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10-02 06:07:03, Hit : 4229, Vote : 1163
 DSC_1209_2.jpg (68.6 KB), Download : 75
 기러기 돌아오고 가을은 깊어가고,



기러기 돌아오고 가을은 깊어가고,

간헐적으로 기러기 우는 소리가 들려 잘 못 들었나 싶었는데 엊그제는 까마득 높은
하늘로 대열을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가 목격되었다. 재두루미도 벌써 10여 개체가
관찰되었다고 한다. 예년보다 도래 날짜가 열흘은 앞섰다.
철원평야에 벼베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새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는데
벼 벨 때 풍기는 구수한 냄새가 수천 km 떨어진 곳에 있는 새들의 후각을 자극하여
새들의 이동을 부추겼을 것이다. 어제 두루미 워크숍 준비 간담회 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모두 웃는다. 새들이 일찌감치 이동을 시작한 것은 번식지와 중간기착지의 기상과 먹이의
상황이 주요 원인이라는 ‘박사님들의 ‘연구결과’ 와 달리 새들이 벼 베는 냄새를 맡고
온다는 내 얘기는 상당히 비과학적이라는 뜻이다.
학자들에 의하면 새들의 후각이 형편없다고 하는데 묵은 먹이를 냄새로 구분하여
가려먹을 줄 아는 새들 편에서 보면 학자들의 생각이 더 형편없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새들은 벼베는 날짜에 맞춰 어김없이 돌아온다.  

한가위가 지나고부터 하늘은 연일 높고 푸르다.
기온도 점점 떨어져 오늘 새벽은 수은주가 빙점 가까이 떨어진 영상 3도였다.
겨울이 다가오면 ‘나의 비밀의 정원’ 에 돌아오는 겨울새들과 들판에 나가 두루미 볼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 마련인데 올해는 영 갑갑하다. 예년 같으면 겨울을 ‘보낸다’고 했지만
이번 겨울은 어떻게 ‘견딜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물은 어떻게 길어다 먹을 것이며 빨래는 어떻게 할 것이며 가스며 연탄은 어떻게
져나를 것이며 난방은 어떻게 할 것이며 추운데 끼니는 어떻게 지어 먹을 것이며 등등
전혀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던 사소할 것 같은 일들이 감내하기 어려운 ‘거사’ 로
다가오는 것이다.  
물이며 가스며 연탄은 운동이라 여기고 져 나르면 될 것이고 난방은 전기장판 하나면
될 것이고 끼니는 죽지 않을 만큼 먹으면 될 터인데 벌써부터 걱정이 되는 건
아마도 나도 늙는다는, 늙었다는 조짐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며 노는 나를 보고
‘옛날 시골에 뭐든 잘했던 대학생 같다’ 며 ‘아직은 젊다’고 위로한다. 그 사람 기억에
그런 청년이 있었던 모양이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만은 젊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나라고 다를 리 없다. 마음이 젊으면 몸도 젊어지게
마련이어서 물지게 지고 연탄 지게 지는 일도 ‘별 일’은 아니다. 내복 따뜻하게 챙겨 입고
방한복으로 든든하게 무장하면 기나 긴 엄동설한이 두려울 것도 없으렷다.

수은주가 뚝 떨어진 오늘 새벽에는 그나마 울던 귀뚜라미마저도 울음을 뚝 그쳤다.
마치 한겨울에 들어선 것처럼 적막하다. 그 많던 풀벌레는 다 어디로 간 걸까.
적막을 깨는 건 제 역할을 다한 나뭇잎이 지는 소리와 산짐승 오가는 소리 뿐이다.
벚나무가 먼저 잎을 버리기 시작했고 뒤이어 느티나무, 아카시아, 산복숭, 붉나무 순으로
나목裸木이 된다. 눈을 쓸기 위해 대빗자루를 사다 놓았지만 나뭇잎은 쓸지 않았다.
떨어진 나뭇잎까지 쓸어버린다면 을씨년스러움이 더하기 때문이다.
나뭇잎을 쓰는 건 바람의 몫이다. 겨울바람이 나뭇잎을 몰고 다니는 소리도
들을만하다.
먹이를 구하러 마을 근처에 내려갔던 산짐승이 헉헉거리며 창문 밑으로 뛰어간다.
맛난 먹이에 정신이 팔렸었는지 서둘러 산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을 것이다.
산짐승이 산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새벽이어서 자명종이 아니더라도 잠을 깰 만큼
추위는 적막함을 대동한다.
겨울은 적막해서 좋다. 책 읽는 계절이 가을이라지만 아름다운 가을에 책을 끼고
앉았다는 건 가을에 대한 실례다. 가을은 책을 덮어두고 나가 가을을 만끽하는
계절이다. 적막한 겨울이야말로 책을 가까이 하는 계절이다.
책장 넘기는 소리는 적막함과 잘 어울리지 않는가.

