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1-01-16 02:01:54, Hit : 3994, Vote : 874
 DSC_3456_2.jpg (62.6 KB), Download : 95
 아이고 춥다,


.
눈 쌓이고 찬바람 불고, 새들이 법당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눈(雪)이 내리면 눈에 들어오는 풍경 어느 것 하나 ‘작품’ 아닌 게 없다.
눈이라고 다 같은 눈이 아니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탄성을 지른다. 눈이 내리면 좋은 일이라도
일어나고 좋은 소식이라도 들릴 것 같아서일까.
땅에 얇게 깔린 눈은 부끄럼 많은 처녀눈이다. 왔다 싶으면 어느 새 사라지고 없다.
손가락 두 마디나 세 마디 쯤 쌓인 눈은 뽀드득 소리도 경쾌한 청년눈이다.
한 뼘 쯤 수북하게 쌓이면 풍년을 예고한다. 눈이 천천히 녹으면서 식물들이 수분을
흡수할 충분한 시간을 벌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은 초입부터 두 번에 걸쳐 눈이 내려 한 뼘 넘게 쌓였다.
이럴 때는 읽던 책을 덮어놓고 적막한 설경을 감상하는 게 제격이다.
아름다운 설경이 사라질까 조바심을 하면서 나는 사람만 간신히 다닐 수
있을 만큼만 비질을 해 길을 터두었다.
밤에 보는 설경도 낮에 보는 설경 못지않게 아름답다.
실내등은 끄고 바깥 외등에 비친 고즈넉한 밤풍경은 혼자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랄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새들이 부산스럽다.
카메라를 하나씩 목에 건 사람들이 내가 아끼는(?) 눈을 여기저기 함부로 밟고
다니는 것도 모자라 새들 먹이터까지 점령한 것이다.
설경은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혀 단박에 초토화가 되었고 새들도 혼비백산 모두 숲으로
달아났다. 사람 다니는 눈길이 트여졌고 눈 위에 새나 길짐승 발자국 외에
사람 발자국이 없다는 걸 알았다면 함부로 발자국을 내지는 않았을 텐데
사람들은 참 무감각하다.
사람들이 돌아간 후 나는 먹이터에 ‘위험’이라고 붉은 글씨가 새겨진, 공사장에서나
쓰는 비닐 안전띠를 길게 둘러쳤다. 혹시라도 오시는 분들은 띠가 쳐진 곳은
새들의 영역이니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이 내릴 때마다 나는 기왕이면 키만큼이나 내려서 봄이 올 때까지 온 세상을
두껍게 덮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그러면
세상의 시끄러운 일과 보기 싫은 일 모두모두 눈 속에 묻혀 고요하지 않을까.

날이 추워지는 건 새들이 먼저 알아채고 법당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간 바깥 기온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중이다.





1205   얼마 만에 듣는 빗소리인가,  도연 2011/04/18 3779 813
1204   되지빠귀 울고 매화 피고,  도연 2011/04/17 3674 826
1203   들판에 두루미 모두 돌아가고,  도연 2011/04/06 3439 921
1202   묵향墨香  도연 2011/04/06 3894 880
1201   호랑지빠귀가 우네,  도연 2011/03/29 4205 990
1200   달빛 길어올리기.  도연 2011/03/25 3916 862
1199   을숙도, 고니들이 모두 돌아갔네,  도연 2011/03/23 3637 880
1198   대숲에 날 밝아오고 호랑지빠귀 울고,  도연 2011/03/19 3527 830
1197   새도 먹고 벌도 먹고 너구리도 먹고,  도연 2011/03/14 4000 860
1196   주춤주춤 봄이 다가오다.  도연 2011/03/14 3541 889
1195   자연 앞에 겸손하라,  도연 2011/03/13 3602 855
1194   동자들과 서울 바이크쇼 참관,  도연 2011/03/06 3721 859
1193   봄이 오긴 오나보다.  도연 2011/02/26 3649 871
1192   --니들이 고생이 많다...  도연 2011/02/16 4449 1141
1191   동자들과 금학산 등산,  도연 2011/02/13 4140 950
1190   재겸이를 위한 서비스,  도연 2011/02/12 3559 845
1189   나온 김에 차 마시고 구경하고,  도연 2011/02/10 3867 867
1188   병원 가는 길 단상.  도연 2011/02/10 3955 983
1187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도연 2011/02/07 4223 989
1186   깨끗함과 더러움의 경계는 있는가,  도연 2011/02/03 3954 941
1185   하늘의 종결자, 흰꼬리수리.  도연 2011/01/29 4136 881
1184   먹성 좋은 독수리,  도연 2011/01/29 3591 913
1183   배가 고픈 독수리들.  도연 2011/01/28 3495 913
1182     먹이 다툼을 벌이는 새들,  도연 2011/01/28 3997 1094
1181   심봉사는 공양미 삼백석에 눈을 떴다는데,  도연 2011/01/28 3762 868
1180   세상이 이렇게 맑았었구나.  도연 2011/01/22 3900 908
1179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도연 2011/01/17 4194 800
  아이고 춥다,  도연 2011/01/16 3994 874
1177   예수 믿는 부처가 다녀갔네,  도연 2011/01/15 4102 902
1176   을숙도, 새들은 변함없이 돌아오고,  도연 2011/01/14 3703 930

[1][2][3][4][5][6][7][8][9][10][11][12][13][14][15][16][17] 18 [19][20]..[58] [다음 20개]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