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1-02-03 04:46:02, Hit : 3772, Vote : 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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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끗함과 더러움의 경계는 있는가,


.
포근한 날씨에 빨래를 해 널었네,

통원치료를 하기 위해 나선 날 아침 기온이 영하 23도였는데 돌아올 때 수은주는
무려 영하 5도까지 올라가 있었다. 이튿날 한낮에는 수은주가 빙점에서 맴돌았다.
갑자기 봄이라도 들이닥친 것처럼 날씨가 포근해지자 새들이 더 난리다.
멧비둘기도 구구...거리며 듣기 좋게 울기 시작했고 청딱따구리와 오색딱따구리도
나뭇가지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운다.
삐까삐까삐까...하고 매끄럽게 우는 박새 울음소리도 일품이지만
재잘재잘 조잘조잘 쉴 새 없이 노래하는 노랑턱멧새 울음소리는 그 중 으뜸이다.

'진짜' 봄이 온 것은 아니지만 새들은 오랜만에 맛보는 포근한 날씨가
너무 반가웠던 것이리라. 나도 질세라 빨랫감을 들고 나왔다.
물이 귀한 겨울 여섯 달 동안 치루는 '손빨래 행사' 도 이날만은 즐겁다.
'이대로 확 봄이나 되어버려라, 그러면 연탄 가는 일도 지겨운 손빨래 하는 일도
없어 좋겠다' 고,
마음으로는 그러면서도 느닷없이 봄이 온다는 게 가능키나 한 일일까 싶어
금세 마음을 고쳐 먹는다.

담요 한 장 덮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새벽이다.
방바닥이 미지근한 걸 보니 연탄불이 꺼진 모양이다. 연탄불이 꺼졌는데도
그다지 춥지 않은 게 이상하다. 설마 바깥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건 아닐까,
그러나 웬 걸, 수은주가 영하 10도를 가리키고 있다.
영하 10도가 믿기지 않을 만큼 포근하다니 수은주가 잘못된 건지 날씨가 잘못된 건지,
하여튼 분명한 것은 포근한 기온이 바깥에 잔뜩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거 뭐죠...? 봄에 먼저 피는 꽃...
--복수초...?
--맞아요, 그게 피었을 지도 모르는데,
--아무렴 벌써 복수초가 피었을까, 그래도 혹시 양지쪽은...?
3월이나 돼야 피는 복수초가 벌써 피었을까 싶으면서도 복수초가 노랗게
피는 골짜기가 눈앞에 선하다. 정말이지 꽃망울이라도 올라왔는지 한 번 가봐야겠다.

탈수한 빨래를 눈밭에 널었더니 눈처럼 희다.
쌓인 눈雪 '관리' 를 잘해 짓밟히지 않은 눈밭에 널린 빨래가 보기 좋다.
빨래를 널 때 마음도 바짝 마른 빨래를 갤 때 느낌처럼 풋풋하다.
--그래, 이 맛이야!
요샛 사람 치고 한겨울에 손빨래하는 '별미'를 아는 사람이나 있을까.
공중목욕탕에서 보송보송한 수건으로 몸을 닦고는 마치 더러운 걸레라도 되는 양
휙 던져버렸던 수건을 기억하시는가.
옷이라는 것도 그렇다. 좋아라 몸에 걸쳤을 때는 '옷' 이 되지만 일단 빨래를
하기 위해 벗었을 때는 마치 걸레처럼 미련없이 던져지지 않던가.
던져진 빨래가 깨끗이 세탁되어지면 코를 킁킁거리며 빨래향을 맡고
새옷처럼 다시 몸에 걸치는,
도대체 빨래와 걸레의 차이, 깨끗함과 더러움의 경계는 무엇일까.
      
눈眼 앞이 '갑자기' 환해지니 구석구석 안 보이던 먼지까지 환하다.
나는 걸레도 아닌 행주를 빨아들고 닦기 시작하는데,
자세히 보지 말라며 그러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며 책망하는 사람 말마따나
지나친 결벽증은 단단한 고치를 만들고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두게 돼 타인의 허물을
돋보기를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몹쓸 질환에 걸릴 수도 있겠다.

자기를 끊임없이 쓸고 닦으며 다그쳐야 하는 수행자의 마음자세와
손빨래를 하는 일은 서로 많이 닮았다. 빨래를 비비고 헹구는 동안의 사색도
숲을 고요히 걷는 것만큼이나 온유하고 거룩하다.
세탁기 빨래가 죽은 빨래라면 손빨래는 살아있는 빨래다.
적어도 빨래를 하는 동안은 내 마음도 수시로 꺼내 씻고 닦고는 있는지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깨끗함과 더러움의 경계는 없다.
다시 내 몸에 입혀질 테니까.

불기 2555년 신묘년 새해가 밝았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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