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1-05-07 07:53:25, Hit : 3945, Vote : 988
 DSC_4233_2.jpg (195.6 KB), Download : 51
 오월은 푸르구나!


.
오월은 푸르구나!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축복을!

적어놓고 보니 마음 한쪽이 착잡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념이나 종교를 빙자한 내전과 가난 때문에  
어린이날 선물은 고사固辭하고 당장 끼니를 이을 수 없거나
끼니를 위해 일하는 어린이들이 지구 곳곳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날은 힘들고 어렵게 살고 있는 다른 나라 어린이들을
생각하는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하튼 오월은 푸르다.
봄맞이꽃, 냉이꽃(다닥냉이, 말냉이, 황새냉이, 싸리냉이...) 벼룩나물,
장대나물(털장대나물, 참장대나물, 애기장대나물, 나도나물), 뱀딸기,
우산나물, 천남성, 둥글레, 괴불주머니, 매발톱, 애기똥풀, 삼지구엽초,
수영, 흰제비꽃, 제비꽃, 고깔제비꽃, 라일락, 꽃사과, 철쭉...
오늘 아침 산책길에 눈인사를 나눈 녀석들이다.

새들도 속속 도착하는 중이다.
4월 23일에는 소쩍새와 벙어리뻐꾸기가 울기 시작했고 4월 30일에는
흰눈섭황금새가 관찰되었다.
벙어리뻐꾸기는 원두막 옆 나뭇가지에 축 늘어진 채 앉아있었다.
너무 먼 길을 단숨에 오느라 기진맥진했을 것이다.
앞마당에 앉아있는데 노란 녀석이 뽈뽈뽈...아주 느리게 내쪽으로 날아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 급선회 한다. 뭐 저렇게 느린 녀석이 있담,
아,흰눈섭황금새였다. 이 녀석도 먼 여행길에 기운이 다 빠져버린 모양이다.  
청개구리와 무당개구리도 같은 날 등장했다.
쮸리쮸리쮸리쮸리...하고 풀벌레 우는 소리와 흡사하거나
쭈이 찌...쭈이 찌...하고 우는 솔새,
호반새 우는 소리가 들려 벌써 왔나하고 숲에 가만히 앉아 기다렸는데
이 녀석도 솔새였다. 호반새 우는 소리와 너무 닮아 헛갈린다.
아침 먹으러 오는 멧비둘기는 두 개의 알을 낳고 포란 중이다.
5월 2일, 그 많던 되새가 하루 아침에 모두 사라졌다.

오월은 앞마당에 찬거리도 지천이다.
손님들이 오셔서 더덕순, 오갈피순, 엄나무순, 두룹순, 취나물, 돌나물을
뜯어 데치고 무쳐 비빔밥도 만들고 쑥국도 끓여 오월의 풍성한 점심공양을
올렸다.
인기척에 나가봤더니 배낭을 하나씩 멘 나이든 두 보살이 앞마당에 앉아있다.
비닐봉지에 단풍나무 묘목이 들어있기에 나무를 심으려나 기특하네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나물 캐러 왔다가 집에 심겠다고 나무까지 캐 온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나무를 심으러 오고
어떤 사람은 산에 있는 나무를 캐 가고,
복은 자기가 짓는다.
  
제법 유식하다는 두 여인 모두 최근 병원신세를 졌던 사람들이다.
그 중 한 여인은 몇 번의 암수술을 받고 ‘마음을 모두 비웠다’고 했다.
--마음 비웠다더니...?
--그럼요 스님, 저 마음 비운 지 오래됐어요.
뻔뻔하기도 하여라,
저승 문턱까지 다녀온 사람은 들풀 하나 들꽃 한 송이 함부로
밟지 못한다. 모진 겨울추위를 견디고 소생한 식물들에게 ‘너 참 예쁘게 피었구나‘
말을 건네며 생명의 신비로움, 생명의 소중함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도 눈에 보이는 건 모두 가져가고 싶고 먹을거리로만 보인다면
덜 아파 본 사람이다. 보살께서는 크게 한 번 더 앓아야 깨달을 것이라며
점심공양까지 올리며 ‘악담’을 해줬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는 듯 했다.
그러나 웬 걸,
분명 주차장으로 내려간 걸 봤는데 두어 시간 후에 다시 나타났다.
‘눈에 뵈는 게 먹을거리’라 여태 근처에서 나물을 뜯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또 올라왔다.
깨달은 게 있었나...?
아니다. 나물 뜯으러 온 거였다.
못 말리는 보살들,
놓는다는 게 무엇인지 비운다는 게 무엇인지 죽음이 임박해야 깨닫는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5월 4일, 알고 지내던 최용선 님이 결국 이승을 하직했다.
안과 진료를 위해 여의도 성모병원에 오갈 때 한 번은 커피숍에서 만나고
한 번은 병원으로 문병을 왔다.
머리는 나처럼 삭발을 해 중병을 앓고 있음을 예감했다.
오디오 매니아여서 화제 역시 오디오.
집착하는 것 다 놓으라고 일렀다. 중환자실에 문병 갔을 때도 다 내려놓고
어디든 걸으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멀리 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혼절을 거듭한다고 했다.
--좀 어떠세요?
--아이고, 죽겠어요...
정신이 잠시 돌아왔다고 그의 아들이 바꿔준 전화기 너머로
모기 소리만한 그의 마지막 음성을 들은 며칠 후 그는 먼 길을 떠났다.
영안실에서 염불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이다. 어리석은 중생이 어디 그 뿐이랴.
나물 캐던 보살도,
저승사자가 문 밖에서 밤낮으로 기웃거리는 것도 모르고
뭐든 움켜쥐려만 들다가 기어이 빈손으로 저승사자를 따라간
내가 아는 어떤 노인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다.

