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10-15 11:45:41, Hit : 4205, Vote :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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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자 버리는 계절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자 버리는 계절이다.

식물들의 겨울채비가 나날이 눈에 띄게 변한다.
단풍이 들자마자 뭐가 바쁜지 서둘러 잎을 버리는 벚나무도 있고
풍요로웠던 여름이 못내 아쉬워 잎을 버리지 못하고
겨울 문턱까지 굳세게 버티는 참나무도 있다.
제 역할을 다한 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나면 나목裸木도 아름답지만
바닥에 무수히 쌓인 가랑잎도 아름답다.

들국화와 구절초처럼 제철을 만난 식물도 있다.
특히 진노랑 산국과 붉은 꽃향유는 '나의 비밀의 정원'에서 벌들에게 중요한
겨울철 식량을 제공한다. 꽃향유는 배초향과 비슷하여 혼동하기 쉽지만
꽃향유는 꽃잎이 한쪽방향으로 나기 때문에 금방 구분된다. 옹달샘 내려가는
양지쪽에 무리지어 피는 꽃향유에 잔칫집처럼 벌들이 모여 웅성거린다.
양봉 한봉 뒤섞여 부지런히 꿀을 빠는데 다른 식물들이 누렇게 변하는 계절에
배초향은 마치 소나무처럼 독야청청獨也靑靑 의젓하다.
꿀을 가진 자의 넉넉한 마음이다.  
  
나무마다 염색기술도 독특하고 다양하다. 식물들의 염색기술에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는 건 건조한 생각이다. 봄 다르고 여름 다르고 가을 다르다.
식물들은 대체 어디서 갖가지 아름다운 염료를 뽑아내는 것일까.
비비추는 씨앗농사가 풍년이다. 씨앗이 제자리에 떨어지면 밀도가
높아지므로 줄기를 흔들어 씨앗이 멀리 퍼지도록 거들었다. 드나드는 손님이
나팔꽃 씨앗을 파종했는데 얼마나 세력이 왕성한지 일미터쯤 되는 소나무
한 그루는 누렇게 고사하고 말았다. 수년 동안 키운 나무가 한갓 일년생
나팔꽃에게 진 것이다. 일년생 나팔꽃은 어린 소나무를 이겼다고 의기양양
했겠지만 훗날 소나무가 거목이 되어 수백 년을 산다는 걸 알 리가 없겠다.  

청아한 종소리가 들릴 것처럼 예쁜 종모양의 꽃을 주렁주렁 매달았던
더덕도 수확을 마쳤다. 늦게 파종한 메밀 농사는 본전은 한 것 같다.
메밀은 겨우내 새들에게 귀한 양식이 될 것이다.  
벌개미취는 다른 녀석들과 섞여 저희끼리 자랄 때보다 세력이
많이 약해졌고 공손해졌다. 자기의 주장을 함께 사는 식물들과 공평하게
나누며 살았기 때문이다.  
봄 여름 충실히 찬거리를 제공했던 취나물은 사람 키 높이로 자라
별모양의 흰색 꽃을 피움으로서 존재를 확실히 드러냈다. 그게 취나물꽃이라는
걸 처음 인지한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듣기에 충분하다.
더덕이나 취나물은 그 뿌리나 잎을 따 먹는 것보다 꽃을 눈으로 보는 게
더 즐겁다. 먹는 즐거움은 잠시 뿐이지만 바라보는 즐거움은 훨씬 길다.

오늘 아침에는 주전자를 들고 내려가 물을 길어다 차를 달였다.
정갈한 가을에는 감각도 예민해져 모터와 pvc 배관을 거쳐 끌어올려진
물에서는 쇳물 냄새와 고인물 냄새가 감지된다. 샘물은 늘 흐르기에
낙엽송 나뭇잎이 떠다니기는 해도 차향이 한 결 맑다.  
    
나무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철 아름답지 않은 날이 없네.
나무를 닮고 싶으니 나무가 곧 부처다.  
나무가 잎을 버리듯 나도 안팎으로, 마음 안 마음 밖 가릴 것 없이
청소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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