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11-30 11:30:44, Hit : 4491, Vote :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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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으로 알아차리시는가,


.
무엇으로 알아차리시는가.
  
창문밖에 조명등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봐야 희미한 조명이 어둠을 환하게 밝히기에는 역부족이겠지만
생각이 단절될 때마다 밖을 내다보며 눈도 마음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새축제 행사가 있어 창원 주남저수지에 내려가면서
‘이제 대중 앞에 그만 나서고 공부에 전념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행사를 이틀 앞두고 내 역할이 취소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저쪽에서 미리 알려온 것도 아니고 내가 전화를 걸고서야 안 사실이다.
어떤 사람이 중간에 훼방을 놓은 모양인데 익히 아는 사람이라 순간적으로 서운했지만
용하신 부처님께서 내 뜻을 꿰뚫고 내 소원을 이루게 한 것이다.
지월 스님, 지만 스님께서도 ‘아이고 마 구차스럽게 시님 이제 고마하이소’
야단을 치는 바람에 그러마고 했더니 한 짐 던 것 같아 가벼워 좋다.

도처에 귀신이 널려있다.
귀신이라면 머리 풀어헤치고 핏빛 송곳니를 들어낸 모습을 연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내 앞에 나타나 나를 돕거나 훼방하는 모든 것들이
바로 귀신이고 귀신의 장난 아닌 것이 없다.
귀신이 장난 칠 때마다 나는 ‘무슨 뜻인지’ 알아차림에 열중한다.

3천 배를 해야 성철 스님을 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귀신의 장난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3천 배를 하다가 돌아가는 사람,
3천 배를 마치고도 그냥 돌아가는 사람,
3천 배를 마치고 뵙기를 청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대는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시는가.

재겸이가 이해하기 쉽게 다시 적어보면,
3천 배를 하는 도중에 ‘알아차린’ 사람,
3천 배를 마치고서야 알아차린 사람,
3천 배를 ‘숫자’만으로 인식한 사람, 을 말한다.
자, 이만하면 성철 스님의 뜻이 무엇인지 짐작하셨으리라.
(부산 내려갔더니 재겸이 안부를 묻는 분도 있었다.)

속담에 ‘누울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한 것처럼
‘내가 설 자리가 아닌 것 같아 그냥 올라간다’고 통보하고 올라왔다.
‘스님들은 이슬만 먹고 이슬똥을 싸는 줄 알았다’는 서 시인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 참 잘했네, 다음에 만나면
큰 가르침에 감사드린다며 삼배를 올려야겠다. 스승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먼 데서 온 손님과 차를 마시면서 얘기했더니 공감한다면서
결정할 일이 있는데 좋은 말씀이 되었다고 고무적이다.

그러니까,
나는 참 늦게도 깨닫는다.
나에게 충실하겠다며 홀로 살기 시작한 후 수 많은 귀신들이 드나들며
이것저것 많은 것을 일러줬는데도 무식한 까막눈이 눈으로만 보려고 애쓴 까닭이다.
길이 끊어지고 새들이 먹이를 보채는 것은 두문불출 공부 열심히 하라는 뜻이었는데
이걸 알아차리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다.
법정 스님께서 밖에 내 놓은 난초蘭 화분 때문에 외출에서 부리나케
돌아오셨다지만, 나한테 와 준 난초 화분 하나는 스님이 생각했던 것과
예상 밖의 방향으로 다가온다.  
동해를 입을까 애면글면, 햇볕 잘 드는 곳으로 옮겨놓으며 신경 쓰다 보면
식물 한 그루가 나의 자유로움을 간섭하는 애물단지가 아니라는 걸
늦게나마 알아차린 것도 최근이다.

주남저수지 행사가 취소되는 바람에 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 양재동에서 있었던
‘산지보전협회’ 산사랑 회보 편집회의에 참석할 수도 있었고
다음 날 일요일에는 철원두루미심포지움(두루미 네트워크 이기섭 박사)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맞을 수 있었으며, 멀리 러시아, 일본, 중국에서 오신
두루미 관련 학자들에게 그림도 한 점씩 드릴 수 있었으니
부처님은 역시 위대하지 않은가. (창원 연꽃마을의 송영철 장로께서 이 얘기를
들었다면 껄껄 웃으며 ‘할렐루야’ 했을 것이다.)

새 노트북 컴퓨터도 마련되었다.
노트북이 없어져서 데스크탑을 따뜻한 손님 방으로 옮겨놓고 쓰자니
방도 복잡해질뿐더러 컴퓨터가 방문객들에게 오픈 되는 게 싫어 전전긍긍하던 차에
새 노트북이 마련되었으니 또 부처님은 위대하다.
덕분에 올 겨울 따뜻한 방에서 출판준비 원고를 마무리 할 수 있겠다.  

새벽에 비가 내리더니 차분해 좋다.
그대는 무엇에서 알아차리시는가.

(심우정사 신도님들 반가웠으며 한 시간 내내 서툰 법문 경청해 주신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소장님을 비롯한 직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 오늘 오후 5시 30분에는 sbs 생방송 투데이에 재겸이와 석규, 헌율, 수현이와
새 둥지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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