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06-23 13:03:35, Hit : 4431, Vote :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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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오고 떠나고,



돌아오고 떠나고,

산에는 봄에도 여름에도 하얀 눈꽃이 핀다. 나무들이 피워내는 하얀 꽃이다.
한바탕 벚꽃이 지나간 후에는 아카시아꽃이 그 자리를 다시 채운다. 골짜기마다
꽃의 뭉게구름이 일어나는 것이다.  
꽃이 내뿜는 향기도 대단하여 벚꽃향이 나는가 싶었더니 금세 아카시아향이
진동한다. 요즘은 밤나무꽃이 피기 시작했다.
허브 온실에 간 적이 있는데 수십 가지 허브향이 뒤섞여 오히려 머리가 아프다.
꽃향기는 한두 가지 정도 맡아야 머리가 상쾌하다.
아카시아꽃은 산에서 먹는 ‘제철 특식’이기도 하다. 꽃을 튀김가루에 버무려
부침개를 해먹으면 아삭아삭 씹히는 느낌도 좋고 입 안 가득 풍기는 아카시아향도
참 좋다. 아카시아꽃이 질 때까지 거의 매일 손님들과 별식을 즐겼다.
  
뽕나무는 어물어물 열매를 맺는다. 꽃이 피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가
시나브로 새까만 오디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다. 오디는 꿀에 재어두었다가 한 수저씩
먹는데 불면증, 어지럼증, 눈이 침침하고 귀에서 소리가 날 때 먹으면 좋다고도
하고 꾸준히 먹으면 하얗게 센 머리카락도 까매진다고 한다.
이런 ‘특효’를 어찌 알았는지 땅에 무수히 떨어진 오디는 멧돼지 몫이다.
그런데 간밤에는 멧돼지가 안 하던 짓을 하고 달아났다.
며칠 바쁜 일이 있어서 멧돼지 먹이를 놓아주지 못했더니 화가 났는지
지난해 묻어놓은 김장독을 파헤치고 배추김치를 모조리 꺼내 팽개치는 분풀이를
한 것이다. 여름에 꺼내먹으면 정말 맛있겠다 싶어 잔뜩 기대를 했는데
김치 익는 냄새가 멧돼지의 후각을 자극한 건지 아니면 어디서 막걸리를
한 대포(大匏=큰 바가지) 얻어먹고 와 안주 삼으려고 그랬나보다.

앞마당에는 ‘여름국화’ 가 만개했다. 아프리카산 ‘마가렛’이라는 꽃을
나는 멋대로 여름국화로 이름 붙였다. 꽃가게 여주인이 ‘가게에 갇혀 사는 것도
지겹고 사람들에게 시달리는 게 너무 힘들어 못해먹겠다’고 하소연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누구나 갇혀 지낸다. 이른 아침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도 갇혀 지내는 거지만 그렇다고 밖에서 일하는 사람도 자유로운 건 아니다.
물리적으로 갇혀 지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그물에 갇혀 지내기도 한다.  
그러나 지겹고 답답하고 힘들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지금보다는 훨씬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꽃가게 주인은 꽃이 될 필요가 있다.
꽃을 사러 오는 사람은 거의 좋은 일로 오는 것이니 주인도 꽃처럼 화사해야 고객이
좋아한다. 나이 들었다고 ‘게으른 머리 스타일’ 을 고집하지 말고 미용실도 자주 가고
남대문 시장에도 자주 나가서 나이보다는 10년 쯤 젊게 입어야 덩달아 젊어진다.
자기를 가꾸는 일이 세상을 가꾸고 변화시키는 일이다.
  
6월 중순이면 새들의 번식도 벌써 종반으로 치닫는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서둘러
번식을 마쳐야 생존율이 높다는 것을 어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새들은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답답하고 좁은 둥지에서 보름 넘게 갇혀 지낸다.
숨을 죽이고 엎드려 지내는 어미를 보면 무문관에 든 수행자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생명을 탄생시키려는 어미새의 진득함이 아니라면 우리가 도달하려는 그 곳은
아주 멀기만 할 것이다.

둥지 속 새들이 이소할 때가 되면 목소리가 유난히 커진다.
어서 나와라, 아직 무서워서 못 나간다, 며
어미새와 어린새가 옥신각신 하는 소리다.
결국은 어미를 애태우던 막내까지 모두 숲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부터 어미새가 먹이통 근처에 자주 보인다. 새끼들이 어미 곁을 떠났다는 뜻이다.
색 바랜 깃털, 야윈 모습이 20그램 몸무게를 가진 작은 새 한 마리가 아니라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낸 거룩하고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나는 어미들을 위해 특별식으로 잣을 내놓았다.
어미들의 노고에 비하면 값비싼 잣도 아깝지 않다. 서울 사는 초등학교 5학년
소현이는 새먹이 사는데 쓰라고 동전을 모은 저금통을 들고 왔다. 새먹이를 직접
들고 오는 어른들도 종종 있다.  

꽃은 대지를 통해 다시 돌아오고 또 다시 대지로 돌아간다.
새들도 숲 사이로 왔다가 다시 숲으로 돌아갔다.
창문 밖을 내다보니 진리가 눈 앞이다.

사진 /  어린새에게 먹이를 먹이는 어미새. 위로부터 박새, 쇠딱따구리, 꾀꼬리, 곤줄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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