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08-23 15:11:23, Hit : 4462, Vote :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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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꽃으로 보고 멧돼지는 먹이로 보고,



나는 꽃으로 보고 멧돼지는 먹이로 보고,

폭염주의보가 내리고 어디서는 몇 사람이나 더위를 먹고 목숨을
잃었다고 하고 또 어디서는 물놀이를 하던 사람이 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귀뚜라미는 벌써부터 울기 시작했다.
귀뚜라미가 울면 입추가 멀지 않았다는 뜻이고
입추가 지나면서 온갖 풀벌레도 ‘갑자기’ 요란해진다.
낮에는 앞마당에서 나온 매미가 시원시원 울다가 그치기를 반복해
무더위를 식혀준다. 도회지의 탁한 공기 속에서 ‘지루하게’ 우는 말매미와는
격이 다르다. 밤이면 또 어떤가. 방울벌레며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선선한
바람을 몰고 온다.
도회지에서는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열대야 현상으로 밤잠을 설친다고
비명을 지르지만 숲속 밤기온은 섭씨 21도로 쾌적하다.
나무와 풀벌레 덕분이다.

조용하기로는 잠자리를 따를 게 없다.
나비보다도 더 가뿐하게 날아온 녀석은 비비추 꽃 위에서 하루를 보낸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여름을 꽃 위에 좌선한 채 보낸다.
근처 사격장에서 연신 포를 쏘아대도 천하태평이다.
잠자리 수행자가 하는 일이란 이따금 앞마당을 한 바퀴 빠른 속도로 날며
기지개를 켜는 것뿐이다.  
글이 읽고 싶었는지 밤마다 창문 방충망에 매달려 부스럭거리다가
아침이면 기별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낮 동안 머물던 꽃으로 돌아가 역시 그 자리에 죽은 듯 앉아있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중일 것이다.
잠자리는 수다스런 여치나 방울벌레나 귀뚜라미와 다른 족속이 틀림없다.
평생 글만 읽던 선비의 영혼일지도 모른다.

잠자리의 입장에서 보면 매미나 귀뚜라미는 참 시끄러운 녀석들이다.
인간은 또 어떤가. 매미나 귀뚜라미 보다 몇 배 더 시끄러운 존재다.
절간은 절간대로 소원하는 게 많아 기도소리로 시끄럽고 세상은 세상대로
‘먹고 사느라’ 시끄럽다.
어떤 나으리께서 무슨 말 한 마디를 잘못했다고 시끄럽고,
강을 어떻게 한다고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시끄럽고,
철조망 저쪽으로 건너가 이러쿵저러쿵 한 누구 때문에 또 시끄럽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인간들이 먹고 살기 위해 시끄럽다는 걸 잠자리는 어떻게 이해할까,  
폭풍우가 몰아쳐도 잠자리는 움직일 줄 모른다.

곤줄박이와 다람쥐는 학습능력이 뛰어나다.
먹이통에 먹이가 바닥에 깔려있으면 먹이가 구멍으로 나올 때까지
먹이통 바닥을 쪼아대는 건 곤줄박이의 지혜다.
먹이통을 쪼아댈 부리가 없는 다람쥐는 아예 먹이통 뚜껑을 열고 들어가
먹이를 챙긴다. 양볼 가득 먹이를 챙기기 시작하면 먹이통은 잠깐 사이에
바닥이 난다. 뚜껑을 열지 못하게 철사로 고정해 놓았더니
뚜껑을 열지 못한 다람쥐가 일갈한다.
--치사하다 치사해!!

그러나 치사한 게 어디 네가 먹는 낱알 몇 개뿐이랴 ,
인간들 먹고 사는데도 치사하지 않은 적이 없단다.
심지어 산 속 중 사는 일에도 치사함이 더러 드러나게 마련이니
너무 속상해 할 일은 아니니라.

보기 좋게 핀 참나리꽃이 일거에 무너졌다.
영리한 멧돼지는 비가 내리는 날을 골라 참나리 구근을 캐 먹는다.
땅 속 깊이 숨겨진 참나리 구근을 캐기 위해서는 빗물이 스며들어 땅이
축축해졌을 때가 적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거센 태풍에도 끄떡없던 키 커다란 참나리가 멧돼지의 행패로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내가 꽃으로 보기 좋았던 참나리는 멧돼지에게는 먹이가 될 뿐이다.

세상을 보는 눈은 이렇게 다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우리에게는 이렇게 보이는데 너희에게는 왜 그렇게 보이느냐,
그렇게 보고 느끼는 너희가 잘못 아니냐,
세상에 ‘절대적’ 인 것은 없다.
이렇게 보면 이렇게 보이고
저렇게 보면 저렇게 보일 뿐이다.

--틀렸다, 다 틀렸다...
소풍 마치고 돌아간 천상병 시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읽던 책을 놓아두고 깜빡 졸았더니
역할을 다한 잎사귀가 하나 둘 내려와 앉았다.
잎을 버린 나무는 아름답다.
때가 되면 버릴 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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