오월은 정말 푸르구나!
내가 알고 모르는 식물들은 빠짐없이 소생했고
벌레들도 ‘새롭게’ 태어나고 새들은 둥지를 짓고 알을 품으며
푸른 오월을 맞는 중이다.
우리 모두에게 오월은 어떤 모습일까.

그대 홀로 어디쯤 가고 있는가.
부디 다음 생은 집착하지 않는 학이 되어 자유로우시게.





1213   새들은 속속 둥지를 떠나고, 나도 멀리 여행 다녀오고,  도연 2011/06/12 4085 907
1212   2011년 여름새들이 모두 돌아왔다.  도연 2011/05/30 4334 1070
1211   ‘꾀꼬리’도 오고 ‘뻐꾸기’도 오고,  도연 2011/05/20 4130 953
1210     영도 다리밑 점집 풍경,  도연 2011/06/01 4676 1101
1209   부처님 오신 날, 행사 잘 마쳤습니다.  도연 2011/05/12 4018 921
  오월은 푸르구나!  도연 2011/05/07 3945 988
1207   매화 만발하고 벚꽃 피고,  도연 2011/04/30 4710 1139
1206   하늘다람쥐, 여태 거기 살고 있었구나.  도연 2011/04/23 4283 1016
1205   얼마 만에 듣는 빗소리인가,  도연 2011/04/18 4187 951
1204   되지빠귀 울고 매화 피고,  도연 2011/04/17 4029 925
1203   들판에 두루미 모두 돌아가고,  도연 2011/04/06 3815 1033
1202   묵향墨香  도연 2011/04/06 4193 1003
1201   호랑지빠귀가 우네,  도연 2011/03/29 4628 1178
1200   달빛 길어올리기.  도연 2011/03/25 4377 958
1199   을숙도, 고니들이 모두 돌아갔네,  도연 2011/03/23 3986 1023
1198   대숲에 날 밝아오고 호랑지빠귀 울고,  도연 2011/03/19 3986 935
1197   새도 먹고 벌도 먹고 너구리도 먹고,  도연 2011/03/14 4503 941
1196   주춤주춤 봄이 다가오다.  도연 2011/03/14 3834 1014
1195   자연 앞에 겸손하라,  도연 2011/03/13 3999 964
1194   동자들과 서울 바이크쇼 참관,  도연 2011/03/06 4153 973
1193   봄이 오긴 오나보다.  도연 2011/02/26 4011 986
1192   --니들이 고생이 많다...  도연 2011/02/16 4803 1256
1191   동자들과 금학산 등산,  도연 2011/02/13 5070 1102
1190   재겸이를 위한 서비스,  도연 2011/02/12 3952 963
1189   나온 김에 차 마시고 구경하고,  도연 2011/02/10 4487 980
1188   병원 가는 길 단상.  도연 2011/02/10 4862 1142
1187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도연 2011/02/07 4607 1094
1186   깨끗함과 더러움의 경계는 있는가,  도연 2011/02/03 4146 1081
1185   하늘의 종결자, 흰꼬리수리.  도연 2011/01/29 4464 977
1184   먹성 좋은 독수리,  도연 2011/01/29 3950 1024

[1][2][3][4][5][6][7][8][9][10][11][12][13][14][15][16][17] 18 [19][20]..[58] [다음 20개]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