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11-06 07:57:53, Hit : 4929, Vote : 1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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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먹고 입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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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고 입을까,

방송국 사람들과 민통선 안쪽 들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경지정리를 하느라 여기저기 마치 '개발현장'을 보듯 커다란 장비들이 분주히 오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들은 곳곳에서 한가롭다. 얼추 500여 개체의 재두루미가
관찰되었고 흰두루미는 관찰되지 않았다.
안내 장교를 졸졸 따라다니는 일은 나하고는 맞지 않아 서둘러 나와
'나의 비밀의 정원'으로 향했다. 낚시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새들과 마주할 수 있는 몇 곳 중 하나다.
며칠 전 서 시인과도 함께 왔었다. 철원땅에 반세기 넘게 살았어도 이런 곳이
있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천국에서 신선들이 노니는
모습이 이럴 것이라며 그는 넋을 잃었다. 생경한 장면 하나하나가 그의 전두엽에
깊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무엇을 먹고 입을까, 오늘 밤은 어디서 잘까. 집을 버리고 진리를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이 같은 장애를 극복하리라.(숫타니파타)
들판에 나가 새들을 볼 때마다 나는 부처님께서 제자 사리풋타에게 하신
이 말씀이 떠오른다. 저 새들이야말로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무위진인無位眞人
이기 때문이다.
들판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두 시간 남짓 걸어서 들판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들판은 자동차로 움직일 때 다르고 자전거를 탈 때 다르고 걸을 때 다르다. 속도가
느리면 느릴수록 시야가 넓어지고 사물에 대한 잔상도 오래 남는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친근하다.
거의 져버린 산국도 눈에 들어오고 양지쪽에는 철모르고 노랗게 핀 민들레도
눈에 띈다. 민들레는 바람을 피하느라 난쟁이로 변신했다. 새들의 겨울철 먹이가
되는 빨간 노박덩굴 열매도 풍성하다. 덤불숲에서는 멧새들이 열매를 물고
부리나케 드나든다.

들짐승을 막기 위해 배추밭 주변에는 사람 키만큼 높은 그물망 울타리가
쳐졌다. 그러나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은 막을 수 없는 법,
고라니 한 마리가 배추를 맛나게 포식하다가 사람을 발견하고 높은 울타리를
단숨에 뛰어 넘어 달아난다. 배추밭 주인에게는 도대체 구멍이 난 곳도 없는데
들짐승이 어디로 들어와 배추를 먹었는지 영문 모를 일이 일어난 것이다.
울타리 바깥쪽에는 어디를 둘러봐도 고라니가 먹을 만한 게 보이지 않으니
고라니의 등장이 나무랄 일도 아니다.
문득 기독교회의 십일조十一租가 떠오른다. 중세 유럽의 교회가 교구민에게
징수하던 이 제도가 다른 생명을 위한 나눔의 행위는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라면 울타리 바깥에 열에 하나쯤은 우리가 아닌 다른 생명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옳다.

벼를 수확할 때 다른 생명을 위해 한 고랑쯤, 한 가마니 쯤 거두지 않고 남겨두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농부 어디 없을까.

무엇을 먹고 입을까,
걱정 없는 새들만 한가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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