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10-06-04 08:32:37, Hit : 4122, Vote :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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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들이 숲으로 돌아갔다,



새들이 숲으로 돌아갔다.

어린새들이 둥지를 떠날 때가 되면 목소리가 커진다.
이제 우리도 다 컸으니 어서 숲으로 데려가라고 어미에게 보채는 소리다.
어린새들이 이구동성 외치는 소리는 수십 미터 밖에서도 들을 수 있어
매나 까치, 들고양이 같은 녀석들이 둥지 주변으로 모여든다. 어미를 따라
둥지를 떠나는 어린새들을 낚아채기 위해서인데 첫째와 막내가 주로 이들에게 희생된다.
힘차게 둥지를 떠난 첫째는 호시탐탐 기대리던 천적에게 먼저 희생당하고
막내는 비행이 서툴러 희생당한다. 어미들은 초긴장 상태가 되어 주변을 경계하고
안전하게 어린새들을 데리고 나간다고는 하지만 한두 마리는 희생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린새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나는 외출금지령이 떨어진다.
어린새들이 안전하게 숲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보초를 서야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에 까치가 요란하게 울어 뭔가가 둥지를 습격하고 있구나 싶어 쌍안경으로
들고 튀어나갔다. 예측한 대로 청설모 한 마리가 벌써 새끼 한 마리를 입에 물고
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그새 잊었는지 아니면 엉뚱한 곳에 복수라도 할 참인지
까치들이 법당 앞에 진을 치고 있다. 법당 안 인공둥지의 어린새들이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어린새들의 목소리가 커져 오늘 내일
둥지를 떠나겠구나 싶었더니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둥지에서 나온 녀석들이
법당 안 여기저기 흩어져 돌아다니고 있다.
어미들은 먹이를 물고 드나드는 구멍으로 어린새들을 유인해보지만
힘이 부치는 어린새들은 영 서툴기만 하다. 어미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저러다가
어린새들이 힘이 빠지면 어미를 따라가는 게 불가능하다 싶어 한 마리씩 붙잡아
어미에게 데리고 가도록 했다. 알 속에서부터 염불소리와 목탁소리에 익숙해진 녀석들은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순순히 내 손에 올라앉는다. 어미는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어서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어린새들이 한 마리씩 내 손을 떠나 어미를 따라나섰다. 까치들은 내가 서 있는데도
어린새 뒤를 쫓는다. 이럴 때는 나의 자비심도 한계에 이르러 돌멩이를 집어들고
까치를 쫓아낼 수밖에 없다. 법당에서 부화한 곤줄박이는 모두 여섯 마리. 그 중
다섯 마리는 어미를 따라갔지만 한 마리가 길을 잃고 마루 밑으로 들어갔다.
한 마리가 부족하다는 걸 안 어미는 다시 법당으로 들어와 새끼를 불러댄다.
마지막 녀석까지 무사히 데리고 나간 어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린새들 보채는 소리가 가득했던 법당이 다시 조용해졌다. 저녁이 되자 새들이
앞마당으로 다시 모여들었다. 숲에서 밤을 보내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새들도 이유식을 한다. 이유식으로는 땅콩보다는 잣을 선호해 어미는 잣을 잘근잘근
씹어 부리 가득히 물고 어린새에게 먹인다. 잣은 창문에 매달린 먹이통에 놓아두는데
어미를 따라온 어린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먹이를 받아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작은 새들이 내게 행복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오후에 손님들과 중리계곡 산책에 나섰다.
사람들은 연신 담배를 피워 물거나 무슨 할 얘기가 그리도 많은지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을 서로 떼어놓고 저만큼 떨어져 걷게 했다. 가슴을 펴고 심호흡을 할 것이며
눈은 똑바로 앞을 보고 숲 속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명령’ 했다.
숲에 오면 그래야 한다. 그래야 내가 숲에 온전히 스며들고 또 숲이 내게 온전히 스며
드는 것이다.  

새들이 숲으로 돌아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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