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새처럼 살고 싶다 / 도연 度淵



  도연(2003-10-18 13:00:01, Hit : 5891, Vote : 1558
 산에 사는 이야기 2


@  하이타이 가루비누

어머니는 언제나 '가루비누'라고 불렀다.
내 일본 친구는 해태와 하이타이를 여태 구분 못한다. ^^

여름 얇은 이불을 세탁하려니 빨래비누로는 어림도 없는 거 같아
농협 매장에 가 '가루비누' 제일 작은 걸로 한 봉지 샀다.
가루비누를 풀어 한 이틀 담가놓았더니 놀랍게도 찌든 때까지
싹싹 빠지거나, 심지어는 비벼 빨지 않고 가만 놔두어도 때가 빠졌다.
원색이 그대로 살아나는 그 경이로움에 빨래하는 재미(?)가 배가 되었는데,
문제는 거품을 헹구려니 길어다 쓰는 아까운 물을 엄청나게 잡아먹는다는
거다.

산에 온 사람에게 '짤순이 하나 있어야겠다' 했더니
'짤순이 놓으려면 세탁기 놓지' 한다.  

'아이고 이러다가 마을에 내려가 살지 '싶어 이내 수동식 세탁기(빨래판)로
만족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는다.
콧노래 흥흥거리며 빨래 비비고 계곡에 갖고 내려가 휭휭 휑구는
재미도 쏠쏠한 공부이므로.
가끔은 고라니 녀석도 내려와 물끄러미 바라본다네...

@  잠자리에 들려는데 건너편 산에서 들려오는 노루울음소리에
신경이 곤두선다. 노루 울음소리가 평소와 달리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건너 마을 누군가가 해마다 올무를 놓는다는 소문을 들은 바 있어
아무래도 덫에 걸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듯 싶다.
아랫마을 곳곳의 개들도 요란스럽게 짖어댄다.

한탄강으로 연결되는 큰 냇물가 모래밭에는 노루며 고라니나 산양의 발자국이
총총 찍혀있다. 내가 머무는 지장산(877 미터)에서 앞산으로 가려면 냇물을 지나야
하고, 놈들은 내를 건너다말고 모래밭에서 한바탕 장난질을 쳤는지 흔적이
어지럽다. 발자국만 보고서도 놈들이 개구지게 뛰어노는 모습이 훤히 떠오른다.

수요가 먼저인지 아니면 공급이 먼저인지,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가지고는
성이 차지 않아 산짐승까지 잡아먹기에 이르르니,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뭐 이런 얘기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물리도록 듣는 거여서 더는 말하기
조차 신물이 난다.

하여튼,
올 겨울에도 산중에 사는 친구들의 안위가 염려스러운데
무슨 뾰족한 수 없나 모르겠다.  

@  산행이 적적해 멍멍이라도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 싶어
수소문 했지만 맘에 드는 놈이 없다. 너무 크지 않고 적당한 크기로
추위에 잘 견디는 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는 건, 산중에 짐승들, 고라니나 노루 또는 토끼며
오소리, 다람쥐, 너구리 등을 위협할 염려가 있어서이고,
한겨울 수은주가 영하 25도 이하로 떨어지는 곳이어서 추위를 잘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방에서 끌어안고 지낼 수는 없으므로...)

어제밤에는 멍멍이 대신 고양이 한 마리가 창문밖에서 애처럽게 운다.
울음소리로 보아 새끼가 틀림없는데 배가 고픈 건지 아니면 추워서 그런 건지,
털 달린 짐승이 아무리 산중 가을이라도 추운 건 아닐 테고,
아무래도 배가 고픈 모양이다 싶어 나도 아끼고 안 먹는 참치 통조림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산중에 웬 고양이람, 하다가 멍멍이 대신 고양이가 온 건 아닌가...

그렇다고 고양이를 데리고 어찌 산엘 다니남.

