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06-22 15:31:16, Hit : 4281, Vote :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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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꾀꼬리, 언제부터 이 숲에 살기 시작했을까.



꾀꼬리, 언제부터 이 숲에 살기 시작했을까.

내가 이 숲에서 산 건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지만
새들은 오십 년이나 백 년 전부터 아니면 천 년이나 만 년 전부터 이 숲에 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자손의 자손이, 또 그 자손의 자손이 수백 수천 번의 대물림으로 이 숲에
존재했을 것이다. 새들은 변함없이 오갔건만 이곳에 살던 무수한 사람들은
마치 이 숲의 주인인양 행세했을 것이다.  
대지에 멋대로 가로 세로 줄을 긋고 내 땅이네 네 땅이네 소유권을 주장하고
담을 쌓고 철조망을 치고 총을 들고 지키거나 전쟁을 일삼는 인간들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두고 새들에게 인간은 ‘연구대상’ 이거나
조롱의 대상이 됐을지도 모른다.  

꾀꼴새는 나뭇가지 끝 아슬아슬한 곳에 국자 모양의 집을 짓는다. 뱀이나 청설모같은
천적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하도 높은 가지에 둥지를 틀어 그러려니 했는데 내가 더는 경계의 대상이 못된다고
판단한 건지 아니면 애타게(?) 보고 싶은 마음을 가엾게 여긴 건지 올해는  
‘특별히’ 높지 않은 가지에 둥지를 틀었다. 덕분에 어미가 먹이를 물고 드나들거나
어린새가 자라는 과정을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샘터에 앉아 책을 읽을 때도
뜰에 풀을 뽑을 때도 청아한 목소리로 울던 그 녀석이다.
내가 휘파람으로 서툴게 흉내를 내도 새는 너그럽게 용서(?)할 줄도 안다.
그러나 휘파람소리에 곧잘 화답하다가도 때로는 그게 아니라며 괴성을 지른다.
머쓱해진 나, 언감생심, 오염된 몸으로 그대 목소리를 흉내 낸다는 게 언어도단이다.

새들은 벌레잡이 선수다.
내가 눈을 부릅뜨고 찾아도 없던 벌레를 새들은 잘도 잡아 온다. 어미새 두 마리가
쉬지 않고 벌레를 물어다 먹이면 새끼들 자라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눈도 간신히 뜨고 솜털 보송보송한 녀석이 사나흘만 지나면 어미 반만큼이나 덩치가
커진다. 어미는 새끼들의 왕성한 식욕을 나무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과 달리 새들에게
‘비만’이라는 단어는 없다.
덩치가 커지면 포근하던 둥지도 비좁다. 발육상태가 좋은 녀석이 먼저 둥지 밖으로
나왔다. 녀석은 어서 빨리 어미처럼 날고 싶은지 힘차게 날갯짓을 하기도 하고
부리로 깃을 쪼아대기도 한다. 자라는 깃털 때문에 어깻죽지가 근지러운 모양이다.
다음 날 나머지 세 마리도 둥지 위로 올라섰다. 아무래도 훌쩍 둥지를 떠나지 싶다.
역시 해질 무렵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새들이 둥지를 떠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그럴 때마다 서운하다.
가만히 휘파람으로 어미 흉내를 내보았다. 그러자 어린새들이 고개를 내밀고 입을
벌린다. 둥지를 떠난 줄 알았더니 해가 저물면서 모두 둥지 속으로 들어간 녀석들은
내 휘파람 소리를 어미가 부르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어미는 새들이 클 것에 대비해
둥지를 신축성 있는 재료로 건축할 만큼 지혜롭다. 근처에 있던 어미가 그건
어미 목소리가 아니니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 후 어린새들은 휘파람 소리에
속지 않았다.      

알에서 깬지 일주일이 되던 날 새들은 둥지를 떠나기 시작했다. 여느 새처럼 힘찬
날갯짓으로 둥지를 박차고 떠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새들은 날지 않고 ‘걸어서’
천천히 둥지를 벗어난다. 둥지가 있던 가지에서 외나무다리 건너듯 위태롭게
뒤뚱거리며 옆가지로 옮겨가며 한 마리씩 둥지로부터 멀어진다.  
인간이 그런 것처럼 새들도 맏이를 더 튼실하게 키운다. 맏이에게 더 많이 먹여
생존율도 높이고 맏이에게 더 투자하고 재산을 더 물려주어야 가업을 잇거나 동생들도
잘 돌본다는 신뢰감 때문일 것이다. 아직 둥지를 떠나지 못한 막내는 안쓰럽지만
맏이보다는 뒷전이다.
사람이나 새나 세상이라는 ‘밀림’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인 것이다.

무심코 문을 열고 나서는데 샛노란 어미새가 저공비행으로 얼굴 앞까지 접근해
나를 놀라게 한다. 제 새끼 보호하려고 위협을 하는 것이다. 가족이 함께
움직일 때는 청아한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괜히 소리를 내서 천적에게 소재를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새들은 얼마간은 자기가 태어난 고향에 머물며 이곳저곳을
세포 속에 기억한 후 조금씩 남쪽으로 이동한다.

꾀꼴새들은 떠났다. 떠난 새들은 내년 여름을 반드시 기약하는데
멋대로 금을 긋고 뭐든 소유하려 드는 우리는 어떤 훗날을 기약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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