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1-04-17 06:32:44, Hit : 3465, Vote : 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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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지빠귀 울고 매화 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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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지빠귀 울고 매화 피고,

남쪽은 진즉 녹음이 짙어졌다.
도회지는 이미 벚꽃이 져버렸고 높은 지대에는 그런대로 볼만하다.
풍광이 일품인 진해 안민고개 벚꽃터널길을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 걷지 못하고
아쉽게도 자동차를 타고 넘었다. 평일 아침 시간이어서 오가는 차량도 뜸하고
걷는 사람도 많지 않아 중간중간에 자동차를 세우고 잠시 쉬는 것으로
올 봄 남쪽 벚꽃구경은 끝이다.

나무는 어째서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울까.
나무는 가을에 낙엽이 짐과 동시에 꽃눈을 만들어둔다. 그리고 추운 겨울을
보내야만 꽃을 필 수 있다. 이걸 '춘화현상'이라고 말할 뿐 나무는 어째서 꼭
추운 겨울을 나야 꽃을 피우는지 학자들도 정확한 과학적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무가 가을에 만들어 놓은 꽃눈은 숲속 생명체들의 요긴한 겨울 먹이가 된다.
산에 사는 가지각색의 조류와 다람쥐, 청설모, 너구리, 고라니 같은 포유류도
꽃눈을 먹고 어린순을 먹고 산다.  
꽃은 숲에 기대고 살아가는 다양한 곤충까지 초대해 배를 불린다.
이렇게 꽃을 잎보다 먼저 내밀어야 숲속 생명체들에게 자기의 존재를 맘껏
드러내고 번식을 위해 곤충이나 새들을 불러모으기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나무가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까닭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일이 아니라
사뭇 감성적으로 들여다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15일에 되지빠귀가 울기 시작했다.
지난해 4월 22일 보다 일주일이나 빠르다.
되새는 아직도 무리지어 먹이 먹기에 바쁘다. 슬쩍슬쩍 오가던 양진이 한 마리는
북쪽으로 출발했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복수초는 지난 4월 1일 담터계곡에서부터 피기 시작했고
노루귀도 거의 같은 시기에 피었다. 흰색 자주색 제비꽃도 피었고
4월 중순이면 노루귀가 지고 현호색이 피기 시작한다.
지지난해 심은 목련은 겨울앓이를 하는지 올해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 대신 올해 새로 심은 목련묘목 세 그루에서는 각각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의
하얗고 탐스런 꽃을 피웠다. 곳곳마다 목련꽃이 풍성하게 만개했지만
‘나의 비밀의 정원’에서 피는 목련꽃은 각별하다. 봄에 피는 꽃 중에서 나는
목련을 특히 좋아한다.

매화는 줄기마다 하얀 팝콘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봄이 올 때마다 남쪽을 오가지 않았다면 그저 꽃이 피는구나 할 텐데
남쪽에서 이미 져버린 꽃이 ‘다시 피는 양’하고 보면 ‘너는 이제야 피는구나’ 하고
괜히 반가웁다. 그 꽃이 이 꽃은 아닌데도 말이다.
금낭화는 그 중 먼저 싹이 돋는다. 어떤 녀석은 벌써부터 서둘러 꽃을
매달기 시작했다. 꽃이 피면 사람들이 나물로 먹지 않는다는 걸 알고 꾀를 낸
모양이다.
아침 예불을 하는데 법당 옆 꽃다지밭에 멧새인지 종달이인지 한 쌍이 사이좋게
걸어다니며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철원 군청 문병규 과장께서 곤줄박이가 먹이를 물고 들어가는 것 같다고 하여
나는 둥지재료를 물고 들어가는 거라고 우겼는데, 나중에 곤줄박이 포란날짜를 찾아보니
이맘 때였다.
그렇다면 문 과장 말대로 곤줄박이가 물고 있는 것은 먹이가 맞을 것이고
포란을 시작한 짝에게 먹이기 위해 먹이를 물고 들어가는 것으로 짐작된다.  
문 과장과 골짜기로 들어가 원추리와 금낭화도 뜯고 참나물과 달래도 캐
점심상을 마련했는데 마침 두 분의 손님까지 오셔서 풍성한 봄나물 점심공양을
마쳤다.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와 내친김에 문 과장과 큰길에서부터 낡고 바랜 연등을
모두 떼고 새로 걸었다. 두어 시간 고생한 보람이 있어 벌써부터 연꽃이 핀 것이다.

