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1-01-28 00:12:18, Hit : 4758, Vote :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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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봉사는 공양미 삼백석에 눈을 떴다는데,


.
심봉사는 공양미 삼백석에 눈을 떴다는데,

눈 수술을 위해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일곱 사람이 누워있는 병실도
‘작은 세상’ 이기에 충분하다.
실명한 한 쪽 눈을 위해 각막을 기증 받은 일흔 다섯 살 노인,
병실 배정과 간호사가 마음에 안든다며 연신 투정을 부린다.
나의 일흔 다섯 미래는 어떨까,
‘다행히’ 살아있어서 또 한쪽 눈 아니면 두 눈 모두 실명을 했다면
젊은이들 제쳐두고 각막을 이식받으려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닐까,

나이를 먹으면서 시력이 떨어지는 건
세상 더 볼 게 없다는 뜻에서, 세상을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뜻으로
시나브로 눈을 서서히 멀게 하려는 조물주의 심오하고 계획된 의도일지 모른다.
이 나이에 세상에 더 볼 것이 있을까.
더 본다고 한들 내게 달라질 건 무엇이며 세상이 달라질 건 무엇일까.
하여튼 눈 앞 풍경이 명경처럼 맑아졌다.  
식당에서 내온 반찬들 색깔도 선명하고 아름답다.
법당에 걸린 연등이 이렇게 화려했었구나,
눈 색깔이 회백색이 아니라 희다 못해 청색이었구나,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많이도 늙었구나, 구석구석 먼지며 찌든 때며,
사람들은 나더러 참 지저분하게도 살았다며 수군거렸을 것이다.

옆 침상에는 나이 많은 벽안의 천주교 신부님이 수술을 받았다.
‘기수현’ 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신부님과  
유창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메워갔는데
틈틈이 침묵하며 기도하는 모습이 산에 사는 수행자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문득,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가 무슨 뜻이냐며 묻는다.
정확한 발음으로 <법정 스님>을 말하는 걸 보면 <무소유>에 대해 모를 리 없겠다.
신부님으로 발현한 부처가 내게 묻는 것이다.
--무소유에 대해 알고 있는가...?

심봉사는 공양미 삼백석에 눈을 떴다는데
나도 공양미를 삼백석 쯤 먹고 나면 눈을 반쯤은 뜨게 될까.
공양미를 삼백석이나 먹고도
눈 뜬 장님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 어느 음식점 펜스에 널린 면장갑.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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