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05-05 09:37:50, Hit : 4708, Vote :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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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마다 눈 맞출 녀석이 사라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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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눈 맞출 녀석이 사라졌네,

열흘 전 토끼 한 쌍을 입양해 와 슬레이트로 가로세로 엮어 임시 울타리를 만들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도 만들어주었다. 토끼는 못 먹는 게 없다. 과일 껍질이나
먹고 남은 채소류, 새들이 먹는 곡물, 주변에 널린 식물 등등 거의 모든 게
토끼의 양식이다. 수컷은 잿빛이고 암컷은 흰 바탕에 점박이 옷을 입을 입었다.
수컷은 먹이를 내밀면 다가와 잘 받아먹지만 암컷은 눈만 마주치면 쏜살같이
집으로 숨기 바쁜 수줍음 많은 녀석이다.

안개 자욱한 오늘 아침 여섯 시 쯤, 아침 공양 준비를 하기 위해 나물을 뜯는데
토끼우리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끔 두 마리가 장난을 치곤
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수상하다.
까치가 토끼우리 위 나뭇가지에 앉아 요란하게 짖어대기까지 해 뭔가가 출몰한 게
확실하다. 나물을 뜯다 말고 부리나케 뛰었다.
아니나 다를까, 점박이 암컷이 마당 한 가운데 쓰러져있다. 점박이는 정확하게
턱 밑 목을 물렸고 이미 죽어있었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 밤중도 아니고 아침에
나타나 이 지경을 만든 걸까.  
저만큼 안개 자욱한 숲에 누군가 서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숲에 살면서 별로
무서운 걸 몰랐는데 순간적으로 소름이 확 돋는다.  

안개 때문에 그 짐승은 쌍안경으로 봐도 어떤 녀석인지 잘 구분이 안 된다.
놈은 토끼우리에서 점박이를 물고 가다가 갑작스런 인간의 출현에 먹이를 내려놓고
멀찌감치 떨어져 동태를 살피는 중이었다.    
죽은 점박이를 마당에 놓아두고 창문 틈으로 어떤 놈인지 먹이를 가지러 올 때까지
기다렸다. 놈은 삵만큼이나 덩치가 큰 고양이였다. 덩치가 저렇게 크니 점박이를
가뿐히 물고 뛰어나왔을 테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애지중지 키우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고양이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나의 비밀의 정원’에 출몰하는 고양이들은 난폭하기 짝이 없다.
살금살금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다니다가 새를 공격하거나 살림이랄 것도 없는
부엌살림을 온통 뒤집어놓고 달아나기도 한다. 얌전하다가도 움직이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해 공격적으로 돌변하는 걸 보면 반드시 배가 고파서 그런 것만은 아닌 거 같다.
고양이는 쥐나 작은 새를 잡아서 ‘갖고 놀다가’ 죽이기도 하는데 아무리 본능이라지만
좋게 봐 줄 수가 없다.

온 세상의 생물이 먹이사슬에 의해 살아가는 걸 ‘자연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런 ‘잔인한 법칙’을 ‘채택’한 조물주가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특히 맹수나 맹금류, 뱀 같은 녀석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에 토끼만큼 양순한 동물도 있을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보더라도
풀을 먹는 동물은 대개 양순하고 육식을 하는 동물은 포악하고 공격적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여서 특히 수행자가 동물성 음식을 피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점박이를 묻어주고 잿빛 수컷은 우리 밖에 놓아주었다. 우리 안에 갇혀 있다가
또 다른 녀석에게 잡혀 먹히기보다는 숨을 곳이 많은 우리 밖에서 천적과 당당히
맞서는 게 녀석에게 유리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내친 김에 ‘고양이잡이틀’도 손 보아두었다. 못된 놈이 잡히면 죄를 물어
며칠 구금도 시키고 단단히 훈육될 것이다.
까치는 먹이만 얻어 먹는 줄만 알았더니 고양이의 출몰도 알리고
고양이를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굴며 '밥값'을 했다.

그나저나 아침마다 눈 맞출 녀석이 사라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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