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1-01-28 00:12:18, Hit : 3562, Vote : 800
 2011005_2.jpg (270.8 KB), Download : 85
 심봉사는 공양미 삼백석에 눈을 떴다는데,


.
심봉사는 공양미 삼백석에 눈을 떴다는데,

눈 수술을 위해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일곱 사람이 누워있는 병실도
‘작은 세상’ 이기에 충분하다.
실명한 한 쪽 눈을 위해 각막을 기증 받은 일흔 다섯 살 노인,
병실 배정과 간호사가 마음에 안든다며 연신 투정을 부린다.
나의 일흔 다섯 미래는 어떨까,
‘다행히’ 살아있어서 또 한쪽 눈 아니면 두 눈 모두 실명을 했다면
젊은이들 제쳐두고 각막을 이식받으려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

나이를 먹으면서 시력이 떨어지는 건
세상 더 볼 게 없다는 뜻에서, 세상을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뜻으로
시나브로 눈을 서서히 멀게 하려는 조물주의 심오하고 계획된 의도일지 모른다.
이 나이에 세상에 더 볼 것이 있을까.
더 본다고 한들 내게 달라질 건 무엇이며 세상이 달라질 건 무엇일까.
하여튼 눈 앞 풍경이 명경처럼 맑아졌다.  
식당에서 내온 반찬들 색깔도 선명하고 아름답다.
법당에 걸린 연등이 이렇게 화려했었구나,
눈 색깔이 회백색이 아니라 희다 못해 청색이었구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많이도 늙었구나, 구석구석 먼지며 찌든 때며,
사람들은 나더러 참 지저분하게도 살았다며 수군거렸을 것이다.

옆 침상에는 나이 많은 벽안의 천주교 신부님이 수술을 받았다.
‘기수현’ 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신부님과  
유창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메워갔는데
틈틈이 침묵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산에 사는 수행자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문득,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가 무슨 뜻이냐며 묻는다.
정확한 발음으로 <법정 스님>을 말하는 걸 보면 <무소유>에 대해 모를 리 없겠다.
신부님으로 발현한 부처가 내게 묻는 것이다.
--무소유에 대해 알고 있는가...?

심봉사는 공양미 삼백석에 눈을 떴다는데
나도 공양미를 삼백석 쯤 먹고 나면 눈을 반쯤은 뜨게 될까.
공양미를 삼백석이나 먹고도
눈 뜬 장님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 어느 음식점 펜스에 널린 면장갑.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1204   되지빠귀 울고 매화 피고,  도연 2011/04/17 3466 752
1203   들판에 두루미 모두 돌아가고,  도연 2011/04/06 3240 864
1202   묵향墨香  도연 2011/04/06 3708 820
1201   호랑지빠귀가 우네,  도연 2011/03/29 3926 902
1200   달빛 길어올리기.  도연 2011/03/25 3721 810
1199   을숙도, 고니들이 모두 돌아갔네,  도연 2011/03/23 3438 820
1198   대숲에 날 밝아오고 호랑지빠귀 울고,  도연 2011/03/19 3361 775
1197   새도 먹고 벌도 먹고 너구리도 먹고,  도연 2011/03/14 3798 807
1196   주춤주춤 봄이 다가오다.  도연 2011/03/14 3356 828
1195   자연 앞에 겸손하라,  도연 2011/03/13 3407 796
1194   동자들과 서울 바이크쇼 참관,  도연 2011/03/06 3531 802
1193   봄이 오긴 오나보다.  도연 2011/02/26 3440 804
1192   --니들이 고생이 많다...  도연 2011/02/16 4279 1069
1191   동자들과 금학산 등산,  도연 2011/02/13 3717 847
1190   재겸이를 위한 서비스,  도연 2011/02/12 3391 777
1189   나온 김에 차 마시고 구경하고,  도연 2011/02/10 3616 798
1188   병원 가는 길 단상.  도연 2011/02/10 3637 893
1187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도연 2011/02/07 3992 931
1186   깨끗함과 더러움의 경계는 있는가,  도연 2011/02/03 3773 868
1185   하늘의 종결자, 흰꼬리수리.  도연 2011/01/29 3948 821
1184   먹성 좋은 독수리,  도연 2011/01/29 3401 859
1183   배가 고픈 독수리들.  도연 2011/01/28 3330 852
1182     먹이 다툼을 벌이는 새들,  도연 2011/01/28 3629 1011
  심봉사는 공양미 삼백석에 눈을 떴다는데,  도연 2011/01/28 3562 800
1180   세상이 이렇게 맑았었구나.  도연 2011/01/22 3694 850
1179   살기 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도연 2011/01/17 3998 749
1178   아이고 춥다,  도연 2011/01/16 3682 790
1177   예수 믿는 부처가 다녀갔네,  도연 2011/01/15 3907 841
1176   을숙도, 새들은 변함없이 돌아오고,  도연 2011/01/14 3487 872
1175   한밤중에 광안대교 달리기.  도연 2011/01/12 3693 857

[1][2][3][4][5][6][7][8][9][10][11][12][13][14][15][16][17] 18 [19][20]..[58] [다음 20개]
 

Copyright 1999-2017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