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03-15 21:41:35, Hit : 4901, Vote : 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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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편배달부 H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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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배달부 H 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우편물을 가져오는 우편배달부 H 씨,
비바람 몰아치는 오늘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우편물 하나를 달랑 들고 왔다.
나한테 오는 우편물은 중요한 게 없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만 와도 된다고
당부했지만 말 안 듣는다.
H 씨가 내가 법당에서 점심공양 하는 걸 보고는 같이 먹어도 되느냐고 묻는다.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는 H 씨는 우편물이 웬만큼 배달됐다 싶으면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우비에 장화에 줄줄 흐르는 빗물을 대충 털어내고 도시락을 펴는데
반찬이 김치와 줄줄이햄 몇 개가 전부다. 놀고먹는 나야 김치 한 가지만
놓고 먹어도 황송하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하루 종일 쏘다니는 사람이 먹는 게
너무 부실하다. 그러나 어쩌랴, 나라고 딱히 내놓을 게 없는 터여서
계란 두 개를 잘 부쳐 밥에 올려주었다.

그런데 줄줄이햄을 하나 집어먹어보니 차갑다. 집에서 요리도 안한 걸 그냥 싸준
모양이다. 내가 전자렌지에 뎁혀 먹으면 맛있다고 했더니 전자렌지를 아직
장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H 씨 아내는 중국인이다. H 씨가 중국에 있는 한국 식료품 회사에서 일할 때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예쁜 딸도 있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내가 안 쓰는 전자렌지가 하나 있는데 보내드릴까
물어 보랬더니 좋다고 해서 퇴근 후 가지러 오라고 일렀다.  

얼마 쓰지 않아 그런대로 쓸만했지만 기왕이면 새 것으로 하나 선물해줄까 하다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포기했다. 창고에서 꺼내와 깨끗이 닦으니 번쩍번쩍
새거나 다름없다. 안 쓰는 브라운 전기포트가 있어 전자렌지 안에 신문지로 잘 싼 후
넣어주었고 고무장갑도 몇 켤레 넣었다. 비가 올 때는 H 씨가 고무장갑을
끼고 오토바이를 타는데 오늘도 부엌에서 아내가 쓰는 걸 끼고 왔다고 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 월급 받는 사람은 학교 선생님과 경찰관, 면서기, 우체부가 전부로
알고 자랐기 때문에 우체부도 멋진 직업인 줄 알았더니 요즘은 비정규직도 있다네.
비정규직 H 씨가 한 달 일해 받는 돈은 140만 원. 이 월급으로 살림 꾸려나가고
아이 교육까지 시키려면 결코 녹녹하지 않겠다. 거기다가 전셋집이 있는 서울에서
일터까지 타고 다니는 마티즈 기름값도 지출해야 한다.

외출할 일이 있어 딸애 용돈이나 주라고 봉투에 써서 전자렌지 안에 넣고
나갔다 왔더니 다녀가면서 감사하다는 쪽지를 남겼다. 인구가 줄고 우편물도 줄면
비정규직 우편배달부도 ‘짤린다’고 한다. 내 나이에 인구 늘릴 ‘비법’ 은 없겠고
앞으로는 H 씨를 위해서라도 e-mail 대신 편지를 써서 부쳐야할 것 같다.  

사진 / 아랫녘 바닷가 마을 어떤 집 대문에 매달린 편지함.
반송편지 담는 통까지 걸어둔 주인의 마음이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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