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1-07-12 11:06:04, Hit : 3691, Vote : 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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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는 죽어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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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죽어도 산다.

남쪽에서부터 시작된 장마가 오늘에야 도착했다.
봄가뭄에 시달린 나무들 기가 한껏 살아나 푸르다 못해 검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루 황, 천자문에 하늘은 검은색이라더니 숲이 그렇다.
검은색은 까만색과 늬앙스부터 다르다. 검은색이 동양식 시각이라면 까만색은
서양식 시각이다.

벗나무 한 그루는 세찬 비바람에 옆으로 누웠다.
해마다 겨울이면 줄기가 얼어죽는 섬진강 대나무는 올해도 열심히 싹을 틔우고
성장하는 중이다. 그래봐야 겨울이면 다시 얼어죽을 거면서 죽음을 아랑곳 않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엄지손가락 굵기의 목련 묘목 한 그루는 나의 실수로 부러졌는데
죽은 줄 알았더니 밑둥에서 커다란 잎을 세 개나 틔우면서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실하게 자란 매실나무는 지난 겨울 모진 추위에 밑둥치가 얼어터졌다.
올해 가장 많은 매화를 매달더니 얼어터진 밑둥치에 물이 들어가 썩으면서
주렁주렁 매달린 매실이며 잎사귀가 된서리를 맞은 것처럼 축 늘어졌다.
단단하고 질긴 느티나무 한 그루도 지난 겨울 밑둥치가 얼어터져
고사하고 말았다.

나무가 사람처럼 스트레스 받을 이유도 없고 땅에 단단하게 뿌리를 박고 있으면
절로 영양을 섭취해 영원히 살 거 같지만 동물처럼 나이를 먹고 죽는다는 게
쉽게 믿겨지지 않는다.
그래도 천년을 넘게 사는 나무도 있다.
그런 나무는 사람들의 경외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나무가 천년을 사는 동안
마을의 대소사를 모두 목도하고 태어나고 사라져간 사람들의 면면을 모두 기억하며
길흉화복을 관장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고목 허리에 울긋불긋  오색 띠로 치장을 하고 상다리가 휘어지게
한 상 잘 차려 정성스런 고사를 지내는 것이리라.

을숙도 앞바다 모래섬 도요등에도 나무는 죽었어도 살아있었다.
불어난 강물의 위력이 엄청나 하구의 모래섬까지 물에 잠기자 새들은 모로 누운
나무에 기대 고단한 날개를 쉬는 중이다.
커다란 저 나무는 생전에 수 많은 생물을 보듬었을 것이다.
새들은 날마다 날아와 문안인사를 올렸을 것이고
이 마을 저 마을 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재잘재잘 얘기꽃을 피웠을 것이고
더러는 둥지를 마련하여 새끼들도 여럿 키워냈을 것이다.
수많은 애벌레들도 나뭇잎을 갉아먹으며 아름다운 나비로 다시 태어났을 테다.

그늘 아래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쉬어갔을 것인가.
사람들은 나무 밑에 모여 마을의 대소사며 집안의 경조사를 의논하고
걱정했을 것이고, 촌로들은 도회지로 나간 자식들 이야기며 누구네 영감이
논을 사고 팔았고 누구네 아들 딸 시집 장가 가는 날이 며칠 남았다며
손가락 셈을 했을 것이다.
가끔은 홀로된 노인들이 앞서 간 사람을 그리워하는 장소였을 것이고
또 가끔 달밝은 밤이면 처녀총각이 남몰래 만나 밀어를 속삭이는 장소로
애용했을 것이다.

한여름, 을숙도에서 저어새가 관찰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을숙도에서 월동한 저어새들이 번식지로 돌아가지 않은 까닭이 뭘까,
새들은 고단해 누운 나무에게서 옛이야기를 듣느라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몰랐나보다.
보트를 운전하는 모인호 님이 저어새를 보라고 가리키지만 나는
이제는 고단해 누워버린 나무에게 더 눈길이 간다.
모로 누운 나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새들이 찾아와 행복할까 아닐까,

강물에 떠내려와 버려진 의자에 앉아도 보고
하릴없이 무인도 모래섬을 걸어도 보는데 나무가 말을 건넨다.

--나무는 죽어도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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