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06-07 06:09:35, Hit : 4598, Vote : 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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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MTB를 탄다.



우리는 MTB를 탄다.

어린 시절 집에 까만 색깔의 짐자전거가 한 대 있었다.
일명 쌀집자전거라 불리는 덩치 크고 무거운 자전거였다. 그래도 자전거가
타고 싶은 나는 세워놓은 자전거에 올라앉아 짧은 다리로 페달을 저으며
세상 곳곳을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 소년기에 ‘내 자전거’를 갖고 싶어 열심히
용돈을 모았지만 역부족, 끝내 자전거를 갖는 소원은 이루지 못했다.
법정 스님께서 여행 중 빈집 방 벽에 ‘자전거가 갖고 싶다’는 낙서를 보시고
‘그 아이를 만나면 자전거를 사 주고 싶다’ 고 하셨다는데,
스님께서는 어릴 적에 자전거를 타셨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이와 같은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지금도 스님의 그 말씀을 상기하면 코끝이 찡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자전거는 나의 꿈을 실어 나르는 희망의 도구였다.
길을 가다가도 자전거만 보면 곁눈질을 했다. 헌 자전거는 헌 자전거대로
나를 어릴 적으로 데리고 갔고 멋진 새 자전거는 나를 낯선 곳으로 안내했다.
수년 전, 드디어 나는 꿈에도 그리던 소원을 이루었다. 어른이 되었지만
새 자전거를 탄다는 기쁨은 어릴 적과 다르지 않았다.  

‘동네 꼬마 녀석들’이 ‘자전거 같이 타자’ 고 오기 시작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 자전거 상태가 말씀이 아니다.
신문 구독하면 주는 무거운, 세칭 ‘철TB'를 힘겹게 끌고 오는데 그것도
어른용을 안장만 낮춘 것이다. 체인이나 톱니도 하나같이 부식이 되어 있었고
변속기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 없었다. 고장 난 변속기를 무리하게
돌리다보니 아이들 손가락 엄지와 검지 사이에 물집까지 생겼다.
보다 못해 아이들 부모를 설득시켜 체형에 맞는 MTB를 장만하기로 했다.

미케닉(자전거 엔지니어)의 기술이 뛰어나지만 소규모의 자전거샵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기술은 좀 떨어지지만 대규모 매장으로 갈 것이냐를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게 낫다고 판단하여 대규모 매장으로
결정했다.
100평 쯤 되는 넓은 매장에 수백 대의 가지각색의 자전거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눈썰미 있는 아이들은 ‘고급’ 자전거를 금방 알아본다.
4학년 석규와 수현이(여자아이)가 먼저 자전거를 장만했고 며칠 후 3학년 헌율이도
꿈에 그리던 새 자전거를 가졌다. 스캇 SCOTT 이라는 유명한 캐나다 브랜드의 입문용이다.

몸에 맞도록 각자의 자전거 셋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 오후 8시가 넘었다.
핏자 한 판을 빼앗아 먹은 아이들이 이번에는 ‘자전거 타고 싶어 죽겠다’ 며
중간에 자전거를 타고 가면 안 되겠느냐고 졸라댄다.
어른인 나도 자전거를 사갖고 오는 날 새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어
중간에 자동차를 세우고 한바탕 자전거를 탔는데 아이들이 오죽하랴,
집을 몇 km 남겨두고 자동차에서 자전거를 내려 주었더니 아이들이 그야말로
‘방방’ 뜬다. 평소 했던 것처럼 주의사항을 일러주고 나는 비상등을 점멸하고
아이들을 뒤따랐다.

아이들은 신바람이 났다.
어른 자전거가 아닌 제자전거를 탔으니 영화 ET에서처럼 붕붕 날아다닌다.
주말이면 돼지갈비 사주세요, 뭐뭐 사주세요, 자전거를 타고 몰려와 거절할 수
없게 만든다.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면서 이런 아들 녀석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아이들과 식당에서 열심히 저녁을 먹는데 손님 한 분이
‘스님 아드님들이냐’ 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 양반 또 그런 줄 안다.
아이들은 ㅋㅋㅋ...
투표소에서 봉사하던 여자분이 ‘도연 스님이시냐’ 고 물어 그렇다고
했더니 누구누구 담임 선생님이라고 인사를 한다. 아이들이 내 얘기 많이 한다며,
아이들은 요즘 일기장에 자전거 타는 이야기며 내가 들려주는 새 이야기며
식물 이야기 따위를 쓰는 모양이다.

아이들은 매일 밤 꿈 속에서도 자전거를 탈 것이다.
자다가도 일어나 번쩍이는 새 자전거를 만져보며 아이들이 모르는 신비롭고
드넓은 세상을 씽씽 달리는 꿈을 꿀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 / 석규, 헌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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