넓어진 창문 때문에 겨울에 추워서 어떻게 하느냐 이구동성이다.
모르는 소리,
나뭇잎이 떨어지거나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사박사박 눈 내리는 경치,
토박이 새와 겨울새와 나그네새가 다투어 먹이를 먹는 아름다운 모습은
추위를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책 쓰기도 적막한 겨울에는 마무리를 할 것이고
미뤄두었거나 벼르던 책을 구해 읽는 것도 적막한 겨울에 할 일이다.

연탄 주문해야겠다.





1161   먹어도 틀리고 안 먹어도 틀리고,  도연 2010/11/06 5145 1079
1160   무엇을 먹고 입을까,  도연 2010/11/06 5030 1102
1159   사진은 생각을 영상으로 말하는 작업,  도연 2010/11/02 5152 981
1158   수은주가 뚝 떨어졌다.  도연 2010/10/27 4770 1087
1157   김 감독, Coffee Barista 되다,  도연 2010/10/26 5241 1103
1156   천수만에 다녀오다.  도연 2010/10/23 5119 1266
1155   들국화 피고 새들은 돌아오고,  도연 2010/10/19 4993 1003
1154   새둥지 속에서 번식한 다람쥐.  도연 2010/10/16 5227 1159
1153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자 버리는 계절이다.  도연 2010/10/15 4261 1032
1152   스님 할아버지,  도연 2010/10/12 5027 1040
1151   소리꾼 범진 스님,  도연 2010/10/12 5284 1099
1150   DMZ 라이딩,  도연 2010/10/12 5771 1480
1149   집 나간 벌들이 돌아왔다,  도연 2010/10/12 4530 1130
1148   철원 태봉제, 실감고 연 만들고,  도연 2010/10/12 4750 1061
1147   아이들과 새를 보러 가다.  도연 2010/10/10 4397 1061
  기러기 돌아오고 가을은 깊어가고,  도연 2010/10/02 4229 1163
1145   행복한 한가위 보내시길.  도연 2010/09/21 5317 1405
1144   동고비 한 마리도 열반에 들었다.  도연 2010/09/16 4909 1081
1143   나를 마흔 살로 아는 아이들,  도연 2010/09/08 5212 1180
1142   속가俗家 맏형님을 가슴에 묻고 돌아오다.  도연 2010/09/06 6560 1287
1141   금세 겨울이 올 것이다,  도연 2010/08/25 4838 1113
1140   나는 꽃으로 보고 멧돼지는 먹이로 보고,  도연 2010/08/23 4471 1058
1139   산사랑 원고  도연 2010/08/12 5139 1452
1138   새들은 날마다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데,  도연 2010/07/18 6017 1462
1137   잠시라도 방심하면,  도연 2010/07/14 4942 1115
1136   이열치열以熱治熱 땀 흘리고 충전하기,  도연 2010/07/11 5470 1582
1135   너나 잘하시게!  도연 2010/07/09 4853 1137
1134   축구도 그만하면 됐다,  도연 2010/06/28 5107 1110
1133   10 년 후 이 아이들은,  도연 2010/06/25 5146 1174
1132   돌아오고 떠나고,  도연 2010/06/23 4435 1020

[1][2][3][4][5][6][7][8][9][10][11][12][13][14][15][16][17][18][19] 20 ..[58] [다음 20개]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