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08-12 09:58:30, Hit : 4934, Vote :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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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사랑 원고



숲은 가을을 준비하는데,

꺼병이도 먹이를 먹으러 왔습니다.
꺼병이는 지난 여름에 태어난 어린꿩, 즉 꿩의 병아리입니다.
사람도 뭔가 한 가지 빠진 듯 엉성하게 보일 때 ‘꺼병하다’ 고 하는데
이는 꿩의 병아리에 빗댄 말입니다.
먼발치에서 오가던 꺼병이가 먹이를 먹으러 온 건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특히 다른 새들에 비해 꿩은 옛날부터 사냥의 대상이 되었던 터라
꿩에게 인간은 늘 경계해야할 위험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먹이를 두고
곁눈질만 하던 녀석들이 더는 위험하지 않다고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꺼병이의 등장에 멧비둘기들이 긴장합니다.
멧비둘기 역시 나뭇가지에 앉아 박새나 곤줄박이가 먹이 먹는 걸
구경만 했었습니다. 그러던 녀석들이 마치 기르는 병아리처럼
태연하게 다가와 먹이를 먹습니다.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더니
멧비둘기들이 꺼병이가 다가오면 가만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꺼병이도 만만찮습니다. 맛난 먹이를 포기할 수 없는지
잠시 피했다가도 금세 돌아옵니다. 멧비둘기 어린새는 둥지를 떠날 때
거의 어미 모습을 하지만 훗날 꺼병이가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장끼가 된다는 걸 멧비둘기는 알고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식물들이 다 자라 결실을 준비할 때 그제야 메밀을 파종합니다.
비가 오는 날을 택해 우거진 풀밭에 메밀씨앗을 뿌린 다음
예초기로 풀을 깎아 덮습니다. 풀들은 이미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여서
메밀이 자라는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메밀을 심고 수확은 하지 않습니다.
눈처럼 새하얀 꽃을 보는 것도 좋고 열매를 그냥 놓아두면
겨우내 새들의 양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멧비둘기는 먹어도 될 것과 먹어서는 안 될 것을 구분할 줄 압니다.
까치나 멧비둘기는 ‘엿보기쟁이’입니다. 사람이 나타나면 멀찌감치 보고 있다가
사람이 돌아가면 그 자리에 와 봅니다. 뭐 먹을 걸 두고 가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메밀씨를 뿌릴 때도 멧비둘기들이 엿보다가 우루루 몰려들어 메밀씨를 주워 먹습니다.
그러다가 나를 보면 서둘러 나무 위로 달아납니다. 놓아준 먹이를 먹을 때와는
다른 행동입니다. 이런 걸 보면 영리한 멧비둘기는 먹어도 될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걸 구분할 줄 아는 것입니다.
새들에게도 도덕심이 있는 모양입니다.  

해거리를 한 줄 알았던 벚나무는 까맣게 잘 읽은 버찌를 새와 다람쥐의
양식으로 내준 후 일찌감치 잎을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롱다롱 이슬처럼 열린
수많은 보리수 열매도 모두 새들의 차지였습니다. 나무는 내어주는 것으로
가을을 맞고 새는 먹음으로서 가을을 맞는 것입니다.    
나무 덕을 보는 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선한 나무 그늘에 앉아
손님과 차를 마시며 담소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니
‘성은이 망극한’ 일입니다. 그런데 무리지어 오는 사람들은 참 시끄럽습니다.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떠듭니다.
그럴 때마다 ‘도시에서 그만큼 떠들었으면 됐지 산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계절이 바뀌는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벌레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시라’고
‘강권’합니다. 처음에는 외부에서 소리가 들려오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내면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번다한 도회지의 삶에서는 들을 수 없는
신비로운 소리입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산천 경계 좋은 곳이나 명승고적을 찾느라 보잘 것 없는(?) ‘나의 비밀의 정원’에는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으니 더 자유로움을 만끽합니다. 거추장스러운(?) 승복도
벗어버리고 작업복 차림으로 지내도 뭐랄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때는
속옷만 입은 채 오가기도 합니다.  
옛날 선비들이나 수행자는 혼자 있을 때에도 의관을 갖춰 입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끔 ‘틀’에서 벗어나면 야인野人이 됩니다. 마음 같아서는 벌거벗고
풍욕도 하고 싶지만 아직은 도道가 출중하지 못해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천둥벌거숭이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한바탕 자전거를 타고 돌아와 원두막 밑 계곡에 내려가 멱을 감은 것입니다.
계곡물이 얼마나 차가운지 아이들과 누가 물속에 몸을 담그고 오래있나
내기도 했습니다. 땀에 젖고 물에 젖은 아이들 옷을 벗겨 빨아 널고
너나없이 벌거숭이가 된 채 앞마당을 오간 ‘행복한 사건’ 입니다.

멀리 마산에서도 아이들이 올라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숲이야기 들려주었습니다.
다양한 식물이 모여 숲을 이루는 것처럼 ‘나의 비밀의 정원’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풀인 것과 풀 아닌 것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원이든 개인소유의 화단이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구분 짓는 법부터 가르칩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식물 아니면 모두 ‘잡초’로 간주하고 뽑아버립니다.
그러나 아껴 기르는 것도 뽑히는 것도 ‘식물’ 일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분별한 것입니다. ‘나의 비밀의 정원’에는 웃자라서 세력이 너무 커진 녀석들만
가끔 골라내 서로 어우러지도록 균형을 맞춥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러운 정원이
된 것입니다. ‘자연’이란 말 그대로 자연스럽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잘 조성되었다는 공원이 과연 자연스럽던가요.
잘 가꾸었다는 정원은 또 어떻습니까. ‘생태’라고 이름 붙여진 공원마저
사람 위주로 꾸며졌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뭐든 사람 입장에서만 생각합니다.  

저녁에는 아이들과 앞마당 평상에 가만히 앉아 풀벌레 우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다가 땅속에 살던 매미 애벌레가 우화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는 얘기를 하는데 뭔가 내 팔 위를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건 바로 매미의 애벌레였는데 무슨 까닭에서인지 녀석은
지각생이 된 것입니다.
아이들이 탄성을 지르고 놀라워했습니다. 조심스럽게 애벌레를 나무 둥치에
올려놓았습니다. 녀석은 맘에 드는 자리를 잡고 죽은 듯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화를 준비하려는 것입니다.    

밤 9시에 우화를 시작한 녀석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이들은 경이로운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생명이
얼마나 어렵게 태어나고 소중한 것인지를 체험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축제도 참 다양합니다.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생태체험이라는 미명으로 바닷가에서 강에서 뭐든 잡고 먹는 축제도 그 중 하나입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순리와 자연의 경이로움을 가르치는 것보다 뭐든 잡아먹는
대상으로 가르치는 어른들이 같은 어른으로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잡아먹는 대상으로 알고 자란 아이와 그런 생명들이
우리와 함께 공존해야할 대상으로 알고 성장한 아이의 미래가 같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행해야 한다, 는
뜻이기도 합니다. 환경을 생각한다면 내가 먼저 자동차 운행도 줄이고
전기 사용량도 줄이고 물 사용량도 줄이고 육류섭취량도 줄이고 꼭 필요한 것만
소유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합니다. 본질을 놓쳐버리는 것입니다.
산에 오는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부처님이 어떻고 불교가 어떻고,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꽃 한 송이가 어떻게 피어나고 새 한 마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할 뿐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모두 예수님 부처님
말씀입니다. 결국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 바위 하나가 종교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자연의 뜻이며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인지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해바라기도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이 가을, 나는 무슨 열매를 맺고 수확할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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