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11-08 21:53:10, Hit : 5101, Vote : 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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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칫독 묻고 연탄보일러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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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독 묻고 연탄보일러 놓고,

사흘 내리 안개 자욱한 五里霧中 오리무중 이다.
비 오고 눈 내리는 날처럼 杜門不出 두문불출 책 읽기 좋은 날이다.
토요일 오후 안개속을 용감히 뚫고 재겸이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재겸이는
토요일이면 가끔 암자에 와서 잔다. 내가 좋아하는 황태국을 끓여 아침공양을 하면서
명태가 동태, 황태, 북어 등으로 불리는 까닭을 공부한다.
일정한 시간 영어를 공부한다든지 컴퓨터 용어나 자전거 용어를 공부하는 것은
재겸이의 ‘나랑 놀기 위한 통과의례’가 되었다. 오늘 ‘밥상머리교육’은 재겸이의
미래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재겸이는 6학년이면서도 방과 후 함께 놀 수 있는 아이들이 4학년짜리 밖에 없다.
그래서 재겸이와 시간을 보낼 때마다 어떻게 하면 ‘놓쳐버린’ 2학년을 찾아줄까 고민한다.
한 학년이 10명이 안 되는 시골 초등학교여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도회지보다는 월등히 나을 거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아침공양을 마치고 마을 할매들이 보내온 김장김치를 묻었다.
내가 곡괭이로 땅을 파면 재겸이는 삽질을 했다. 겨울을 나려면 작은 항아리
세 개는 묻어야 할 것이다.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김치를 차곡차곡 담아
묻고 ‘안전하게’ 뒤처리를 한 것은 지난 겨울에 김치 익는 냄새가 멧돼지 코를
자극해 김칫독을 파헤치는 바람에 모두 버렸기 때문이다.
서 시인이 와서 이번에는 망가진 헛간 철거작업을 도왔다. 묵은 때가 민망스럽게도
켜켜이 쌓여있다. 헛간을 말끔히 철거하고 안 쓰는 슬레이트로 벽체를
세운 후 샌드위치 판넬 두 개로 지붕을 얹었다. 선반 설치만 마치면
갖가지 공구를 보기 좋고 쉽게 찾아 쓸 수 있도록 보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정명섭 시인 내외가 와 밥 짓고 국을 끓여 점심공양을 맛나게 들었다.

손님방 연탄보일러 공사도 시작했다.
전기료는 전기료대로 들여가며 지난 겨울 고생했던 생각에 전기판넬을 들어내고
연탄보일러를 놓기로 한 것이다. 기술자를 들이대면 반나절이면 끝날 일을
서툰 솜씨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겨우겨우 바닥 배관을 깔았다.
40kg짜리 시멘트가 나이를 먹은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무겁다.
외발수레에 두 포대를 싣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고, 저나 내나 힘이 빠져
몇 번을 박장대소, 아아, 무거운 짐을 들어봐야 비로소 나이를 실감하게 되는구나.
20포대를 나르느라 벌써 기진맥진하여 시멘트 버무리는데도 삽은 무겁기만 하고
일은 마냥 더디고,
해는 지고 갈 길은 멀다더니,

--나는 말이예요, 스님들은 단칸방에 이불 한 채 옷 한 벌 바루 하나로
사는 줄 알았는데, 스님은 이슬만 먹고 이슬똥만 누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봅니다...
--누가 아니랍디까. 나도 그렇게 살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오.
바닥을 바르면서 두 늙은이가 주거니 받거니, 하여튼 전등불을 밝히고서야
‘거룩한’ 하루 일과를 마쳤다.
저녁공양을 하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친다. 보일러 연결도 못하고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면 어쩌나 덜컥 걱정부터 한다.  

추위야, 며칠 더 있다가 오면 안 되겠니.
안 되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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