4월 16일에는 들판에서 10여 마리의 재두루미가 관찰되었다고 알려왔다.
3월 말이면 모두 돌아가는 녀석들이 웬일일까. 일본에서 뒤늦게 출발했거나
무리에서 낙오한 병약한 녀석들이거나 아니면 무리 중에 병약한 녀석이
있었거나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4월 중순에 들판에서 두루미가 관찰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수백 마리의 쇠기러기는 아침 저녁으로 암자 앞을 낮게 날아 오간다.
모내기가 한창일 때까지 남아서 먹이활동을 하는 녀석들이라 올해도 농부들의
마음을 꽤나 애타게 할 것이다. 녀석들이 무리지어 내려앉으면 애써 심어놓은
모가 모두 떠버리고 더러는 먹이로 삼기 때문이다.
농약에 중독되어 수거되는 쇠기러기가 발견되는 것도 이 즈음이다.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되지빠귀는 청아하게 노래한다.
노래 가사를 적어보면 이렇다.
--이봐요, 잘 지내셨나요? 지난 겨울은 좀 어땠나요, 저야 따뜻한 남쪽에서 잘 지냈지만
춥지는 않았나요? 농막에는 불이 켜져있는 거 같던데 누가 살기 시작했나요?
올 봄에는 어떤 나무를 심었나요, 공부는 좀 어떠신가요, 벌통이 여럿 보이던데
양봉을 새로 시작하신 건가요? 눈 수술을 했다고 들었는데 경과는 어떠신가요.
올해는 참새들이 참 많이 보이네요, 아무튼 올 때마다 숲이 변하지 않아서 너무 좋군요...

한바탕 되지빠귀가 울고 가면 ‘어김없이’ 오색딱따구리가 날아와 나무를 쫀다.
멧비둘기는 뭘 잘 못 먹은 사람처럼 나뭇가지에 앉아 구엑구엑 토하듯 운다.
출판사 조한별 님이 왔기에 나는 새들 우는 소리를 ‘이퀄라이져’로 듣는다고 했더니
그럴 수 있겠다고 동의한다.
새들은 희안하게도 올 때는 꼭 울음소리를 내 창문커튼을 열지 않고서도 어떤 녀석이
왔는지 훤히 알 수 있다.

남쪽에 내려간 김에 이번에도 부산 보수동 헌책골목에 다녀왔다.
지난번에는 추사 김정희 작품 모음집을 구했는데 이번에는 신영복 선생이 1996년에
쓴 ‘나무야 나무야’와 누가 빌려간 후 가져오지 않는 김주영과 박완서의 책 몇 권을 다시
집어왔다.
꽃 보랴 김 매랴 바쁘지만 오가는 새들을 바라보며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재미도
알싸하다. 책을 읽을 때는 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읽는 습관이 있는데 헌책에서는 내가
그어놓은 줄은 없지만 어디선가 본 것과 같은 풍경, 이야기, 사람들을 대하는 것
같아 친근하기도 하고 낯선 구석도 있기도 하고 그렇다.

정명섭 시인이 나한테 더 좋겠다며 ‘벽암록’을 챙겨오더니
출판사 조한별 님은 새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은 ‘빅이어’를 가져왔다.
물닭 조승호 박사께서 권한 책이었는데 한참 전에 듣고서도 잊지 않고
구해온 것이다.
카메라 하나 없이 망원쌍안경 하나 들고 곳곳을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소유와 무소유가 어떻게 다른지, 자연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배우며
어떻게 하면 인간 역시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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