@  초저녁 잠을 자서 그런가, 독서를 마치고 새벽 한 시가 다가오는데도
영 다시 잠들기 어렵다. 포도주 얻어온 게 생각나 한 잔 하면 잠들려나
연거푸 두 잔을 마셨더니 너무 쓰다. 가만있자, 달큰한 포도주가 어디 있지 아마,
찾다가 옳거니 이거다 싶어 들여다보니 포도주가 아니라 참기름이다.
(하필이면 참기름이 '콩코드 와인' 이라는 포도주병에 담겨있었다.)
향기로운 참기름 냄새를 맡고 보니 포도주 마실 생각은 어디로 가고
갑자기 따끈한 밥에 참기름 비빔밥이 '홀로그래피'로 떠오른다.
그래서 야밤에 부산을 떨다가 결국 밥을 지어놓긴 했는데
변덕도 죽끓듯 한다더니 그제서야 잠이 마구 쏟아진다.
포도주 기운이 잠을 몰고 온 것이다.

그래서 뭐 아침 여섯 시에 참기름 냄새 퐁퐁 풍기며 산중 비빔밥을
즐겼다는 말씀 ^^



@  엊그제 마을 책방에 들렀다가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 1, 2 권을 샀다.
이틀 내쳐 읽다가 끄트머리쯤에 밑줄 글일이 생겼다.

--우리를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대도, 그 사랑은 영원히 우리를 보호한단다.

해리 포터가 위기에 빠졌을 때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그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마법학교 교장 선생님이 포터에게 한 말이다.

그래서 어른들도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나보다.
(여러분께도 일독을 권한다.)

@  누님은 올해로 일흔 넷이 된다.
(누님은 맏이고 나는 끝동이로 스믈 셋이나 차이가 난다 ^^)
달포 전 돌아가신 매부는 일흔 일곱. 아버님 산소가 근처에 있어
누님에게 갔다가 산소에 가고, 산소에 갔다가 누님에게 가고
그러는데, 누님은 나 때문에 '특식'을 장만하기에 부산스럽다.
특식이란 다름 아닌 소금간으로만 끓인 토란국, 고춧가루 마늘 등
자극성 양념이 안 들어간 음식 뭐 이런 류다. 완존 깊은 산 속 절에서나
먹는 음식으로 철두철미하다.

--아이고, 요즘 깊은 산 속에서도 이렇게는 안 먹어요.
해도
'공부하는 사람은 그래야 한다, 기왕 공부하려면 제대로 해서
큰 사람 돼야한다' 고 신신당부다. (큰일이다...^^)
막내동생의 공부가 자칫 부끄러우면 어쩌나 싶은 노파심이리라.

누님과 성묘했다.
지팡이를 짚고 산에 오르는 모습에서 세월의 무상함이
맘 아프다...

@  9월 15일 이른 아침 노루가 울다.

오늘 이른 아침 가을 안개 자욱한 숲에서 노루가 울었다.
겨울에 오는 놈인데 벌써 온 것이다.
반가운 나머지 울음 소리를 더 자세히 들으려
밖으로 나가 귀를 쫑긋 세워보지만 더는 들리지 않는다.
밀렵꾼들 등살에 무사히 살아남았다며
간단히 기별을 전하러 왔나 싶다.  
비온 뒤 밤나무 밑에 발자국이 깊게 찍혔다. 큼직한 발자국과
나란히 찍힌 앙증맞은 새끼 발자국도 보인다.

소쩍새 목소리가 쉰 걸 보니
머지않아 소쩍새가 물러가고 겨울새인 부엉이가 돌아올 것이다.
아주 오랫만에 어머니 꿈을 꾸었다.
어머니는 눈부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외출을 준비하셨다.
즐거운 표정이다.

@  어머니 꿈을 꾸다

--어디 가세요?
--응, 자고 내일 올 거야.

아버지를 만나려는 걸까, 노잣돈으로 3만 원을 드릴까 하다가
주무시고 오신다는데 10만 원은 있어야겠지 하다가 꿈을 깼다.
생전에 용돈 한 번 드리지 못했는데 꿈 속에 어머니는 아들에게
용돈을 받았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성묘를 가 노란꽃과 흰꽃의 국화 화분 두 개를 심어드렸다.
한가위가 며칠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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