 멧비둘기를 한쪽 발로 움켜쥐고 낙엽송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몇 마리의 까치와 까마귀가 뒤따랐으나 또 다른 참매 한 마리의
위협적인 시위에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다.

동물사료와 음식물 찌꺼기, 과일 껍데기 따위는 어둠을 틈타 등장하는
새끼 멧돼지 몫이다. 녀석들은 사춘기 아이들처럼 꼭 둘이나 셋씩 몰려다니는데
얼마나 조심성이 많은지 문 여는 소리에도 담배 피우다 들킨 아이들처럼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다. 그렇다고 녀석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아직은
새끼들이 어미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상태가 아니어서 녀석들의 ‘배후’에는 반드시
덩치 큰 어미가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연탄불 갈러 나갈 때마다 멧돼지 한 마리는 씩씩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러선다.
성가시니까 가까이 오지 말라는 사인이다. 멧돼지는 덩치에 비해 겁이 많은
짐승이다. 겁 많은 녀석들이 도회지로 내려와 사람을 공격할 때는 이성을 잃은
경우일 것이다.
고라니 두 마리는 한낮에도 먹이터를 찾는다.
갑자기 녀석들이 황급히 뛰기 시작했다. 들개 두 마리가 덤불을 뒤지는 중이었다.
들개들은 눈으로 상대를 파악하기보다는 냄새에 우선하기 때문에
멀찌감치 고라니가 달아나는 것도 모르고 그저 냄새로 뒤쫓기에 바쁘다.
돌멩이를 던져 멀리 쫓아버리고 들어왔다.
참새와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덤불속에 모여 잔다. 새들이 모여 자는 것은
포식자를 경계하기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잠자는 동안에 보초를 세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듣는 귀가 여럿이니 포식자의 접근을 재빨리 알아챌 수 있겠다.
바스락 소리에 손전등을 비춰보고 싶어도 모른 척 해야 한다. 추운 날씨에
잠자리에서 쫓겨나는 건 사람이나 새나 괴로운 일이다.  

지난주에는 속가 둘째 형님을 모시고 제주도에 다녀왔다.
형님은 지난 7월에 형수님을 잃은 후 정들었던 창원을 떠나 철원 상사리에 예쁘장한
집을 구해 낯선 땅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자식들이 모두 창원에 살고 있지만
나의 종용으로 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형님은 제주도 여행이 처음이다. 워낙 절약정신이 몸에 밴 까닭도 있겠지만
자식들 키워 출가시키느라 미처 본인은 여행다운 여행 한 번 다녀보지
못했다. 애월 바닷가에 넓직한 콘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분이 있어
며칠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집사람하고 같이 오자고 약속을 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며 속마음을 드러냈다.  

오랜 만에 가보는 제주도는 많이 깨끗했다.
도회지를 벗어나 어디를 가도 신경도 많이 썼고 돈도 많이 들인 거 같다.
깨끗하다는 일본 못지않다. 그러나 마땅히 먹을 게 만만찮았다.
도착한 날 특별할 것도 없는 반찬에 밥값이 3만 원이다. 형님이 기겁을 해
장을 봐다가 숙소에서 지어먹었다. 5만 원어치 장을 봐 국도 끓이고 잡곡밥도 지어
사흘을 내리 먹었다.  
바닷가로 이어진 둘레길도 곳곳이 잘 정비되어 있고 자전거 타기에도 그만이다.  
노후를 보내도 좋을 만큼이어서 형님에게 제주에 와서 살자고 하니까
딱 잘라 싫다고는 하지 않는 걸 보면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닌 모양이다.

두루두루 바쁜 일정으로 오가며 천지연폭포에 들렀을 때였다.
폭포로 향하는 다리 상류와 하류에 스므 마리쯤의 흰뺨검둥오리와 네 마리의 논병아리,
일곱 마리의 물닭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녀석들은 수많은 인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호기심에 과자를 던져주었더니 수면을 가르며 우루루 모여든다.
세상에 이런 일이!
야생성이 강한 물닭과 논병아리와 흰뺨검둥오리가 코앞에서 다투어 먹이를
받아먹는 눈을 의심할 장면이 벌어진 것이다. 먹이 먹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걸
보니 녀석들은 벌써부터 사람들에게서 간식을 얻어먹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길들여진 오리’쯤으로 생각하고 그리 놀라지도 않는다.
천지연폭포도 자연유산임에 틀림없지만 야생 오리를 마주대할 수 있는 것도
제주의 큰 자연유산이 분명하다. 녀석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사진이나 정보를 게시했으면 관광객들이 더 좋아했을 것이다.

집을 비운 사이에 자주 오는 내외가 와서 기도도 할 겸 며칠 절을 지켰다.
‘절에 와 자보니까 스님께서 얼마나 긴장하며 살아야하는지 알 것 같다’며
집 보는 게 쉽지 않았다고 엄살이다.
혼자 사는 절집이니 룰룰라라 지내면 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대개의 방문자들은 미리 기별을 하고 오지만 느닷없이 오고가는
방문자들이 있어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작은 절집에서는 누가 오고가는지 금방 드러나기 때문에
이런저런 일로 기도를 하거나 상담할 일이 있어 온 사람들은 신분이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린다. 그래서 가끔은 낯선 자동차는 물론이고 낯익은 번호판의 자동차가
서 있으면 아예 차를 돌려 되돌아가기도 한다.
--아니, 저 사람이 웬일이지?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왜 왔을까.
--저 사람은 얼마 전에도 봤는데 또 왔네,
등등 사람들은 서로서로 궁금한 게 참 많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람이나  
‘지금 가는 중이다, 거의 도착했다’ 고 일방적 통보를 해오는 사람도
사람을 불편하게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럴 경우 이미 와 있던 사람(들)은 얘기가 미처 끝나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일어설 수밖에 없다.

방문하고 싶다는 전화를 걸어왔더라도 오늘은 힘들고 내일이나 다른 날
오시면 어떠냐고 이쪽에서 양해를 구하면, 아니, 내가 가고 싶다는데
왜 안 된다는 거냐‘고 따지는, 예고 없이 오는 사람보다 사람을 더
긴장시키는 사람도 있다.
그 중에 백미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 끼어들어 얘기를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다. 나나 방문자나 황망스러울 게 당연하다.    
어떤 사람은 집 좀 보랬더니 변비에 걸릴 거 같다고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난다. 언제 어느 때 사람이 올지 몰라 느긋하게 앉아 볼일 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어쨌거나 날씨가 이렇게 추우면 오가는 사람도 뜸해 고요해 좋다.
덕분에 미뤘던 책을 세 권이나 읽었다.
광고간판일 하는 분이 커다란 입간판 하나 세워드리고 싶다고 했지만
말씀만이라도 고맙다고 여태 답을 주지 않았다. 똑똑한 표지판 하나 없어도
올 사람은 물어물어 다 오가는데 번잡스럽게 일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다.

이번 겨울은 먼저 출간되었던 책들을 다시 손보고 있다.
나무들이 봄을 준비하듯 나도 먼저 나온 책들에게 새옷을 입혀 다시 세상에
내 놓기 위해서이다.
이곳저곳 오가지 못해도 양해하시길 바란다.
지난 번 출간된 ‘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는 여러분의 호응으로
벌써 재판을 찍었다. 관심 가져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사진 / 붉나무 열매를 맛있게 먹는 청딱따구리 수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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