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10-23 10:10:46, Hit : 5119, Vote : 1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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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수만에 다녀오다.



천수만에 다녀오다.

외출 한 번 하는 일이 점점 ‘행사’가 된다.
오가는 손님도 맞아야 하고 미뤘던 책도 읽어야 하고 녹스는 붓끝도
살려내야 하고 나무와 풀들이 시시각각 바뀌는 사소한 풍경을 놓치는 것도 아쉽고
새들하고도 놀아 줘야 하고 가만히 있는 것도 좋기도 하고, 뭐 이런저런 것들이
모두 외출을 쉽게 하지 못하는 핑계다.

서 시인이 앞마당에 원두막 다실을 뚝딱뚝딱 만들었다기에 그럼 다기는
내가 준비하겠소 하여 한 벌 챙기고 향기 좋은 차도 한 봉지 싸 보냈다.
누구에게나 침체기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방향을 잃기도 하고
뭘 어떻게 할 줄 몰라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한동안 소주 마시는 일이 낙이었던
그가 이 가을에는 차향과 더불어 좋은 시상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몇 군데 들를 데도 있고 하여 길을 나섰다.
볼일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해미천을 따라 내려갔다. 추수가 한창인 벌판에
기러기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빈 들판을 수십만 마리의 기러기가 채우는 중이다.
한 해를 걸렀나 두 해를 걸렀나, 따뜻한 겨울 햇살을 맞으며 강둑에 비스듬히
누워 새들을 바라보며 졸던 때가 옛날 같다.
눈이 많이 내린 해에는 눈 위에 텐트를 치고 새벽을 맞았다.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노천탕에서 신선들이 목욕을 하듯 고니며 큰기러기며
흰뺨검둥오리, 논병아리, 가창오리, 청둥오리 등이 기지개를 켜던 아름다운 광경이
눈에 어른거린다.  
그러나 더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그 자리에
높은 시멘트 다리가 새로 놓였고 차 한 대 다니던 농로도 넓게 확장되었으며
포장까지 한단다. 사람들이야 씽씽 오가기 좋겠지만 한겨울에 새들은 갈 곳이
없다. 해미천에서 얼음이 얼지 않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트럭이 따라오면서 자꾸 빵빵 거린다. 한쪽으로 비켜섰는데도
또 경적을 울린다. 그쪽으로 먼지가 날아가니 반대쪽으로 건너가라는 손짓이다.
마음씀씀이가 고맙다. 그래서 그랬나, 커다란 트럭이 굉음을 내며 지나가도
새들은 태연하다. 그에 대해 새들은 벌써 알고 있었지만 나만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서로 배려하고 이해했으면 새들이 쉬는 유일한 곳에 높은 다리를 놓고
길을 넓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논길을 빠른 속도로 오가는 시간 절약의 잇속보다
저 무수한 생명들을 바라보며 삶을 위로 받고 치유 받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으리라는 걸 저들은 굳이 외면한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전우익 선생의 얇디 얇은 책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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