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12-30 09:20:13, Hit : 4369, Vote :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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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인가 눈-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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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인가 눈-물인가,

운전면허 재교부를 하기 위해 의료원에서 시력검사를 하는데
재교부를 충족시킬 만큼의 시력이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불합격이다.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 눈 앞에 안개가 끼지 시작하고
UFO가 떠다니는 것도 그저 나이를 먹어 그러려니 했는데
그야말로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도로 이정표를 50m 앞까지 다가가서야 읽을 수 있을 만큼 시력이 나빠져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이 장착됐어도 길을 잘 못 들어서기 일쑤였고
운전하는 것도 고단한 일이 되고 말았다.
안과병원 갈 생각을 못한 게 이상한 일이었고
눈에 이상이 발견된 것도 도회지 시설 좋은 안경점이 아닌
시골의 작은 안경점에서였다.

경찰서에서 의료원으로, 의료원에서 안경점으로, 안경점에서
안과병원으로, 다시 경찰서로 다니느라 하루를 소비했다.
개인 안과병원이라는 게 다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안경점에서 들여다보는 기계로 한 번 쓰윽 훑어보고는 너무 늦게 왔다며
수술 날짜를 잡으란다. 다른 데도 아니고 자칫하면 시력을 영영 잃을 수도
있는 눈을 수술하는데 간단한 진료만으로 가능한 건지, 아니면 의료기술이
좋아진 건지,
눈을 들여다본 안과 의사께서는 여기서 하던지 다른 데서 하던지
알아서 하라는, 뭐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만 나가보라는 듯,
합장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돌아앉는다.
마치 나로 인해 뉴스 검색하기가 방해 됐다는 듯.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불행한 일이다.
‘하거나 말거나’가 아무래도 못미더워 여의도 성모병원 조승호 박사께
전화를 넣었더니 내일 당장 오라고 한다.      

버스와 지하철과 택시를 번갈아 타느라 약속시간을 한 시간이나 넘겨
병원에 도착했다.
접수대에서 기다리던 조 박사께서 눈검사, 혈액검사, 소변검사, 초음파검사,
흉부엑스레이, 심전도검사 등등 도회지 구경 나온 시골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듯 일사천리로 헤집고 다니며 시간을 내어주셨다.  
수술날짜를 넉넉하게 잡고 병원에서 나오는데 눈에 뭔 약을 넣었는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병원 옆 쌍둥이 빌딩에 있는 성천문화재단 송곡 선생님께 가서 차 한 잔 마시고
쉬었다 가면 되겠다 싶어 전화를 넣었더니 부재 중,
서울 나올 때 꼭 좀 보고가라는 분이 있어 mbc까지 천천히 걸었다.

건너편 간판 커다란 글씨까지 ‘오리무중’이라 횡단보도에 서서
옆 사람에게 물어물어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데, 눈이 안 보이면 이렇겠구나,
만약 앞이 보이지 않으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갈까,
살아갈 의욕은 있을까, 별별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산에 돌아와 하룻밤 자고 나니 앞을 가리던 휘뿌연 안개도 많이 걷혔고
우울했던 마음도 나아졌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폴폴 날리는 눈을 맞으며 걸으면 참 좋겠다 싶어
두 사람을 꼬드겨 점심을 같이 먹고 왕방산 산행에 나섰다.
저 만큼 앞서가는 두 사람 뒤로 나는 천천히 걸으며, 천천히 눈을 맞으며,
사는 동안 눈을 많이 혹사시켰구나, 눈에게 참 미안한 짓도 많이 했구나,
어디 미안한 게 눈 뿐이더냐, 팔도 다리도 심장도 위장도 미련한 ‘나’를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더냐, 훗날 내가 내 몸을 떠날 때 고마웠다고 미안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몸’에게 위로나 되는 걸까,

하필이면 오래 전 내가 아는 어떤 이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던 숲길 바로 그 자리를
지나게 되었다. 삶도 죽음도 폴폴 내리는 눈처럼 흔적도 없는데 오직 기억 속에서
컴퓨터 램메모리처럼 잔상으로 남을 뿐이어서 미안하네. 그 잔상마저 전기 코드가
뽑히면 넋이라도 있을까 없을까.
걸으니 참 좋다고, 치열하게 사느라 한가롭게 걸어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며
소년처럼 즐거운 앞서가는 두 사람도 언젠가는 또 이 길을 걸으며
저건 물푸레나무이고 이건 오가피나무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지 모를 일이다.

눈은 함박눈으로 변해 쌓이기 시작했지만 갈 길이 미끄러울 걸 뻔히 알면서도
걱정되지 않았다. 걷는 동안 마음이 넉넉해졌기 때문이다.
마치 유체이탈이라도 한 듯 눈길을 걷는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이 몽환적이다.
흐르는 물처럼, 그 물 속을 헤엄치며 지나간 물고기처럼,
흐르지 않는 것은 없으리라. 시간마저도.

눈에 눈-이 들어가니 눈물인가 눈-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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